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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하여라,영으로 가난한 사람들!(마태복음22,1~46)/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3 조회수86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7년 8월 23일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마태복음

 

 마태복음 5~7장에서

산상 설교를 설명하고 이 산상 설교가 이루어지는 사도들에게

마태 10장에서

파견 설교를 통해서 하늘나라를 설명하십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는

하늘나라의 비유 설교를 통해서 하늘나라의 속성을 설명하시고

 

마태 16장에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교회와 공동체를 설명해 주십니다.

 

마태 24~25장에서 종말의 비유를 통해서,

마태 24장에서는 세상의 심판을 설명해 주시고,

 

마태 25장에서는 교회의 심판을 설명해 주시며,

마태 26~28장에서 천국의 완성을 설명해 주시고,

마태복음에서 천국을 완성하십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는

하늘나라가 이루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에 대한 예화이고

 

마태복음 23장에서는

늘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지옥의 자녀들에 대한 예화입니다.

 

우리들은 마태복음 22장 안에

속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3장의 자녀가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22장 전체를 해설해 보면

마태 22,1~14 까지는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과 신부인 우리들이 결혼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을 말씀하시고,

 

마태 22,15~22에서는

황제에게 바치는 주민세의 예화를 통해서 설명하십니다.

 

앞에서 혼인잔치에 예복(그리스도의 말씀의 옷을 상징함)

입은 사람들이 혼인잔치에 참석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며,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돈을 황제에게 바치나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우리들의 모든 것 즉

마음과 영혼을 전부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영적인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진실, 온유, 절제 등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육적인 것을 받으시지 않고

영적인 것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마태 22,23~33에서는

이제 예복인 그리스도 말씀의 옷을 입고

우리들의 영적인 사랑인 열매를 바치는 사람들이

부활하는 사람 즉 생명을 가지고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마태 22,34~40에서는

살아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첫째 계명인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우리들 모두에게 주십니다.

 

마태 22,41~46에서는

혼인잔치에 말씀의 예복을 입고

하느님께 영적인 나를 온전히 봉헌하고,

 

그후 부활을 하여 살아 있으니까 사랑을 하고,

이 사랑이 오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주님은 그리스도다.'라고 고백을 하며,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고,

 

마태복음 22장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는 과정을 예화를 통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임금의 아들 혼인잔치의 비유(마태 22,1~14)

 

성서에서 혼인이라는 세상의 결혼을 통해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과정을 비유로서 설명해 주십니다.

 

참 포도나무와 가지 - 구약에서는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

 

신약에서는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참 포도나무며 생명 나무인 그리스도에게,

 

상한 갈대이며 가지(이사야 42,2)인 우리들이

참 포도나무 즉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많은 열매(성령의 열매 갈라 5,22~23)를 맺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빵과 빵조각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을 머리로,

우리들은 지체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이 결혼을 보시면 마태복음에서는 예복을 입고,

요한 2,1~12 에서는 물(육)을 포도주(영)로 변화를 시켜서

포도주를 마시고,

 

묵시 19,5 에서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신랑인 예수님과 결혼을

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 성체가 되는 것입니다.

 

또 창세기 2,24 를 보면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몸이 되게 되었다. "

이것도 세상의 결혼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영적인 구원의 말을 전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여자는 교회이며 신부이고

우리들 자신을 말합니다.

부모는 성부와 천상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입니다.

 

에페소서 5,1에

바오로 사도께서도 창세기 2,24 를 인용해서,

남자는 그리스도이고

여자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라고 설명해 주시며,

 

마태 19,5; 마르 10,7; 루가 16,18 등에서도

남편과 여자는 세상의 남편을

통해서 영적인 남편인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창세기 24장에서 이사악의 결혼을 통해서

구약은 그림자이고 예표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보면은 큰 영적인 구원의 은혜가 됩니다.

 

아브라함이 종인

엘리에젤을 보내면서 금, 은등을 낙타 열 대에 실어서

이사악의 신부감을 골라 데려오라고 보냅니다.

 

시대 이사악의 결혼이였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안에는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아브라함 즉 하느님이 종인 엘리에젤 즉 성령을 보내는데

금, 은이라는 것은 성령의 은사들을 상징합니다.

 

이사악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신부이며 오늘날에는 우리들이며,

 

하느님의 자녀들이 예수님과 결혼하여 하나가 되는 과정을

예표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리브가를 금팔찌와 금목걸이로 치장을 해서 이사악과 결혼하는 것은,

우리들도 성령 충만해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이 결혼을 통해서 주시는 구원의 말씀입니다.

 

문자적인 뜻과 영적인 뜻을 보면서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1  예수께서 거듭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2   "하늘나라는 어떤 임금(하느님)이 아들(예수 그리스도)

   혼인잔치를 베푼  것과 같습니다.

 

3  종들(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보내어 초대받은 사람들을 잔치

   (천국 잔치)에 불러오게 했으나 그들은 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일렀습니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지금 내가 잔치를 베풀려고 합니다.

    황소들(황소는 힘이 있기 때문에 성부를 상징)과 살찐

    짐승(성령을 상징)들을 잡았고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어서 잔치에 오시오.'

 

설명: 황소와 살찐 짐승은 동물이지만 천국의 잔치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7  그러자 임금(하느님)은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서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심판) 버렸습니다.

 

8  그리고는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혼인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자격이 없구나.

 

설명: 하느님보다 밭이나 가게를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하느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 때문에 하느님의

      초대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1  임금이 손님을 보려고 들어갔다가 혼인잔치 예복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함)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14  부름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힌 사람은 적습니다."

 

 

설명: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상의 혼인잔치에 들어갈 때

      예복을 입어야 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납니다.

    이처럼 천국의 잔치도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않으면 쫓겨납니다.

 

      혼인잔치의 예복을 입은 자는 구원을 받고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초대는 받았지만 뽑힌 자가 못 되므로

 

      우리들도 말씀 읽고 공부하고 기도하고

주일 미사를 많이 참여하여 좋은 예복을 준비해서 입도록 합시다.

 

황제에게 바치는 주민세에 대한 대담(마태 22,15~22)

 

혼인잔치 예복의 비유 다음에

황제에게 돈을 바쳐야 하는지에 대해 

예수님께 올가미를 씨우기 위하여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돈을 바치지 말라고 하면

황제에게 반항하는 것이고,

돈을 바치라고 하면

하느님이 세상의 왕에게 돈을 바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일이 되므로,

우리들의 육적인 생각으로서는 위험한 함정이 있는 질문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슬기롭게도

초상화가 그러진 것은 황제에게 바치고,

하느님 것은 하느님께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돈이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화가 되어 있는

우리들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초상화(에이코나=형상화)되기 위해서는,

말씀인 예수님이 우리들의 마음 안에 새겨져야(고린 후 3,2~3)

하느님을 닮은 우리들을 하느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 즉 말씀화가 되어 있는 사람은

하느님께 산 제물로(로마서 12,1) 우리들 자신을 바칠 수가 있으나

내 안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육적인 데나리온인 세상의 물질인 돈만을 바치는 것입니다.

 

마태 22,1~14 에서

황소(성부를 상징함)와 살찐 짐승(성령 상징)으로 의인화된

육적인 양식을 먹으면서

 

영적인 양식 즉 예수 그리스도 즉 말씀을 먹고,

말씀의 옷인 그리스도의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산 제물인 자기를 봉헌할 수 있는 사람이며,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바치는 사람이 되고,

예복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잔치에서 쫓겨날 뿐 아니라

영적인 산 제물을 못바치니까

결국 세상의 돈을 바치는 것입니다.

 

마태 22장에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기 위하여서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초대되어서

 

황소와 기름진 고기로 비유된 말씀을 먹고 예복을 입은 다음에는,

돈을 세상의 황제에게 바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우리들 자신을 거룩한 산제물로

바쳐야, 산 자, 부활을 하는 자가 되겠습니다(로마서12,1).

 

요한복음 6,63에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요,

           육은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한 말들은 영이며 생명입니다."

 

 로마서8,5 무릇 육을 따르는 자는 육의 일에 마음을 쓰지만

          영을 따르는 이는 영의 일에 마음을 씁니다. 

 

 6 그러나 육이 마음쓰는 바는 죽음이지만 영이 마음쓰는 바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7 그러므로 육의 마음은 하느님을 적대합니다 .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으며, 실상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 안에 있는 자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1육의 행실(육의 열매)들이란 뻔하지 않습니까?

        음행,부정,방탕, 우상숭배,마술,원한,싸움

       시샘,분노,모략,불목,분열,질투,주정,폭음,폭식 그밖에

       비슷한 것들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 반면에 영(성령)열매는 사랑,기쁨,평화

       인내,친절,착함,신용,온유,절제입니다

 

우리들은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 때,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과 성체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여

영의 자녀가 되어야 하느님께서 받아들이는 것이고

육의 자녀는 못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영의 자녀들이 됩시다.

 

하느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육적인 것은 못 받으시고 영적인 것만을 받으십니다.

 

말씀화가 된 사람들이 창세기 1,27 에서

하느님의 형상(쩰렘 드무드)대로 창조된 사람입니다.

 

이것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부활 논쟁(마태 22,23~33)

 

야훼 하느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고 이사악의 하느님이고

야곱의 하느님이시다'하고,

이름을 밝히시는데 이때는 현재형으로 나타내십니다(출애3,6).

 

물론 아브라함도 몸은

죽고 이사악도 몸은 죽고 야곱도 몸은 죽었지만,

영혼은 지금 현재 살아있기 때문에

세상 마지막 날에

하느님의 권능으로 다시 부활할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현재의 하느님을 만나서

몸은 죽으나 영혼은 살아있기 때문에,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 때 영광스러운 부활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양식인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말씀화가 되어

그리스도의 말씀의 예복을 입은 후에,

그리스도 형상화가 된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산제물로 바친 사람들이 살아있는 부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활 논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다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한 여인이 자기의 남편이 죽은 후 6명의 시동생들과 살다가 죽으면,

부활할 때에 7명의 남편이 있는데

이 여인의 남편은 누구입니까? " 하고 질문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은 후의 영혼은

세상에서처럼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부활 신앙을 설명해 주시면서

 

산 자의 부활을 아브라함의 하느님(아브라함이 만난 하느님

즉 아브라함 안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말합니다.),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을 비유로

부활을 설명해 주십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이 오늘 현재 만나는 하느님,

즉 우리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만나야

현재의 부활이 옵니다.

 

하느님은 성령의 열매인 사랑으로 우리들 안에 계십니다.

 

첫째가는 계명에 관한 대담(마태 22,34~40)

 

부활한 사람이 살아 있으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자는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마음인 애고(ego)가 죽어야 부활이 옵니다.

수난받고 죽어야 부활이 오는 것입니다.

 

부활한 사람이 

"온 마음으로 온 영혼으로 온 정신으로 네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고

하시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요한 14,23).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즉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온 마음 온 힘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 는 것은

죽으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의 마음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 있으면 봉사나 남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것은 희생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율법에 있을 때는 사랑을 못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으로 합니다.

 

말씀의 예복을 입고 난 후에

하느님의 형상이 된 사람이 부활한 사람이며,

 

부활하여 살아 있으니까 첫째 계명인 사랑이 오며,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부활한 우리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게 됩니다.

 

다윗의 아들이자 주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대담(마태 22,41~46)

 

그리스도의 옷인 예복을 입고 그리스도의 형상화가 되고

부활한 사람에게 사랑이 오고,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은 우리들의 그리스도" 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시는 분이  "그리스도 이레네오(각자의 세례명)"

즉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볼 때는

다윗이 예수님의 인성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그리스도 하느님의 신성은 시공간이 없으시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다윗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시는 하느님이시며 자존자이십니다.

 

시편 110,1 에서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마태 22장은 하느님의 자녀들의 장이므로

우리 모두는 여기에 속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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