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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과 분별심은 함께 가야 합니다.(聖 비오 신부님)
작성자임성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5 조회수560 추천수7 반대(0) 신고

사랑과 분별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의 일은 사랑의 일이다.

 

하느님 사랑의 일은 그 시작이 미미하나 

시간이지나면

그  열매는 엄청나다.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신 그 일이

 

만일 사람이 한일이라면 어찌 2000년이 넘게 이어지겠는가?

 

사람이 한일이라면 12명으로 시작된 일이 어찌 수십억이 넘는 사람들이

 

따르겠는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위력이 엄청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물려 받았다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인가?

 

자신을 한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사도인가?

 

나는 사도의 후손인가?

 

나는 복음을 선포하는가?

 

나는 마귀들을 쫒아내고 있는가?

나는 사람들의상처를 치유하고 있는가?

 

 

사실, 오직 예수님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마음이 힘들때는 어떻게 하는가?

 

제일 먼저 할일은 침묵하는 것이다.

 

나는 오직 침묵할 뿐이다.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사랑으로 하는 것이

 

온 세상에 전교하는 것보다 더 큰일이라고

 

예수 성심은 말하신다.(예수 성심의 메시지에서)

 

 

우리는 무소유를 주장한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인정 받기 원하고, 

 

대접 받기 원하고, 출세 하길 원한다.

 

참으로 무소유의 길은 어려운 길이다.

 

일단 인정 받으려는 유혹, 출세하려는 유혹에 빠지면

 

정말 헤어나기힘들다.

 

더군다나 본인이나 이해 집단의 출세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그런 사람들은 사랑하기 힘들다.

 

그래서 하느님은 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깨어있는 것이 중요하다. 

 

 

상처주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비오 성인 신부님은 "사탄은 묶인 개"와 같다고 하였다.

 

 

그 자리를 피해서 일정 거리 이상을 떨어져 있으면

더 이상 어떻게 하질 못한다는 얘길 하셨다.

 

우선은 피하는 것이 지혜다.

 

우선은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지혜다.

 

혹시라도 인정받고자하는 마음에서, 혹은 이 경쟁 구도의 세속적인 삶에서,

혹은 사탄의 작용으로 미운마음 가진대상으로부터

상처 받은 사람이 있다면,

 

우선은 지혜롭게 상처 준 대상으로부터

 일정거리 이상 떨어져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 머물러는 것이 좋다.

 

하느님은 침묵 속에서 만날 수 있으므로 침묵 속에서 머물러는 것이 좋다.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힘을 얻고

그 침묵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좋다.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라!

침묵 속에서 하느님이 주시는 고요함을 만나라!

이는 세상이 주는 조용함과 다르다.

이 고요함 속에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이 고요함 속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봉헌하라.

우리는 비워져야 겸손해 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 모든 소유와 욕심을 봉헌 한 후에

 

침묵 속에서 아주 조그만 일일지라도 사랑으로 하라!

 

굳이 말을 해야 한다면 아주 필요한 말만 하라.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하라!

 

 

그리고 대침묵 속에서 온전히 오늘 하루를 봉헌하라!

 

하느님 성령의 도움으로 사랑과 평화, 자비가 충만하면

 

그 때 비로소 커뮤니케이션을 하라!

 

상처 받은 영혼으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겸손하라!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버려라!

 

낮추고 버리는 곳에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난다.

 

자신을 낮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 바로 나 예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중요하다.

 

사실,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느님의 창조물이고,

사랑으로 구원 받아야할 대상인 것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과

모든 사람을 만날  때, 예수님이 함께 계시고,

예수님을 만난다는 생각을 늘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지금 여기에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상처 준 이웃도 예수님의 시선으로

예수님 바라보듯이 바라 볼수있는것이다.

 

사실 상처 입은 사람이 상처를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과 함께 바라보면

내게 상처준 그이웃이 

나에게 상처준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또 다른 상처 입은 예수님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 이웃의 상처에 대해 측은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엄청나게 큰 존재 변화를 겪게 된다.

나의 상처를 바라보다가

이웃의 상처로 우리의 시선이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의 고통 보다는 이웃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비록 그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럴 때 우리는 진정 남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랑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부활해 함께 사시는 것이다. 

모든 이웃이, 진정 고통에 신음하는 형제 자매로,

 

또,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들을 예수님으로 느끼게 되는것이다.

 

진정 사랑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넓은 자비심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상처준 적대심에서, 상처 입은 존재, 상처입은 형제 자매로

그들의 고통을 바라보게 되고, 이러한 측은지심이

나 중심의 삶에서 남을위한 삶으로 바뀌게되고,

모든 존재들이 형제자매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성프란치스코처럼 우리도 사람 뿐만아니라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형제자매로 부르는 우주적 형제애까지 이를 수가 있는 것이다.   

 

이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듯이 모든 이웃을 존중과 큰 사랑으로 만날   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심을 체험하고,

우리는 하느님의그 큰 사랑속에서 늘 사랑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것이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 속에 늘 살아가고 싶으면,

우리는 늘 하느님을  찬미 찬양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하늘나라 가서도 할 일은 하느님을 찬미 찬양하면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성인) 

 

결국, 예수님 말씀처럼 매사를 사랑으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모든 존재를 사랑과 존중으로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상처를 입었을 경우에는,

누가 뭐래도 전혀 개의치말고,

오직 마음 속에 하느님의 사랑만 생각하고,

하느님의 사랑만 기억하고,

하느님의 사랑만 

간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상처로 인해

다른 생각이나 분심이 들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돌아가라!

 

누군가로 부터 상처를 받았을 경우에는

무조건

하느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상처받은 우리의 영혼에 치유가 일어난다.

 

사실 이웃이 우리에게 죄를 지을 때야 말로

하느님의 크고도 크신 사랑을 보여 줄 좋은 기회인 것이다.  

 

 

우리를통해서 이웃도 하느님의 자비를 만나게되는 것이다.

 

 이웃이 준 상처를 보는 것이아니라,

이웃의 영혼 속에 자리잡은 죄를보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처럼

죄인에대한 측은지심을가지면서

그 죄에 사로잡힌 영혼을 위해서

오히려 기도해주는것이다.

 

우리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는

모든 성인들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먼저 하느님께로 가라!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라!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자기 존중감은 버리질 말라!

 

그리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사랑으로 하라!

 

하느님은 다른 것은 보지 않으신다. 오직 사랑만 보신다.

 

아주 작은 말, 아주 작은 생각, 아주 작은 행동일지라도 사랑으로 하라!

 

하느님 앞에서 죄인인 존재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자기 존중감을 어떤 경우에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하느님 자녀로서 자기 존중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분별력을 가지고 지혜로워야 한다.

 

사탄이 공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 뜨리는 일이다.

 

자기비하감을 초래하는 그런 공격이 시작되면, 

 

그런 사람, 그런 시간, 그런 공간과는 지혜롭게

 

거리를 두어라! 

 

사탄이 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피난처이신 하느님 곁으로 와야 한다.

 

침묵 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자기 비하감이 들 때에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분명 오늘도

 

우리에게 행복의 선물을 거저 주심을 믿어라!

 

놀라운 선물이 주어짐을 믿어라!

 

오늘 하루도 원더풀 데이임을 믿기바란다.

 

그리고 놀라운 하느님의 선물이 주어짐을 여전히 확신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말기 바란다.

 

 

이것이 자기 존중감을 회복하는 길이고, 마음 속에 어둠을 가져오려는 마귀를

 

쫒아내는 길이다.

 

마음에 빛을 회복하는 길이고, 복음을 마음 속에 준비하는 길이다.

 

어떤 경우라도 자기 존중감을 잃어서는 안된다.

 

하느님 앞에서 밤새 나는 죄인이라고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참회하고 눈물을 흘릴지라도

 

결코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으로부터 만은 사랑받고 있는 자녀,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이것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다시 회복하고 부활하여

 

복음을 잘 살수 있는 비결이다.

 

복음을 전하는 일, 늘 기도하고, 늘 기쁘하며, 늘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 존중감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 마음이 힘들 때는 하느님을 찾아가라!

 성체조배실로 가라!

그냥 가장 좋은 친구이신 예수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가장 좋은 친구 예수님을 찾아가라!

 

침묵 속에서, 혹은 일상 속에서 예수님 같은 사람을,

 

성모님 같은 사람을 찾아가라! 

 

그리하여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사랑으로 하는 힘을 얻어라!

 

그리고 자기 존중감을 얻어라!

 

그리고 난 후에 이웃에게 다가가라!

 

내가 하느님을 만나고 나서 힘을 얻고 나서 복음을 전할 일이다.

 

자기 존중감을 갖고 나서 복음을 살일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체험하고,

 

그 충만함으로, 그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복음을 전할 일이다.

 

자기 존중감이 충만할 때까지 기다려라!

 

나의 마음 속에 어둠이 없을 때 비로소 복음을 전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이충만 할 때 비로소 자기 존중감도 충만해지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할 힘도 생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쁜 기운을 전하는 사람들은 일정거리를 두어야 한다.

 

하느님이주시는 침묵의 힘으로 상대해야한다.

 

하느님이 주시는 침묵의 힘을 통해서 자기 존중감을 회복해야 한다,

 

이 자기 존중감을회복한후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존중감을 지켜내야 한다.

 

성령에 의해서 내가 빛의 자녀라는 자아존중감이 회복되고 나서,

지혜롭게 분별심을가지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사탄은 묶인 개와 같다"는 성 비오 신부님의 말씀을 기억하는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사랑과 분별심은 함께 가야 합니다."(성 비오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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