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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일 아침묵상] 시락국 만찬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6 조회수622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시락국 만찬

 

전국으로 도서 홍보를 다니다보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또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 각양각색의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멀리 경남 진해에서의 일이다.

새벽 미사를 마치고 신자분들이 거의 집으로 돌아가자 본당 주임 신부님께서 “우리 집에 밥이 좀 남는데 나눠 먹읍시다!” 하고 불쑥 제안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시던 예수님처럼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온유한 초대가 아니라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그야말로 무뚝뚝한 아침 초대였다.

 

처음엔 간단하게 빵을 싸왔다며 어설프게 거절했지만 그거라도 들고 와서 먹으라는 신부님의 말씀 속에 툭툭 박혀 있는 인정이 느껴져 못 이기는 척 응하게 되었다.

 

아침 도시락으로 부시럭부시럭 빵을 꺼내 놓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락국(시래기국의 경상도 말)에 한참 밥을 말고 계시던 신부님이 우리를 흘깃 보시더니 “빵만 먹기 퍽퍽할 텐데 따끈한 시락국 한 그릇씩 드셔!” 하고 한마디 툭 던지신다.

 

안 그래도 침을 꿀꺽 삼키고 있던 터라 싸온 빵은 옆으로 밀쳐두고 내친김에 시락국에 밥까지 말아 뚝딱 해치웠다.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아주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자 커피를 한 잔씩 주시며, 문득 “먼저 깨달은 사람이 상대방의 십자가도 조금 더 져주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혼잣말처럼 하시는 것이다.

 

순간 그 말씀이 가슴에 쾅~ 박히더니 내 존재 전체에 따뜻하게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작은 시련에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내 곁에도 나의 십자가를 거들며 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녹아내려 조금 넓어지고 여유로워진 기분이었다.

 

아, 깨닫는다는 건 타인에 대해 점점 더 너그러워지는 게 아닐까!

 

시락국 한 그릇에 덤으로 달디단 깨달음까지 나누어주신 신부님의 아침 초대는 내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최고의 만찬이었다.
-신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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