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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9 조회수745 추천수12 반대(0) 신고




『선한 포도밭 주인에 대한 묵상』
황 미숙 소피아 글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이해하기 어렵고, 불공평한 주님께 반감마저 느껴진다. 우리는 일한 만큼 공평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기대한다.


우리보다 많은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직속 상사의 충복이라는 행복한 이유 하나만으로, 더 높은 보수를 받아 온 직장 동료를 밉게 생각하고 수군덕거렸던 적이 있었다. 어찌 어찌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탑 비밀에 부쳐온 급료 명세서가 적나라하게 공개되자, 여기저기서 분노의 목소리들이 겁 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일하는 대가에 어울리지 않는 불공평한 월급으로 직속상관의 사적인 감정과 이익이 많이 개입됐다는 것이었다.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며 한솥밥을 먹어온 친구 같은 동료가 단지 우리보다 더 높은 보수를 우리 몰래 받아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금세 웬수처럼 보이는 게 밥그릇 싸움인가 보다.*^^*


분명히 주님의 급료 계산 방식은 자본주의 공식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의 사고방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요즘 세상 같아선, 노동부에 신고 감이다.*^^*


주님은 세상이라는 당신의 포도밭에서 일하라고 나를 부르시며, 나와 매우 개인적이고도 고유한 고용 계약을 맺으신다.


아홉 시와 정오, 오후 세시 또 오후 다섯 시에 주님을 만난 일꾼들도 그들 나름대로 주님과 개별적이고도 매우 고유한 고용 계약을 맺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부르심을 받은 처지가 각자 다르며, 주님과 고유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나와 주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내가 오후 세시부터 일을 시작했다면, 백수· 백조 신세를 모면하게 해 주신 싸~좡~님(*^^*)께 따따블 감사드리며 내 몫에 충실하면 된다. 거기까지가 내 몫, 내 역할이 아닐까 한다.


정오부터 일을 시작한 일꾼들도 나처럼 주님과 개별적이고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며, 그들의 노동에 대한 보수는 당연 싸장님의 몫이지 내 판단과 계산의 몫이 아니다.


하늘나라의 논리와 인간 세상의 논리는 너무도 다르기에 주님은 숫자 개념이 없으시거나, 수학 성적이 빵점이셨는지도 모르겠다. 혹 계산기가 고장이 나지 않았을까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생각할수록 원통 절통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수가!'
누구는 뙤약볕에서 허리가 휘도록 온 종일 죽어라 머슴처럼 일을 했는데,
얌체족같이 생긴 저 인간은 오후 다섯 시에 와서 고작 한 시간 빈둥대고선
나와 똑같은 급료를 받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눈에서 쌍라이트가 켜진다.


주님의 포도밭에서 내가 몇 시부터 얼마나 많은 양의 일을 했는지 스스로 내 노동의 대가를 미리 계산해 얼마를 받을 것이다고 기대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월권행위일 수도 있다.


주님께서 노동의 대가로 모든 일꾼들에게 공평하게 주신 한 데나리온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에게 무상으로 퍼부어 주시는 은총이 아닐까 한다.


은총의 세계는 인간의 이해력과 지력(知力)의 세계를 초월하는 신비이기에 감히 인간의 계산 방식으로는 도저히 셈할 수도 없고 따질 수도 없다.


은총의 세계, 신비의 세계를 우리 인간이 어떻게 셈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을까? 인간 논리의 세계를 뛰어넘기에 주님의 품삯은 그분께서 주시는 대로 받을 뿐이다.


진흙이 자기를 빚어 만드는 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빚었소?" <이사야 45, 9>라고 따질 수 없듯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당신의 품삯인 은총을 노동의 대가나 공로의 대가로 환산할 수 없다.


당신의 품삯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고 차별이 없다. 주님은 내가 당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는지 묻지 않으시고 계산하지 않으신다.


오전 아홉 시에 당신을 만났든,
오후 다섯 시에 당신을 만났든,
오전 아홉 시부터 온 종일 죽어라 일을 했든,
얌체같이 딱 한 시간만 일을 했든,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무한한 은총을 그냥 퍼부어 주신다.


네가 잘났든 못났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당신의 피조물이기에 조건 없이 똑같은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나는 여러모로 봉사도 많이 하고 신앙 연륜도 깊어 특별한 대접을 받으려니 하는 건 자기 자신만의 계산법일 따름이다.


그분의 사랑은 인간 이해와 지력과 상상을 뛰어넘는다.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비를 주시고 태양을 주시는 주님께서는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는 것이지, 내가 잘났고 유독 경건하다 해서 더 사랑하시거나 덜 사랑하시지는 않는다.


당신의 포도밭에 불림을 받은 나는 내 몫에 충실하면 된다. 거기까지가 내 몫이고, 내 역할이고, 내 본분임을 겸손하게 받아들이자…!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그분을 걷어차거나,
무시해도,
그분을 거절하거나 경멸해도,
반항해도,
그분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죄악이 그분의 사랑을 감할 수 없고,
우리의 선이 그분의 사랑을 증가시킬 수 없다.
우리의 바보스런 행위가
그 사랑을 위태스럽게 하지도 않고,
우리의 충실함이 그분의 사랑을 벌 수도 없다.
하느님은
우리가 실패했다고 덜 사랑하고,
성공했다고 더 사랑하는 분이 아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맥스 루캐이도(Max Lucado)』


밝고 은총 가득한 하루 되세요.*^^* ♬ 아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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