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와서 보시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4 조회수613 추천수6 반대(0) 신고
 
 
 

<와서 보시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와서 보시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1,45-51)



  나타나엘은 하느님을 기다리면서 율법서와 예언서를 열심히 읽고 연구하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말은 그가 나무 그늘 아래서 묵상을 하고 있었다는 뜻일 겁니다.


  아마 그는 자주 깊은 묵상에 빠져들어 사물과 인간을 통찰할 수 있는 눈을 키워왔습니다. 그 결과 보통 사람들보다 맑은 정신을 지니게 되었을 겁니다. 실제로 명상이나, 좌선 등을 통해 인간의 정신이 맑아지면 어떤 지혜가 생겨나게 됩니다. 사물의 본질을 좀 더 꿰뚫어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겨 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통해 많은 종교나 정신수양법에서 이런 묵상을 권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살펴보며 어떤 대상에 접근하는 수련을 통해 만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깨달음을 얻게 만듭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서 어떤 수준의 인격을 도야하고 업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을 통해서도 나타나엘이 명상을 통해 어느 수준에 이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인격이 잘 도야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거짓이 없다는 말은 인간으로서 순수한 마음을 지녔다는 뜻이며 어떻게 물들이는가에 따라 더 훌륭하게 바뀔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 복음서에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 인격을 잘 닦더라도 정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데 있다고 이 대목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만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얻었어도 머리로만 깨달았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며 발로 얻는 지혜가 또 필요한 법입니다. 지혜의 눈은 머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도 배에도 발에도 손에도 있습니다. 발로 찾아가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지혜의 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발에도 손에도 가슴에도 눈이 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유명한 선승들은 아예 ‘배로 깨달아라.’ 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과 만나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닌 정신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의 단계는 영이 이끌어 주는 세계를 도저히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한 말씀 하십니다.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인간이 아무리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에 도달한다고 해도 영이 이끌어 주시는 세계를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도 우리가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귀를 막고 눈을 닫는 것이 아니라 “와서 보아라.” 는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께 다가가 함께 삶을 살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살펴보고 주님께서 걸으셨던 길을 걸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와서 보아라.”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했다면 제자들은 결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몰랐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깨달음을 도저히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정신적 사고를 통해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무리 높아도 영이 열어주시는 영의 세계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신세계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영의 목소리를 듣고 발로 몸으로 찾아가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현재 자기들 방법이 최고라고 우기고 있는 여러 가지 정신 수양법에 머물지 말고 영의 이끄심에 따르려는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나타나엘이 친구인 필립보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찾아갔던 것은 바로 친구에 대한 신뢰이며 더 높은 진리를 향해 나아고자 하는 겸손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주님을 뵙고 사도직에 불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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