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꽃동네 수사님 걸인체험기 <1>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7 조회수800 추천수3 반대(0) 신고
 

                 꽃동네 수사님 걸인체험기<1>


첫날 


   *오전 9時 : 새벽부터 갑자기 몰아치는 한파가 절로 어깨를 움츠리게 했지만 5박6일의 여정을 시작하는 우리의 마음은 몇 일전부터 기도로서 단단히 무장한 터라 여유가 있었고 체 녹지 않은 눈길을 걷는 발걸음에 가볍기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뚜렷한 목적지가 없었으므로 앞으로 전개될 미지에 대한 심리적 불안이 작용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은 로사리오를 바치면서 차차 사라져 갔고, 우리는 꽃동네주유소에서 꽃동네에서 봉사를 미치고 귀가하는 울산행 봉고 차에 동승하게 됨을 진정 성모님의 안배하심이라고 믿으며 먼 남쪽 지방을 향하여 고속도로를 달려 여정의 길을 올랐다. 차장을 스쳐 지나가는 경치를 바라보는 것도 즐거움이었지만 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동승한 이들과의 담소는 또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의 신분을 잘 아는 그들은 성소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질문은 끊임없이 계속되었으며 또 우리가 그들과 함께 동승함을 사뭇 기뻐하였고 특히 우리의 여행목적에 대해서 감탄과 함께 우리의 모든 여정을 주님께 의탁하는 지향을 두고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해주었다.


  *오후 5시쯤 : 차는 울산에 도착하였고 “울산을 떠나기 전에 꼭 한번 연락주세요?”라며 건네주는 연락처를 받으며 그들과 작별을 고했다. 울산 전역에 부는 바닷바람은 몹시도 차갑고 매서웠다. 우리는 일단 걸인들이 거쳐 할만 곳이 다리 밑과 야적장 주변일 것이라는 판단에 울산을 가로지르는 태화강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거지들이 겨울에는 다들 들어가고 없단다. 추운 날씨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는 그 많던 걸인들, 과연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하루하루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것일까?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그들 일 찐데? 하는 의구심으로 우리는 계속 발길이 닿는 대로 둘러보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들었을 때 우리 눈에는 야음성당이 들어 왔고 성당에 들어가 잠시 동안 성체조배를 하며 앞으로 우리가 필요 한 바 은혜를 주시도록 간구하였다. “저녁은 어디서 얻어먹을까?” “오늘 밤은 어디서 자야 하는가?”하는 첫 번째 걱정이 불현듯 다가 왔을 때 이것이 걸인들이 겪는 큰 고충 중의 하나임을 우리 또한 실재로 느꼈고 오늘 밤 뚜렷한 잠자리를 찾지 못하는 만약의 경우 야음성당 성체 조배 실에서 기도하며 밤을   지새기로 작정을 하고 다시 기약 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었다.


*밤 9時 : 울산시가 이곳저곳을 걷다가 내일 새벽 이곳을 떠나기 전에 우리의 여정을 걱정해 준 이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여 전화를 드렸을 때, 은총의 집이 근처에 있음을 알았다. 우리가 아직 잠자리를 찾아 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기에 불우한 소년, 소년 가장들이 모여 산다는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은총의 집’ : 초라하기 그지없는 겉모습과는 달리 하느님의 사랑으로 뭉쳐진 작은 공동체였다. 몇 해 전 자매님이 본당 활동을 하던 중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된 한 소년을 만나 그와 인연을 맺게 된 이후 여러 교우들의 인도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소년, 소녀 가장들이 그들의 동생들과 함께 자매님을 찾아와 자신들의 어머니가 되어 줄 것을 간청하게 되어 지금 현재 30여명의 식구가 되었다 한다.


   마침 우리가 그곳을 갔을 때 꽃동네에서 봉사를 마치고 귀가한 그들은 남아있던 이들과 꽃동네에서의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마냥 즐거워하던 차에 우리의 방문은 더 한층 분위기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했고 집안은 온통 꽃동네 바람이 불어 내일이라도 다시 또 가자고 칭얼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가난하고 어려운 그들의 생활이었지만 어느 한구석 어두운 기색 없이 웃고 떠들고 모여 앉아 묵주의 기도를 바치는 그 모습은 정녕 이들은 사랑 받는 주님의 백성들임을 알 수 있었다.


*밤 10時 : 자매님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거절할 수 없어서 첫날밤은 은총의 집에서 지새기로 하였다. 그 대신에 잠자리만큼은 천막으로 지은 가건물에서 찬 겨울의 첫 밤을 맞이하며 기도와 묵상 그리고 하루의 반성을 하고 자정을 넘기면서 선잠을 청했다.


둘째 날


*새벽 6時 :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깨어나 희미한 촛불아래서 아침 성무일도를 바치고 아직 모두들 곤히 잠들어 있는 은총의 집을 나와 새벽의 찬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울산 시내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성원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와야 했지만 이해하리라 믿었다.


   그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주님을 기꺼운 마음으로 모시고 아름답게 살고 있는 ‘은총의 집’식구들을 알게 됨은 여간한 기쁨이 아니 였으며, 아무쪼록 그들 소년, 소녀 가장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그들의 모든 나날을 하느님께 부탁드리는 기도를 드렸다.


   우리는 다시 걸인들이 이 추위를 피해 기거하고 있을 만한 곳을 찾아 헤매며 아침식사를 어떻게 어디서 해결할 것인가를 기도 중에 성모님의 안배하심을 기다렸다. 구걸하기에는 아직 우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또 아직은 이 정도의 배고픔은 견디어 낼 수 있다하며 자만하였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고, 뱃속에서는 이상한 요동이 치기 시작하였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내 성당 가까이 불쌍한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을 때, 우리의 발걸음은 그곳에서 우리가 찾는 불우한 분이 계실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곧장 무료급식소를 찾아 빠른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아침 11時 :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허름한 차림의 노인들과 걸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두 눈을 더 크게 뜨며 한 분 한 분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과 함께 줄을 서서 무료급식을 받았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의아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성급히 끼니를 때우고 밖으로 나와 몇 분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차례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식들이 있었고, 집을 가까이에 두고 있었다. “왜 여기서 식사를 하느냐”는 우리의 물음에 대해 그분들은 “집에서 며느리들의 눈치를 보느니 노인정이나 시장통에 나와 놀다가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이곳에 와서 100원을 내고 식사를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말문을 흐렸다.


  그러나 그분들의 말에는 자신감이 없었고, 실재 우리 눈에 비쳐진 그들의 허름한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노인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도 남음이 있었다.


*12時(정오) : 40대 중반의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절뚝거리면서 식사를 하고 어디론가 가는 전형적인 걸인을 발견하고 그분의 뒤를 쫓아 우리도 함께 걸었다. 시내 상가를 거닐며 가가호호 문을 열고 들어가 방문을 하는 그분은 돈을 구걸하기 시작하였는데, 때론 밝은 얼굴로 때론 어둡고 침통한 얼굴로 상가를 나오시는 모습에서 구걸의 정도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하기를 1시간 정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성거리고 있을 때, 그분의 곁으로 다가가 인사하였고, 양지 바른 곳에 앉아서 꽃동네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자신의 고향은 경북 안동 울산에는 돈 벌이를 하러 왔으며, 7년 전 다리를 다쳐 직장을 그만둔 이후 걸인 생활을 시작하였고, 가족 관계로는 부인과 슬하에 2명의 딸이 있는데 부인은 몇 해 전 교통사고로 사망, 딸들은 안동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으나 정작 자신은 무능력자로 친척들이 받아주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걸인 생활로 연명해가고 있다고 했다.


   처음 우리들의 제안에 대하여 의아해 했지만 오랜 시간 우리의 설득에 대하여 입소하실 것을 응낙하셨고 곧 꽃동네로 연락을 하여 그분을 모시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구했다.


*오후 3時 30分 : 지난밤부터 허리의 심한 통증을 견디기 어려웠던 동료 수사는 부득이하게 걸인을 모시고 울산發 청주行 버스를 타고 귀가 길에 올랐다. 비록 수련장 수사님의 승낙을 받고 여비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애당초 규칙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요청해야 했던 까닭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이제 혼자서 나머지 남은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잖게 마음을 짓눌렀지만 모든 것을 성모님께 의탁 드리기로 다시  한번 마음먹었다.


*오후 4時 : 잠시 한 숨을 돌리며 마음을 가다듬고 목적지를 경주로 정했다. 가는 도중에 무임승차를 하든지 아니면 걸으면서 걸인들이 있을 만한 곳을 두루 살펴 볼 작정으로 다시 걸음을 재촉하였다. 경주 - 포항 간 산업도로, 무섭게 질주하는 대형 차량의 행렬은 끝없이 계속되었고 차량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이는 바람은 더욱 차가워 느껴지는 체감기온은 살갗을 얼얼하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묵주를 꺼내 들고 여러 시간을 걸으며 가끔씩 손을 들어 무임승차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 그 거절의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나 자신의 초라함이란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춥고 배고픈, 그야말로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밤 10時 : 24Km를 6時間 정도 걷다가 추위와 배고픔에 못 이겨 지친 몸을 누인 곳은 울산 - 경주간의 중간지점인 ‘외동’이라는 곳 황량한 들판 어느 볏단이었다. 볏단 속을 파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어가 반쯤 앉아 잠을 청하려 했지만 볏단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온 몸은 더욱 떨려왔다. 하지만 찬 서리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비록 초라한 잠자리였지만 만족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가끔씩 뒤척이다가 선잠에서 깨어나 볏단을 열어젖히고 밤하늘의 달과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이 우주 안에 벌어지는 모든 인간사와 나의 현주소, 그리고 이 모든 삼라만상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묵상했고, 다시 애써 잠을 청하려 했지만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