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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동네 수사님 걸인체험기 <2>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7 조회수599 추천수2 반대(0) 신고
 
 
 
 
  꽃동네 수사님 걸인체험기 <2>
 
 
 

셋째 날


*새벽 3時 30分 : 영하의 기온, 몸서리치는 추위에 못 이겨 선잠에서 깨어나 불을 피울까 생각했지만 바람이 심하게 몰아쳐 감히 피울 수가 없었다. 혹시 지금 이 시간 길거리에서 다리 밑에서 나처럼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을 지도 모르는 그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얼어붙은 나의 몸을 녹이기 위해 다시 걸음을 재촉하였다.


*아침 9時 : 다시 6時間 정도 새벽길을 걸어 경주에 도착하였다. 오랜 시간을 걸은 탓으로 발목도 부어올라 걸음도 불편하려니와 걷는 동안 흘린 땀이 이내 찬 기온에 식어버리기를 계속하면서 감기에 걸린 듯했다. 그리고 시내 중심가에 이미 들어 선 터라 어디서 아침을 구걸하여 먹는 다는 것조차 힘들었다.


   우선 몸을 녹이기 위해서 경주역을 찾았고, 그 곳에서 밤새 세우 잠을 잣을 지도 모르는 걸인들의 동정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국제 관광의 도시 경주’답게 내가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몇몇의 노인들이 담뱃값 정도를 구걸하는 정도였다.


*오전 11時 : 경주역을 나와 시외버스 터미널, 시장 뒷골목, 폐품 수집 장, 공사장, 다리 밑, 시내 상가 등을 두루 살펴보며 걷고 있었을 때, 나의 모습과 심정은 영락없는 걸인이었다. 배고픈 서러움과 불편한 걸음걸이 그리고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 앞에서 마주 오는 어떤 사람들은 나를 피해서 돌아 지나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주택가로 들어가 구걸을 시도해 보았으나 서너 번 실패의 쓴맛을 보게 되었고, 때문에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경주 천 부근에 있는 초라한 무료급식소를 찾아 허기를 채우고 경주를 빠져나가는 국도를 향하여 다시 걸음을 재촉하였다.


*오후 5時 : 경주에서 3時쯤 포항行 화물차를 얻어 타고 포항 입구 하차하여 곧장 걸인들이 모여 있을 만한 곳을 찾아 시내와 터미널 그리고 역전주변을 돌아보았다. 드디어 포항역 대합실에서 만취된 상태 횡설수설하며 서로 시비를 거는 걸인 3분을 발견하였다. 그 중에 한 분은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 온 몸에서 악취가 풍기며 벤치에 누워 코를 골고 있었는데 겉모습으로 보아서는 꽃동네로 모셔야 할 분인 듯했다.


   그러나 막상 대화를 시도하려했지만 동료 걸인들의 불만을 토로하는 듯

하여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었다. 따로 좋은 기회를 보아 접근하기로 하고 역전을 빠져 나와 다른 곳을 향하였다. 나 자신이 배고픈 걸인인데 걸인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사뭇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졌다.


*오후 8時 : 시가지 구석구석과 죽도(포구) 어시장을 두루 돌아다니며 행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포항시내의 걸인 실태를 여쭈어 보던 중 어떤 신자 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 또한 어려운 자신의 삶 가운데에서도 남을 위해 자선을 베푸는 것에 관심이 많으셨던 분이었는데, 그 동안 여러 불우한 사람을 살아가도록 도와준 바 있고, 또 얼마 전부터 걸인 한 분을 재활을 시키며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간단한 요기(국밥)를 해결하고, 신자 분이 돕고 있는 재활걸인이 지내는 부둣가로 안내되어 그 재활걸인(일일 용역 꾼)을 만나게 해 주어 지난 걸인생활의 경험들을 들을 수 있었다. 또 초라한 자취방이었지만 고맙게도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어젯밤 황량한 ‘외동’ 들판 가운데 있는 볏 짚단 속에서의 을씨년스러운 잠자리에 비하면 가히 호텔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안배하심이라고 감사드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넷째 날


*아침 6時 : 아침기도와 오늘 복음을 잠시 묵상하고 새벽 어두운 거리로 나와 어제 저녁에 만취된 상태로 서로 시시비비를 가리던 걸인들을 만나기 위하여 곧장 포항역전으로 나갔다. 다행히도 내 눈에 가장 띄던 걸인만이 술이 깬 상태로 역전 밖으로 쫓겨나(악취가 심했으므로) 우두커니 앉아 계셨고, 술기운에 행패를 부리던 다른 두 명은 보이지 않아 그분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분은 58세이며, 젊으셨을 때 뱃사람으로 술을 좋아했고, 돈도 많이 벌었었는데 친척으로부터 사기를 당하여 무일푼이 되었으며, 나이가 들어 취직하기도 힘들고 하여 걸인생활을 시작하였다 한다. 부인은 선망하셨고, 이미 장성한 자식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마저도 외면 당신 몰래 모두 이사들을 하여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조차도 모르는 상태로 갈 곳 없이 전국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1000원을 꺼내주시며 소주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걸인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오전 11時 : 그분과 살아가는 이야기가 계속되었지만 ‘꽃동네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이실 지 몰라 망설이다가 시장 끼를 느끼시는 그분은 “먹을 것이 있으면 좀 달라”고 요구했지만 실로 나 또한 거지와 같은 형편이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무료 급식소’를 함께 가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 곳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밥을 배식하는 봉사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그만 나의 신분을 밝히게 되었고, 이번 현장체험에 대한 열렬한 성원도 받았다. 그 동안 안氏 아저씨로부터 꽃동네를 함께 가시겠다는 확답은 얻을 수 있었다. 다시 안氏 아저씨와 함께 역전으로 돌아왔을 때, 공중전화 박스에서 한 분의 50대 중반의 아주머니 걸인이 얼굴에 짙은 병색으로 쓰러진 채 주무시고 계신 것을 발견하였다.


   그 아주머니와는 면담의 여지도 필요 없이 충분히 입소 대상이 될 듯 하여, 수련장 수사님께 보고를 드렸다. 꽃동네와 포항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두 분의 걸인을 모시고자 하는 만큼 포항시청에 문의를 하면 차량을 지원을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 문의를 하여 마침내 그곳에 가서 차량을 가지고 왔을 때, 그 동안 공중전화 박스에 쓰러져 있던 아주머니 걸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 동안 그 아주머니를 찾아 시장 통을 헤매   였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시청 공무원은 한 분만 모시고 그 먼 꽃동네까지 가기에는 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셨으며 나 또한 미안하여 되돌려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안氏 아저씨를 역전에 계시도록 하고, 나는 계속해서 시장 통에서 보았다는 행상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 아주머니를 찾아 어시장을 몇 바퀴고 돌아 다녔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장과 역전(안씨 아저씨의 근황을 살피기 위하여)을 여러 번 왕래하던 중 오전부터 이제나저제나 기다려 오시던 안氏 아저씨가 “꽃동네로 갈려면 빨리 가지 뭐 하는 거냐?”고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찾는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고, 찾은 사람은 빨리 가자고 재촉하고, 꽃동네에서 차를 가지고 내려오라고 하기에는 거리상으로나 시간상으로 너무나 멀고, 그렇다고 지금 수중에 갖고 있는 비상금도 없는 실로 마음만 바빴다.


*오후 6時20分 : 1時間 정도 숨 막히는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완행열차에 안氏 아저씨를 모시고 몸을 실었다. 안氏 아저씨의 재촉에 못 이겨서 그리고 추운 겨울밤 잠자리도 해결할 겸 야간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지만 안氏 아저씨의 몸에서 풍겨나는 악취에 사람들은 코를 잡으며 불만을 토로하였고, 이를 신고 받은 승무원 또한 대단히 역정을 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사실을 말씀드리고 겨우 사람들의 성화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기차는 종착역인 동대구를 향하여 어둠을 달리는 동안 피곤에 지친 안氏 아저씨는 심하게 코를 골며 잠이 드셨다. 그리고 난 오늘 하루의 체험들(비난, 열렬한 성원, 불량배들의 위협 등)과 무엇보다 무료급식소에 만난 덕수동 본당 신부님의 강복과 물질적 도움을 깊이 묵상하며 잠시 눈을 붙였다.


*밤 10時 56分 : 동대구에서 열차를 갈아탔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안氏 아저씨의 시장 끼를 채워드리고 다시 조치원까지 표를 산 다음 역무원의 양해를 얻어 열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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