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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은 가난한 노약자로 환자로 죄인으로 오십니다(마태복음25,1~46)/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31 조회수68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7년 8월 31일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마태복음

 

마태복음 25장은 마태복음의 묵시록이고 교회의 심판장입니다.

이 심판장은 구원과 심판으로 갈라 놓은 것입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잔(믿음을 상징)에 기름(성령을 상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구원이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잔은 있으나 기름이 없기 때문에

심판과 죽음의 길입니다.

 

우리들 보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잔에 기름(성령)를 준비하여

영적인 신랑인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구원을 받을 것인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등잔은 가지고 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서 심판과 죽음의 길로 갈 것인지

우리들 보고 자유의 의지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차체이시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구원의  길과 사망의 길을 예화로 보여 주십니다.

 

다섯 달란트(달란트는 예수 그리스도 상징)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전도를 했기 때문에 구원과 생명의 길이고 ,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율법에 매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무서운 하느님으로 보고

받은 달란트를 전도해서 한 달란트를 더 벌어야 하는데

한 달란트를 땅속인 자기 마음 안에 숨겨놓고 말씀 전도를 안했기

때문에 심판과 사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달란트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 전도를 해야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을 예화를 들어서 말씀해 주십니다

배고프고 , 목마르고,  헐벗고,  감옥에 가고,  병든,

가장 작은 내 형제에게

해 주는것이 예수님께 해 주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적으로도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구제를 해야 되겠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픈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어서 영적으로 굶주리고, 

 

 예수님의 사랑과 참 평화가 없어서 참 평화에 목마르고,  

말씀과 사랑의 옷이 없어서 헐벗고 ,

 

 원죄(원한, 원망, 선악과로 살아가는사람)의 감옥에 갇혀 있고

병든 자에게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도록

복음 선포하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요한 14,23).

하느님 말씀을 지키고 말씀으로

살아가면 열매인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나깨나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웃 사랑은 그리스도를 주는것, 즉 성경말씀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내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최후심판의 기준은 하느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작은 자에게

이웃 사랑을 해주는 것이 예수님께 해드리는 것이며.

이런 사람은 우편에 서는 사람이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고,

 

작은 자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한 사람은

좌편에 서는 사람이고 심판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것이 가장 큰 이웃 사랑이라고 하시고,

마태복음  26~28장에서 수난받고 죽고 부활하심으로써,

구원의 완성과 천국의 완성을 해 놓으신 것입니다

 

청지기 종 비유(마태 24,45~51)에서

슬기로운 종과 미련한 종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를 비유로 들어 

교회에 들어온 성도들의 심판을 말씀해 주십니다.  

 

화는 사무엘 상 25장에 나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다시 설명해 주십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예화는 다윗('사랑 받는 자'라는 뜻임)이

나발('미련한  사람'이라는 뜻임)이라는 사람에게

빵과 포도주를 보내 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다윗이 앞으로 왕이 되리라는 것을 모르고 거절을 했습니다.

 

나발의 부인인 아비가일

('내 아버지는 기뻐하신다'라는 뜻임)에게는  

영리한 다섯 여종(사무 상 25,48)이 있었는데 아비가일에게 가서 

"큰일났습니다.  주인인 나발 어른께서 다윗 장군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라고 보고를 해서,

 

 화가 나서  나발을 죽이려고 오는 다윗 장군에게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미리 나가서 아비가일이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청을 받아들이고 용서해 주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나발이 듣고 죽었습니다.

나발이 죽고 난 후에 아비가일이 다윗의 부인이 되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면으로 보면 잘못인 것 같으나

나발이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못 보았기 때문에 죽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시며  만왕의 왕이시고

구세주라는 것을 모르고 영접하지  않고

믿지 않는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되지 말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약의 사무엘 상 25장의 예화에 아비가엘은 영리한 

다섯 시녀가 있었고 나발은 미련한 다섯 시녀가 있었는데

 

 아비가엘의 영리한 다섯 시녀들의 말을 아비가엘은 듣고

목숨을  구했지만 미련한 나발은 미련한 다섯 시녀들의 

말을 듣고 다윗을 맞이하지 아니해서 죽었던 것을  예화로

들어서 우리들이  잘 모르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풀어서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다윗왕한테 가서 죽지 않고 사는 것처럼

우리들은 예수님을

영접해야 영혼을 구원받는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다윗왕은 신약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입니다.

밧세바도 다윗의 부인이 되어서 밧세바가 낳은 아들,

솔로몬('평화'라는 뜻임)이 왕이 됩니다. 

 

도덕적으로 보면 잘못인 것 같으나 우리들이 어떤 죄를 짓더라도

예수님께 가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을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약에서는 다윗왕한테로 가면 살고

또한 다윗은 예언자였으며 앞으로 오실 예수님의 예표인 것입니다.

 

열 처녀 비유(마태 25,1~13)

           

영리한 다섯 처녀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이며

이 '슬기롭다'는 헬라말은 '프레니모스'로서

성령을 쫓아가는 사람들로 슬기로운 처녀들과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성령을 충만히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세상의 결혼을 예화로 들어서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결혼을 통해서

성체가 되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복되도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요한 묵시록 19,9) !

성경에서 결혼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결혼을 말씀하십니다.

 

등잔은 믿음을 말하는데

이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레마)을 들음으로 옵니다(로마 10,17).

그래서 믿음은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예수님이 말씀이므로 

이 믿음은 예수님이고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 등잔은 믿음을 상징하고 이 믿음은 은사를 상징합니다.

은사가 있는 사람은,

기름인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갈라디아서 5,22~23) 등의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고

 

이 은사나 열매는

하느님의 속성(성품)이므로 살 수도 빌릴 수도 없는 것이고 ,

말씀 읽고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해서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경의 말씀을 다 가지고 있으나 읽지 않는다면  

등잔은 있으나 기름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우리들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어서

말씀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등의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믿고 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다 등잔을 갖게 됩니다.

등잔의 기름은 석유가 아니라 이 기름은 헬라말로  '크리스마' 인데

기름 부음받음 요엘서 2,27 에 나옵니다.

 

 이 기름은 성령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재등(갈라 5,22~23)이므로,

 

친구들한테 빌릴 수도 없고 돈으로 살 수도 없으며

오직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말씀 읽고 열매 생활을 하는 것이므로

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돈으로도 살 수도 없습니다. 

 

이 말씀의 열매는 성경의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여 그 말씀을 깨닫게 되는데

이 깨닫는 말씀을 '레마' 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성스러운 일이라고 해서 성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예수님께서 말씀인 '레마'로 하시기 때문에

레마사역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들이 하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은 사람도 살리시고

말씀(레마)하시는 대로 말씀 성취가 됩니다.

 

등잔은 성령의 은사를 의미합니다.

기름은 성령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육과 은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이지만

성령의 열매인 사랑은 영생의 양식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열매인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갑시다.

.

1  "그 때 하늘나라는 열 처녀가 등(믿음=성경책)을 들고

   신랑(예수 그리스도)을 마중나간 것과 같을 것입니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자)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말씀=성령의 열매를 맺은 성도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갖고 있으나 기름은 갖고 있지  않았지만

 

 설명: 나발을 따르는 다섯 시종들은,

      다윗에게 빵과 포도주를 줄 필요가 없다고

      나발에게 권한 어리석은 종들이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는  했지만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4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우리들의 심령 안에)에

    기름(성령의 열매)도  담아 갖고 있었습니다.

 

5  신랑이(우리들의 영적인 남편인 신랑은 예수님이며,

    성경에서 남자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늦어지자 모두 졸다가(영적으로

    말씀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잠이 들었는데 

 

10  그들이  사러 나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묵시록 19,7)

    문이(말씀의 문임. 골로사아서 4,3) 닫혔습니다

 

 설명: 성령의 열매인 사랑의 삶을 사는,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골로 4,3에서

      헬라 원문에는 '호 로고스' 즉 말씀의 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떤 번역서는 '전도의 문'이라고 쓰어 있는 성경책도 있습니다.

 

      성서의 말씀이 열리고 깨달아서 말씀화가 되는 것이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천국입니다. 

 

12  신랑(예수님)은  대답했습니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나는 너희를 모른다.'

 

 설명:  아멘, 아멘.  두번 반복하시는 것임. 반드시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13  그러니  깨어 있으시오.

    그 날과  그 시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설명: 영원한 생명은

      '한 분이신 참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한 17 ,3).

 

      안다는 것은 눈으로 보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같이 살아가면서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아는 것처럼

        

     우리들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면

      아!  하느님의 속성인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럴 때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것이 영원한 죽음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시면  영적으로 잠들고 죽은 상태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모르는 자는

      예수님을 모르고 또한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39 에서는

       "당신들은 성경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를 연구하고 있지만,

바로 그 성경이 나에(예수님)대해 증언하고 있다."고 하십니다.아멘.

 

성서의 책은 구원의 책입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등잔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구원을 받고,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심판을 받게 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구원하시기 위하여

달란트 비유를 들어서 구원 과정을  계시해 주십니다.

이 달란트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마태 20,4 에서도 

데니리온 즉 'dikaios' 라는 헬라말(상당한 삯)은 의로움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13,44~46 을 보면

예수님을 진주 또는 보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천국가는 데는 돈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마태 2,10 에서도

동방의 세 박사들이 황금, 유황, 몰약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은 

금은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라는 뜻이고,

유황은 신성을 상징하고,  

 

 몰약은 썩지 않게 하는 약인데 예수님의 인성을 말합니다.

자세한 것은  마태 2,10 을 읽어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는 사도들이고,

두 달란트는 성인들이고,  

한 달란트는  평신도들로 비유해서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계시되어 있는 뜻을 잘 알아서

우리들도 모두 구원을 받도록 하십시다.

 

묵시록  21,15 에 나오는 금갈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갈대는 우리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이사야서 42,3 에 나오는 부러진 갈대는 우리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성도들을 달란트  비유를 들어서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을 설명하십니다.

 

 

달란트 비유 마태 25,14~30;마르13,34;루카19,11~27

          

14    "그것은 여행가는 사람의 경우와 같습니다.

      그는 떠나면서(마태 24,46) 종들을 불러  재산을

      (영적 양식) 맡기며

 

15  깜양대로 하나에게는 다섯 달란트(레마-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함),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설명: kai는 헬라말로 '그리고'라는 뜻임.

          원문에는 깜양=능력이라는 말이 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16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곧 가서 그것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설명: 다섯 달란트를 벌은 것은 그리스도를 받고 그리스도를 주어서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그 좋으신  복음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17  두 달란트 받은 종도 그렇게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18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습니다.

 

설명: 여기에서 땅은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아서 나의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복음을 전하고 전도를 해야 하는데 전도를 하지 아니했으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받은 능력을 하느님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받은 능력대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율법에 매어  있으니까

      두려워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19   많은 시일이 지나 주인이 와서 셈을(말씀 심판, 요한 12,48)

      밝혔습니다.

 

20   다섯  달란트 받은 이가 다가와서 다섯 달란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다섯 달란트를 맡겨 주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니

 

21  주인(하느님)이 말했습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작은 일에 충실했으니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주인의 기쁨(성령의 열매, 갈라 5,22~23)을 함께 누려라.'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달란트를

    땅(마음=심령) 속에 숨겼습니다.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입니다.'

 

27  그렇다면 내 돈을 돈놀이꾼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이자와 함께 돈을 돌려 받았을 것이다.

 

설명: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율법의 하느님,

      무서운 하느님, 벌 주시는 하느님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즉 복음을 받아서 자기 안에 간직하고 전도를

      아니 했으므로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벌 주시는 구약의 하느님으로 보시지 말고

      자비와 용서와 사랑의 하느님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8 그자한테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넘치게 가질 것이고

    갖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설명: 하느님께서 돈을 많이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게 하고

      돈이 없는 자는 더 가난하게 하시는 하느님으로 보시지 말고,

      그리스도 즉, 복음을 받아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사랑이 충만해지고

    기쁨의 열매를 맺으면 기쁨이 더 커지는 것을 말합니다.

         

    기쁨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달란트를 그리스도 즉 예수님으로 보셔야 성경의

    맥이 통합니다.

 

30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둠 속으로(지옥을 상징함) 쫓아내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열 처녀 비유에서

등잔과 기름을 준비한 영리한 다섯 처녀는 주님을 영접해서

구원 받은 사람이고,

또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전도를 해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벌었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해서 구원 받게 됩니다. 

 

이제 최후 심판에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뵙고 구원 받음을 예화로 설명해 주십니다.

 

 이 달란트도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루가복음 10,25~42을 예로 들겠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이중 계명에서

주님께서는 예화를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이 하느님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

열매인 사랑이 오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입니다.(요한복14,23).

 

또 이웃 사랑은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통해서

강도를 맞아 거의 죽어가는 사람에게 기름(성령을 상징함)을 발라

주고 포도주(예수님을 상징함)를 부어 상처를 싸매 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강도맞은 것처럼 어렵게 살아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는 치유됨을

예화로 들어서 설명해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을 만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나 자신입니다.

 

이웃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래서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물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고,

 

 감옥에 있는 사람을 방문하고,

병든 사람을 친절하게 돌봐 주는 것 등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예수님께 해주는 것이라고

이웃 사랑을 설명하십니다.

 

내가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 주고 사랑했느냐가

우리들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열 처녀 비유에서 하느님을 못 만나면

다시 달란트 비유에서 주님을 만나도록 예비해 주시고,

거기에서도 못 만나면

또 다시 이웃 사랑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도록 배려해 주십니다.

 

 그래도 만나지 못할 때는 요한복음 2장에서 만나게 해주십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이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 하고 말씀하시자

예수님은  "아직 제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만드는 기적을 행해 주셨습니다.

 

 성모 마리아님이 포도주를 청해 주신 것처럼

우리들은 성모 마리아님께 증보의 기도를 청해야 합니다.

 

최후 심판(마태 25,31~46)

 

31    "인자가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오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입니다

 

설명:  천사는 육의 차원(낮은 차원)에서 볼 때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사로 보지만 영의 차원

       (헬라어로 '푸뉴마')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는 전달자, 즉 메신저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이고

      신약에서는 사도들입니다.

      오늘날은 하느님 말씀을 증거하는 성도들입니다.

 

 

     옥좌는 세상에서는 왕들이 앉아 있는 의자이지만

     영적으로는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수난 받고 돌아가신 십자가가 옥좌이며 보좌입니다.

 

     영광은 우리들의 육이 죽고 영으로 부활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우리들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은

        

     말씀화가 되어서 육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우리들의 영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  것입니다.

 

33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세울 것입니다.

 

설명:  오른편은 우리들이 시공간 차원에서 볼 때는 오른쪽이지만

       영의 차원에서 볼 때는 오른쪽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다 오른편에 속하고 구원받은 자들이지만 ,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왼편이며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도(예수님의 십자가의 오른편에 매달려 있던 강도)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 받은 자를 의미하고,

      좌도(십자가의 왼편에 매달려 있던 강도)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제단을 보시면,

      제단은 히브리 말로 '에벤루아흐'로, 

      '에'는 아버지를 뜻하고,  '벤'은 아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제단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뜻하며,

 

       복음 독서대가 제단의 우편에 있는 것입니다.

       제단이 3층에 있는 것은 고린토 후서 12,2 을 보면

       천국이 3층 하늘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미사 때 제대가 몇 층에 있는지 보십시오. 

       제대도 3층에 있습니다.

 

34  그 때 임금(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은 오른편 사람들에게

    말할 것입니다.'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부터 너희를 위해 마련해 둔 나라를  상속받아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맞아들였다.

 

설명:  굶주림은 육적으로

       볼 때는 먹을 음식이 없어서 굶주린 것이지만

       영적으로 봤을 때는

 하느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고 사는 사람이 굶주린 사람입니다.

 

      하느님 말씀은 영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묵상해서 '레마

     (헬라어로 감동된 하느님 말씀이란 뜻임)'로

     먹지 않으면 굷주린 사람입니다.

 

 목말랐을 때는 육안으로 볼 때는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마른 것이지만

 영으로 볼 때는 하느님 말씀을 문자로 보는 것이 목마른 것입니다.

 (고린토 후서 3,6)

            

       나그네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안 계시면

       우리들은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고아이고 또한 나그네 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안 계시면 영적인 남편인 예수님이

       안 계시므로 남자나 여자가 다 과부이고,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가 아니시므로 다 나그네이고 고아들입니다.

 

36  헐벗었을 때 입혀 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으며,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와 주었다.

 

설명:  헐벗음은 육안으로 볼 때는 옷을 못 입는 것을 말하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영차원으로 볼 때는

      말씀의 옷인 그리스도 옷을 입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며

       마태복음  22장에서는 예복을 말합니다.

      또한 모시옷으로도 상징합니다.

 

  감옥은 육안으로 볼 때는 죄를 지은 죄수들이 있는 곳을 말하지만

  영안으로 볼 때는

  우리 에고인 육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없을 때는

  내 육체 자신이 육의 감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들은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됩니다. 

 

40  이에 임금이 말할 것입니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너희가 지극히 작은 네 형제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설명: 병든 것은 육안으로 볼 때는 몸이 아픈 것을 말하지만

 영안으로 볼 때는 우리 심령 안에 죄가 있는 것을 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인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주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해 주는 것이

      영적인 병을 치유해 주는 것입니다.

 

     매일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해 주는 것이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 주는 것이 되고

      예수님께 해 드리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은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이 하느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은 성경 말씀을 전해 주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46  그래서 이들은 영원한 벌을 받으러 갈 것이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러 갈 것입니다.' "

 

설명: 신부님의 강론을 예화로 듭니다.

      태어날 때부터 세례를 받은 구두 수선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오늘 너를 찾아가겠다. "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 청소하는 사람이 자기를 찾아 온 것을 보고

     커피 한 잔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청소부는

  평상시 구두쇠 같던 분이 어쩐 일로 커피를 주나 의아해 했습니다.

      왜냐하면 커피는 아침 식사이기 때문입니다.

 

       좀 있다가 소녀가 꽃병을 들고 가다가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구두 수선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오시다가 발을 상하면 어쩌나' 하고

       자기 화병을 그 소녀에게 얼른 갖다 주고

       깨진 꽃병 주위를 깨끗이 청소해 놓고 기다렸습니다.

 

       한참 있다가 자기한테 구두를 수선하였던 사람이 와서

       수선비로 500원을 달라고 하였으나

       그 사람이 자기는 300원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500원을 다 받았을 터인데 예수님이 오실

       것을 생각하여 300원도 좋다고 하여 보냈습니다.

 

        하루종일 기다려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 사람은 예수님꼐 물었습니다.

        "하루 종일 예수님을 기다렸는데 왜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아니다. 오늘 내가 너를 세 번이나 찾아 갔었다.

   그런데 너는 나를 모른다 하지 않고 나를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이 예화를 통해서

        우리는 이웃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게 되었으며,

        예수님께서는 매일매일 우리가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

        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 한사람 한사람에게

        사랑과 기쁨과 친절을 베푸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해 드린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고,

        26장에서는

        이웃 사랑은 희생과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26, 27, 28장에서는 가장 큰 사랑은  

        형제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 놓는 것임을 보여 주십니다.

 

         심판은 율법으로 볼 때는

         십계명을 지키고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보지만

         영차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사랑의 사람으로서 살아갈 때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 받는 자입니다.

 

 

         이제 마태 26장, 27장, 28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수난 받고 죽으시고 부활을 하심으로써

         천국을 완성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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