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꽃동네 수사님 걸인체험기 <3>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7 조회수713 추천수4 반대(0) 신고

 

꽃동네 수사님 걸인체험기 <3>

 

다섯째 날


*새벽 1時 25分 : 조치원역에 도착, 날을 새기로 하고 역구내로 들어갔을 때 난롯가 에는 20~30여명의 사람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대합실로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안氏 아저씨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에 코를 잡고 자리를 비켜서며 저마다 한 마디씩 불평들을 했지만 아저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난롯가 벤치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런데 미쳐 따스함을 느끼기도 전에 어느새 역무원이 다가와 밖으로 내 쫓으려고 윽박을 지르는 것이었다. 이미 사람들로부터 갖은 욕설과 천대 그리고 내침 받는 것에 익숙해 있는 아저씨는 한 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고 영하의 추운 역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었다. 나는 아저씨를 붙들어 세우고 역무원에게 이러이러한 사실을 말씀드리고 겨우 날이 샐 때까지만 대합실에 있기로 허락을 받아냈다.


*새벽 2時 : 조치원역 화장실에서 너무나도 기가 막힌 광경을 발견하였다. 거기에는 스팀에 등을 기대고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코를 골로 있는 두 분의 걸인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분들도 대합실에서 쫓겨나 화장실에 들어와 차갑게 식어버린 스팀이라도 위안 삼아 밤을 지새우려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니 말할 수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먼 포항에서 어렵게 안氏 아저씨를 모시고 밤차를 타게 된 것도, 조치원이라는 곳에 내려 날이 밝기를 기다리게 된 것도, 전혀 계획에도 없는 것이었는데, 나를 이곳까지 인도하심은 저분들도 꽃동네로 모시도록 하기 위하여 미리 준비된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니 기쁨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새벽 4時쯤 : 화장실에 주무시던 두 분의 아저씨 중에서 한 분이 잠에서 깨어나 추위를 피해 대합실로 들어오셨을 때 나는 반가움에 인사를, 그리고 따뜻한 자판기 커피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아저씨는 54세로, 몇 년 전 동상으로 한쪽 발가락을 절단하게 되어 보행의 불편을 느끼며, 빈속에 깡 소주를 많이 마셔서 위장을 다 버렸고, “뭘 먹으면 토한다.”고 했다.


   수년간 정처 없는 구걸생활, 갱생원에서도 생활했으며, 그리고 꽃동네에 대해서는 들은 바 있다고 하셨다. 처음 나의 제안에 대해서 머뭇거리셨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따라 가시겠다고 결정을 하셨다.


   그리고 다시 화장실로 갔을 때 나머지 한 분도 어설픈 잠에서 깨어나 담배를 피우며 알아들을 수없는 말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분은 나의 제안에 대하여 처음에는 가고 싶어 하면서도 “그런 곳에 가면 사람을 때리지 않느냐?” 하시며 반심반이 하셨다. 일단 좀 더 시간을 두고 다시 제의해 보기로 하였다.


*아침 7時 : 이 시간이 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먼저 수련장 수사님께 전화를 드려 조치원에 있음을 알려드리고, 주머니에 남은 몇 푼의 돈으로 두 분을 모시고 근처 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대접해 드렸다. 그런데 식당 주인이라는 사람, “냄새가 나서 못 살겠다”는 투정과 함께 밥을 내오더니 “빨리 먹고 나가라”고 하는가 하면 “냄새를 빼야겠다.”며 현관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었다.


   내심 무엇이라고 한마디 내뱉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다시 대합실로 돌아와 차가 도착하는 동안 나머지 한 분에 대해서 설득을 시작하였으나 쉽지가 않았다. 두 분의 걸인은 언제 어떻게 꽃동네로 가게 되는지 영문도 모른 체 “무작정 기다려 달라”는 나의 말에 신임을 할 수 없다는 듯이 재차 캐묻는가 하면 9時를 넘기면서 “어디로 가든지 갈려면 빨리 가자”하며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오전 10時 : 역전 광장으로 꽃동네 앰뷸런스가 들어오는 순간, 회한의 기쁨이 나는 물론 그 동안 오래 기다려온 걸인들도 기뻐하였다. 두 분의 아저씨는 곧장 차에 올랐으나 나머지 한 분은 아직도 반심반이하며 화장실에 계셔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제안해 보리라고 갔을 때, “술을 사주면 가겠다.”는 조건부를 내 걸었다.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하자 곧 따라 나셨다.


*오후 4시쯤 : 세 분의 걸인들을 꽃동네로 보내고,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발길 닿는 대로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심정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조치원 시가지를 헤집고 다니는 동안 문뜩 상가 대형 유리창에 비쳐진 나의 모습은 어느 정도 걸인의 행색을 갖춘 듯했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도 이제는 별로 의식하지 않을 만큼 익숙해지기 시작하였고, 도리어 내심으로는 이번 ‘걸인체험’의 목적과 어느 정도 부합되어 가고 있다는 작은 기쁨이 있었다. 그리고 천안行 시외버스에 올라타자마자 곧 단잠에 빠져들었다.


*밤 9時 : 5時 천안에 도착한 이후 줄 곧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걸인들이 있을 만한 곳을 두루 살피며 간간이 구걸을 시도해 보았지만 잘되질 않아 차라리 굶기로 작정을 하였다. 사실은 오늘 아침 아저씨들과 해장국을 먹은 탓으로 아직 시장 끼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천안역 대합실에서 잠시 쉬며 누군가를 열심히 찾고 있을 때, 사람들에 의해 대합실에서 역전광장으로 쫓기는 초라한 옷차림의 한 아저씨를 발견하였다.


   술에 만취된 그분은 곧 목구멍으로부터 온갖 것을 토해 내더니 결국은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 나는 망설일 이유도 없었던 까닭에 곧 일으켜 세우고 토해낸 오물을 대충 닦아 냈다. 그분의 행색으로 보아 걸인은 아닌 듯했으며 일단 술이 깰 때를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때 마침 어느 60대 중반의 어른이 다가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달리 관심을 보여 왔다. 이렇게 된 정황을 말씀드리자 “오늘밤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룻밤 재워야겠다.”는 것이었다. 그 어른은 “이런 분들을 여러 명 자신의 집에 데려다가 재워 보낸 적이 있다”고 하며 “오늘도 이런 분을 만나기 위하여 역전을 나왔노라”고 말씀하시며 조금 전 만취 객을 보살피는 나의 행동을 지켜보았던지 “요즘 보기 힘든 젊은이구먼”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어른의 의향에 따라 택시를 타는 곳까지 만취된 분을 부축하여 데리고 가려 애쓰던 차에 만취되었던 사람은 조금 제 정신이 들어 근처가 집이라며 우리를 뿌리치고 쓰러질듯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지하도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 어른과 나는 ‘저대로 두었다가는 이 추위에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보고 일단 어디까지 가는지 뒤를 쫓아갔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대로 역전 부근에 자취를 하고 있었고, 노동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이었다. 같이 갔던 어르신네는 자취방까지 들어가 다시 토해내는 오물을 닦아 드리고 잠자리까지 봐주는 열성을 보이셨다. 그리고 그 어르신과 나는 다시 역전으로 돌아 나오며 이웃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꽃동네’에 대해 말씀드리자 처음 듣는다며 “꽃동네를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약도를 적어드렸다.


*밤 11時이후 : “오늘 밤 잘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가시오.”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네의 호의를 정중히 사양하고 혼자 남게 되자 갑자기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조금 전 그 어르신네와 함께 만취 객을 간호하던 두어 시간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천안역은 과연 교통의 요충지답게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자정이 가까워 가는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붐볐고, 그리고 그 틈바구니로 불량배들로 여럿이 몰려다니며 만만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다. 특히 내가 지켜보던 몇 몇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을 얕잡아 보며 술병을 깨뜨리는 등 행패를 부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심 화도 치밀었으나 한편으로는 선뜩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역전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저들을 두고 역전 바로 옆에 있는 파출소는 무엇을 하는지? 그 답답한 심정은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리라 생각하며 결국 역전을 나와 무작정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섯째 날


*새벽 3時쯤 : 자정을 넘기면서 불량배들로부터 안전을 위협받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천안역을 나와 묵주기도를 바치며 ‘병천’이라는 곳의 산길로 접어들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곳까지 오면서 밤을 세울만한 곳이 여러 군데 있었지만 선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5박6일의 여정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그 동안의 체험들을 되돌아보며, 나름대로의 정리도 하고 지난날의 나의 자만자족했던 생활들을 반성하며, 좀 더 나의 육신의 피로를 통해서 진정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새벽 4시쯤 : 기왕 내 친 걸음, 꽃동네까지 가리라 마음먹고 지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승객을 태우고 새벽어둠을 가르며 달리던 택시가 내 앞을 가고 막고 서서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지만 태워 주겠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사양을 했지만 굳이 올라타라며 기사가 내려서 뒷문까지 열어 주는 성의를 보이는 것이었다.


   ‘이것도 주님의 뜻이려니’하고 택시를 탔고 그 덕분에 ‘진천’까지 단숨에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따스함도 잠시, 차에서 내려 다시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찬 서리가 내리는 듯 체감은 더욱 떨어져 으실 으실 온몸이 떨려왔다.


*새벽 5時쯤 : ‘진천 톨게이트’ 근처에 이르렀을 때 ‘인내의 한계’가 느껴왔다. 이대로 어디 한 곳에 주저앉았다가는 어쩌면 얼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밀려드는 졸음과 함께 나는 여전히 걷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신기한 것은 5-10분정도의 시간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렇게 몽롱한 상태로 걷고 있을 때 캄캄한 새벽길을 가속으로 달리는 차량들이 나를 향하여 질주할 때마다 나의 등을 두드리며 잠을 깨우는 여인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모든 여정을 마친 지금 다시 그때의 신비한 경험을 생각하면 그 여인은 분명히 성모님이셨다고 조심스럽게 확신된다. 사실 여정동안 늘 로사리오를 바치며 나의 모든 것을 성모님께 의탁 드렸었다.)


*아침 8時 : 이후 졸음에서 깨어나 온갖 힘을 다해 걸음을 옮겨 맹동입구에 이르렀을 때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5박6일의 현장체험을 무사히 마감했다.


느낀 점


   이번 체험을 통해 느낀 걸인들의 생활은 춥고 배고픈 곤고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특히 가슴 아팠던 것은 그들의 주된 생계의 현장인 공동장소(시장, 역전, 터미널 등)에서 추하고 냄새나는 걸인이기 때문에 받은 사람들의 냉대와 소외는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과 회복(재활)의 가능성 마져 꺾어버리는 사회악임에 분명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그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적 사랑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생각되며,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꽃동네 공동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 꽃동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의 역할에 대해서 새로운 각오를 다짐해 본다.


   지난 현장체험기간 동안 아쉬움이라면 여정 이튿날 동료 수사의 갑작스런 꽃동네로의 복귀(허리부상으로)는 남은 여정을 혼자서 계속하는데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걸인을 발견하고서 그분을 꽃동네로 모시기까지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야 했고, 또 걸인을 위한 약간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걸인체험’과 ‘걸인을 꽃동네로 모시는 일’ 이 두 가지의 목적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번 기간 동안 나는 실재적인 ‘걸인 체험’보다는 ‘걸인을 모시는 일’에 더 비중을 두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4분의 걸인을 모신 지난 5박6일의 현장체험은 시작부터 마침까지 성모님을 통한 주님의 놀라운 은총이 늘 함께 한 시간이었음에 깊이 감사를 드리고 있다. 곤경과 위험 중에 적절히 필요한 것으로 채워주시고 인도해 주신 그 모든 은혜로 이번 현장체험은 고생스러움보다는 좋은 추억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