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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3일 야곱의 우물- 루카 4, 16-30 묵상/ 복음은 선포다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03 조회수591 추천수7 반대(0) 신고

복음은 선포다

(필자가 묵상한 부분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보아라.’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
루카 4,16-­30)
 
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산 위의 마을`)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았다. 61장을 펴서 읽었고, 회중은 들었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다만 그랬을 뿐인 상황을 두고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순간에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전하는 것과 선포하는 것은 무슨 차이일까?
 
어린이는 다가오는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면 이미 자전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엄마의 말은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고 그래서 현실이 된 것이다. 말하는 순간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이 선포다. 광복절 특사 명단이 발표되는 순간 이미 석방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듯. 복음은 선포다.
 
말씀은 읽고 듣는 순간에 이미 현실이어야 한다. 회개하라는 말을 들으면 이미 새사람이 된 것, 용서하라면 이미 화해가 이루어진 것, 나누고 사랑하라면 이미 누군가가 사랑에 넘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복음에 대한 친절한 주석과 묵상은 선포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주님의 가르침을 언제까지나 묵상만 하고 해설만 할 것인가? 이제는 듣는 대로 느낌대로 말하고, 가르침대로 행하고, 예수님의 요청대로 우직스럽게 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들었으니 재산을 처분해 나누어 주고 제자의 길을 떠나야 한다. 신자로서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그렇게 행해 보고 나서 ‘비로소 하느님 나라를 얻었다.’ 하든지, 아니면 ‘완전히 사기당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자로 산다는 것, 보통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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