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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85) 황당시리즈 3편 (영마루를 넘으며)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3 조회수682 추천수11 반대(0) 신고
 
 
 
 
 
 
황당시리즈 3편을  이제야  올립니다.
 
 
 
 
강원도 양떼목장을 잠시 들른 다음 고속도로를 타다가 국도로 들어섰습니다.
6번 국도라 하더군요.
그때가 아마 저녁 7시가 넘었을 겁니다. 
고속도로가 너무 밀려 국도를 택했는데, 네비게이션을 따라 얼마쯤 가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 거세지는 빗줄기는 윈도우 와이퍼가 쉴새 없이 돌아가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죠.
그런데 어디쯤 가니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 끝도없이 이어지더군요.
앞에도 차가 한대도 보이지 않고 마주 오는 차도 하나 없는데 희미하게 보이는 밖은  어둑어둑하고 산봉우리마다  부연 안개가 산허리를 휘감고 있었습니다.
전조등에 간신히 의지하고 가는 일차선 도로에 중앙선의 노란색이 희미하게 보일락말락 했습니다.
 
꼭 예전에 관광버스를 타고 속초해수욕장에 갈 때 넘던 대관령 고개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대관령 고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꼭 무슨 절해고도에 우리 세 식구만 떨어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어쩌면 산길에 차가 한대도 없단 말인가!
앞을 봐도 뒤를 돌아봐도  차가 없었습니다.
그 깊은 산중 캄캄한 어둠 속에 차라고는 오직 우리 차 하나뿐이었습니다.
 
 
산길은 가드레일이 쳐있긴 해도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해서 아슬아슬한 느낌을 줍니다.
느릿느릿  기어가듯이 그러나 곡예를 하듯이 조심스럽게 꼬부랑길을 갑니다.
그때처럼 앞차가 그리고 마주 오는 차가 애타게 그리워보긴 처음이었습니다.
아니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었겠죠.
아니 하다못해 뒤에라도 쫓아오는 차가 있었으면 싶었습니다.
우리 차만 홀로 버려진 것 같아 너무 무서웠습니다.
비는 사정없이 쏟아지고......
 
그렇게 얼마를 기어갔을까 아마 내리막길이었나 봅니다.
그때 앞에 역시 기어가는 듯한 차의  미등이  빗줄기에 붉은 색으로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절망에서 살아난 것 같았지요.
앞차가 마치 구세주 같았습니다.
아 이제 우리 식구 혼자가 아니다!
그 긴 꼬부랑 길을 구비구비 돌아 기어오는 동안 얼마나 무섭고 불안했던지....
앞차에게 한없이 고마움을 느끼며 앞차가 빗속 어둠을 안내하는 안내자 같이 느껴졌습니다.
 
앞차는 아마 우리가 추월해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르지요.
가로등 하나없는 빗길을 헤치고 가는 앞차는 위험부담을 안고 가는 대신 그 미등의 불빛을 길잡이 삼아 뒤쫓아가는 우리 차는 훨씬 수월했으니까요.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더불어 함께 사는 존재라는 걸 절실히 느낀 순간입니다.
그 산중에 비는 대책없이 쏟아지는데 만일 갓길에 차를 멈추고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를 기다린다 해도 뒤에서 오는 차가 있다면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좁은 길에서  받치기가 십상일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차를 멈추기도 사실은 두려운 깊고 깊은, 산중에서도 꼭대기 같았습니다.
내려가는 길도 구불구불, 그러나 내려갈수록 안개는 조금씩 걷히는 듯 했습니다.
사실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도 잘 몰랐는데 안개가 옅어지는 걸 보고 아래라는 걸 짐작했을 뿐입니다.
그제서야 네비게이션의 깨알같은 글씨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아들이 진부령이라고 하더군요.
 
아들도 그때서야 알았나 봅니다.
그리고 처음 와 본 길이라고 하더군요.
다시는 밤에 그 길로는 다니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 밤에 영마루는 절대 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죽으나 사나 고속도로가 제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차들이 많으니 무섭지도 않을 것이고  외롭지도 않을 테니까요.
아래로 내려오니 그제서야 마주 오는 차도 어쩌다 하나씩  오고 앞에 가는 차도 두 대로 늘어났습니다.
살 것 같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아! 또 쟤야! 하고 비명을 지르듯이 탄식을 하는 겁니다.
"아니 누구라구? 쟤가 누구야?"
"쟤라구  쟤."
"쟤가 누구야?"
"문경새재 같은 재라구....  아! 황재네!"
 
아 그 재.....
아이구 이 사오정이야!
그때서야 길가의 표지판을 보니 (황재)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아니 그럼  그 무서운 꼬부랑 재를 또 넘어야 한단 말인가?
절로 탄식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황재는 진부령에는 비할바가 안되는 가벼운  영(嶺)이어서 천만 다행이었죠.
 
 
황재는 가볍게 넘었습니다.
우리 앞에 차가 세 대가 가고 있었습니다.
비도 그쳤는데 맨 앞차가 왠지 속도가 한없이 느렸습니다.
그러니 영 속도를 낼 수 없는데 우리 앞의 차 두 대가 어느 순간 싹 추월을 하더라구요. 우리 차도 재빨리 뒤를 쫓아 추월을 하는데 그 모습이 꼭 우리나라 쇼트트랙의 빙상선수들이 마지막 레이스에서 밖으로 튀어나가며 추월하는 모습과 똑 같았습니다.
 
깔깔 웃으며 가는 것도 잠시 이번엔 바로 앞차가 왠지 속력을 내지 못합니다.
그  어둠과 빗속의 진부령 고개에서 혼자라는 절망감으로 떨던 우리 차를 구세주처럼 인도해주던  바로 앞의 차가 평지 길을 가는데도 너무 느릿느릿 가는 겁니다.
기름이 떨어졌나? 어디가 고장이 났나?
갈 길이 먼데 앞에서 계속 알짱거리니 슬그머니 짜증이 나더라구요.
금방 전까지 구세주처럼 고마워하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아무리 사람 마음이 조석간으로 변한다지만 그렇게 간사할 수가......
참 황당했습니다.
 
철새처럼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마음 변하는 사람들을 의리없다고 흉보던 자신도 별 수 없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적당한 기회에 휙 추월을 해버렸답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앞차를 따라가다가는 다음날 아침에나 집에 갈 것 같다고 투덜거리면서......
아! 배신자여!
 
그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넘어서였습니다.
그날밤 진부령을 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립니다.
그 이후로 아들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반드시 고속도로로 다니라구요.
재는 절대 넘지 말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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