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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작성자지현정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01 조회수688 추천수12 반대(0) 신고

어느 날, 사탄은 큰 결심을 했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인간 세상으로 올라가

가장 신실한 가톨릭 신자의 모습을 하고

가장 신실한 신자들을 현혹하기로...

 

그래서 순박한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위장한 사탄은

성당에 드나들면서 신자 행세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판공성사 기간이 되자,

신자들은 저마다 사탄에게 고해성사를 보았느냐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대는 데에도 지친 사탄은

기어이 판공성사표를 들고 고해소 안에 들어섰습니다.

 

목소리만 들리게 해놓은 고해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부님을 마주하니

사탄은 까닭모를 적개심과 더불어

자기가 저질렀던 수많은 끔찍한 죄악들을 낱낱이 토해내어

그의 귀를 더럽히고 구역질나고 소름끼치게 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여태껏 행했던 모든 일들을 다 말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끔찍한 것들만을 골라서 아주 생생하게 다 말했습니다.

 

그 무서운 고해를 하는 동안 시간이 흘러 ... 어느 새 하루 밤이 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탄은 천연스런 목소리로... 자기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척 긴 고해였습니다. 성찰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가지 미심쩍은 일이 있습니다. 

 

 그토록 긴 고해를 하시면서, 형제님은 한 번도 하느님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린 것이 가장 큰 죄책감으로 남았을 터인데

 그 모든 죄를 고백하는 동안, 그 긴 시간 동안 ... 당신은 한 번도 하느님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미안합니다만... 지존하신 분을 대신하여 죄를 사해 드리기 전에

 한 가지만 당부할까 합니다."

 

그러면서... 사탄에게 당부하시기를

당신이 이제까지 지은 죄가 생각나는 대로 그 하나 하나마다

지푸라기 하나씩을 모아서 성당 뒷마당에 쌓으라고 했습니다.

다 모아 놓고 나면 그때가서 다시 말씀을 전하겠다 하였습니다.

 

사탄은 당황했지만, 그래도 기왕 연극을 하기로 한 것이니 충실히 하기로 하였습니다.

 

실제로 저지른 죄의 무게에 비해서는 턱도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산더미같이 커다란 죄의 지푸라기를 쌓아 놓고서... 사탄은 신부님을 불렀습니다.

 

"명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망설임 없이 명령하셨습니다.

 

"지금 당장 이 짚더미에 불을 붙여 남김없이 태워 버리십시오." 

 

사탄은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껏 힘들여 성찰하며 죄 하나마다 짚을 모으라 하시고서는

 이제 와서는 아무 의미 없이 모두 태워 버리라니요?

 

신부님은 말했습니다.

 

"죄에 집착하는 것은... 언제나 어리석은 우리 자신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절대로 지난 시간의 죄악에 집착하지 않으십니다.

 

 형제님께서 진정,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진실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고해를 하신 거라면

 지금 당장 이 죄의 짚더미를 태워 없애 버리십시오.

 그와 동시에 당신의 죄는 사함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 명에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에게 있어서 그 죄의 짚더미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

 

닐 기유메트 신부님의 저서에 나온 이야기를 요약해 보았습니다.

 

물론 사탄의 존재는.. 우리 인간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러나 이 말씀은 저에게 참으로 큰 위로와 더불어 깨달음을 주십니다.

 

수없이 헛딛는 발걸음... 크고 작은 실수... 잘못 생각함으로써 비롯된 모든 죄악들...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주었던 상처들...

이런 것들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진심으로 후회하고 뉘우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스스로 마음이 편하지 않고

여전히 아프고 자신도 없는... 그런 마음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안되겠지요? 이미 다 용서해 주셨는데...

하느님은 이미 우리 스스로 뉘우친... 지난 시간의 죄악에 집착하지 않으시는데...

 

류시화 시인의 시 한 편이 생각납니다.

그 시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은총 가득한 주일 되십시오.. ^^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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