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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서 셈하시는 방법은 우리와 다르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01 조회수609 추천수8 반대(0) 신고
 
 
 
 

<하느님께서 셈하시는 방법은 우리와 다르다> ... 윤경재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마태 25,14-30)



  하느님께서는 인간 각자에게 무상으로 선물을 주십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선물입니다. 요사이는 달란트라고 말하면 어떤 능력이라는 연상이 먼저 떠오릅니다. 영어 단어가 그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하느님께서 사람에 따라 능력을 다르게 주시는 불공평한 분인 것처럼 생각됩니다만 그것은 달란트라는 단어의 의미가 변화된 이후에 생겨난 것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이라는 선물은 개인의 능력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다만 그 생명을 얼마나 잘 가꾸고 보람차게 영위하느냐는 그 사람에게 달렸습니다. 각자에게 질병과 사고가 닥쳐오더라도 그 생명의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래 살았다고 해서 그 생명의 가치가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여행을 떠나는 주인은 종들의 인간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종들의 능력에 알맞게 돈을 맡겼습니다. 종이 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일을 맡긴 것이 아닙니다. 흔히 이 비유를 이야기할 때 주인이 돈을 차별하여 준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각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만큼만 책임을 맡긴 것입니다. 그 능력을 넘어서는 돈을 억지로 맡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첫 번째 종은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라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어 원문의 의미를 살펴보면 “자기의 삶을 살면서 다섯 달란트를 활용하여 다른 다섯을 더 벌었다.”입니다. 그리스어 동사 ‘포레우오마이’는 자기 역할을 하면서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을 뜻하는 동사입니다. 남이 시켜서 또는 부러워서 억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 하느님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을 때 첫 질문 받는 것이 바로 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을 살았다면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삶이 무엇인지 알아 그 역할을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비유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역시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그렇게 하여 다른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이 두 종이 주인에게서 받은 칭찬과 상급은 똑 같습니다. 많은 일을 맡기는 것과 주인과 함께 자리하는 기쁨을 누리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맡기는 것과 들어가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과급과 전혀 다릅니다. 많이 벌면 더 큰 상을 받고 적게 벌면 적은 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실하게 자기의 삶을 살기만 하면 똑같은 상을 받는 것입니다. 능력에 부치는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태도가 전혀 다릅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여기서 쓰인 동사 ‘아페르코마이(물러가서)’는 도망쳤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비겁하게 외면하고 도망치는 행동을 뜻합니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자기의 삶을 충실하게 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허비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 세상에 나와 생명을 부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래 살거나 일찍 죽는 여부와는 상관없이 자기가 받은 생명에 충실하다면 그는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 여태까지와 전혀 다른 생명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과 함께 사는 기쁨(카라)입니다. 주님과 한 식탁 공동체에 들어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상에서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식탁 공동체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부족하나마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고 났을 때 받을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기쁨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각자가 받은 달란트를 성실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기쁨은 현세에서도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그저 미래에 유보된 기쁨이 아닙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서만이 받을 수 있는 기쁨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기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생명을 사는 길입니다. 남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 또 그 길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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