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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렇게나 많이 주십니까?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2 조회수838 추천수10 반대(0) 신고
 
 
 
 

<이렇게나 많이 주십니까?> ... 윤경재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마태 20,1-16)



  이 비유말씀은 정말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동안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 전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직접 발설하신 상황을 유추해 보면 보다 가까이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일꾼들을 모두 5차례에 걸쳐 부르는 아주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새벽에도 아홉 시에도 열두 시, 세 시, 다섯 시 이렇게 자주 인력 시장에 나가서 일꾼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는 일의 진척이나 일하는 모습을 감독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일꾼을 모으는 일만 하는 주인이었습니다.


  새벽 인력시장으로 유명한 성남 모란 시장에 나가보면 여명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듭니다. 그러다가 일손이 필요한 사람들이 차를 몰고 와서 그날 필요한 일자리와 인원수를 외치고 알맞은 일꾼을 모집합니다. 여러 대의 차량이 일손을 구하고 떠나가면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장은 다시 조용해집니다. 얼마 만에 썰물처럼 물러간 자리에는 그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잡부나 삼삼오오 모여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걱정거리를 잡담삼아 나눕니다. 몇몇은 아침을 먹기 위해 근처 밥집을 찾아듭니다.


  인력시장에서는 부지런한 사람들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지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일자리를 주지 않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선한 포도밭 주인은 무려 다섯 번 씩이나 시장을 찾아 간 것입니다. 새벽부터 오후 다섯 시 해질 무렵에까지 찾아 나섭니다. 아침 아홉 시인데 벌써 일없이 서있는 일꾼을 만납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냥 서 있지 않았고 쓸데없이 잡담이나 나누었을 겁니다.

  오후 다섯 시에는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왜 빈둥거리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자기들이 늦게 나왔다는 말은 쏙 빼고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핑계를 댑니다. 포도원 주인이 그렇게 여러 번 시장에 나갔는데 못 만났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새벽에 만난 일꾼들 외에 나머지 일꾼들은 사실상 모두 게으르거나, 일할 의욕이 없거나, 다른 개인사정이 있어서 느지막이 나왔다는 것을 문맥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주인은 모두에게 일자리를 줍니다. 응하기만 하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해질 무렵에 주인은 관리인에게 정한 품삯을 나누어 주라고 시킵니다. 여기서 품삯을 나누어 주는 순서는 사실상 큰 의미는 없습니다. - 다만 초기 공동체에게 말하는 복음서 저자들이 새로운 상황에 부합하도록 만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16절에서 말하는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는 단절어는 아마도 복음서저자가 다른 부분에 있었던 것을 편집해서 넣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의 상황은 누구에게나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께 빈정거리는 자들에게 당신의 의도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리사이나 율사들은 자기들에게만 하느님 말씀을 전하기를 바랐는데 수많은 죄인들 즉 세리나 창녀나 무지렁이나 가난한 자들에게까지도 복음을 선포하시며 그들과 더 자주 접촉하고 왕래하시는 모습을 보고 크게 화가 났습니다. 또 그런 예수님께 여러 가지로 항의하고 빈정거렸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 선물이 공로를 셈하는데 있지 않고 일하라는 부름에 응했는지 아닌지에 달렸다고 말하고 싶으셨습니다. 그 구원선물을 나누어 주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뜻에 달렸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이 비유말씀에 대한 이해를 자주 우의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이레네오는 이 비유를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것을 아담이후로 구원시기를 다섯 시기로 나누어 해석하고 오후 다섯 시를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리게네스는 각 개인들이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시기로 해석했습니다. 새벽 시간은 모태 신앙이거나, 어려서 받아들인 것으로 오후 다섯 시는 죽음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간에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불린 사람은 많았으나 뽑힌 사람은 적었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자기의 공로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불평불만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뽑히지 못했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또 마태오 저자의 해석처럼 앞으로 올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지상에서의 서열이 역전될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마태오 저자는 그 해석을 강조하기 위해 16절을 의도적으로 삽입하였던 것입니다.


  또 모든 보수는 온전히 은혜이지 일한 대가가 아니라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보수를 주셨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해석도 사실은 약간 부족합니다. 물론 잘못된 해석은 아닙니다.


  사실은 이 모든 해석들이 예수님께서 몸소 말씀하신 의도와 꼭 들어  맞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본래 의도하셨던 것은 예수님의 처사에 대해 항의하는 자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자비하시고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그렇게 행동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정 깊고 연민이 많으시니 부름에 응답하기만 하면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지극한 자비를 베푸실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선한 포도원 주인처럼 일꾼을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시장에 나와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러 늦게 나왔을 뿐입니다. 그래도 부르심에 따라나서면 인간에게 필요한 만큼 품삯을 전부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비유말씀입니다.


  부르심에 응답만하면 품삯을 받을 자격이 못되지만 놀랍게도 필요한 만큼 다 주신다는 것에 바로 이 비유의 강조점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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