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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의 덕" --- 2007.9.2 연중 제22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03 조회수502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9.2 연중 제22주일 
집회3,17-18.20.28-29 히브12,18-19.22-24ㄱ 루카14,1.7-14

 

 

 


 

"겸손의 덕"

 

 

얼마 전 흥미 있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서비스가 한국 먹여 살릴 날 온다.” 라는 제하(題下)에

‘서비스 사이언스(Service Science)' 정규 과정 첫 개설에 즈음한 
서강대 손 병두 총장의 다음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제품이 곧 서비스이고 서비스가 곧 제품이 된 시대에서 
  업종을 떠나 모든 기업이 서비스 경쟁력 강화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사이언스가 앞으로 얼마나 중요한 학문이 될 것 같으냐고요? 
  아마 지금의 컴퓨터 사이언스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갖는 학문이 될 것입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교의 영성, 
한 마디로 요약하여 
‘서비스(섬김)의 영성’ ‘서번트(종)의 영성’이라 하지 않습니까?

하여 교회나 수도원, 업종으로 친다면 ‘서비스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와 서번트 같은 어원입니다.

이제 서비스가 과학이 되어 학문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복음적 섬김의 덕목이 기업에까지 확산되어 보편화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바야흐로 요즘 권위나 리더십 앞에도 ‘섬김’이 붙기 시작하여 
‘섬김의 귄위’ ‘섬김의 리더십’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섬김의 모범,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너희들 가운데 섬기는 자로 와 있다’ 말씀하시며 
손수 무릎 꿇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신 주님이 아니십니까?

예수님을 통해 환히 계시된 ‘섬김의 하느님’입니다.

섬김은 겸손의 표현입니다. 온유 역시 겸손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겸손자체이시고 섬김과 온유로 우리를 살리시고 우주만물을 살리십니다.

하느님 겸손의 덕을 잘 상징하는 게 물이요 흙입니다.

아래로 흐르면서 소리 없이 스며들어 생명을 키워내는 물이요, 
역시 소리 없이 모두를 받아들여 생명을 키워내는 흙입니다. 

하여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덕은 물과 같다고 노자는 설파했고, 
겸손(humilitas)이나 인간(homo)의 단어 역시 흙(humus)에서 기원합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를 겸손이라 합니다.

겸손하신 하느님, 물 같기도 하고 흙 같기도 합니다.

물 같은 사람이, 흙 같은 사람이 겸손한 ‘참 사람’이요 하느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하여 영성의 가장 확실한 표지는 겸손임을 깨닫게 됩니다.

겸손으로 풍요한 영성 지녀야 비로소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주 인간성을 넷으로 나누어 보곤 합니다. 

첫째가 영성(靈性), 
둘째가 인성(人性), 
셋째가 수성(獸性), 
넷째가 마성(魔性)입니다. 

겸손의 덕으로 영성 풍요롭게 하지 않으면 참 사람이 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윤리 도덕의 인성도 본능적 욕망의 수성 앞에, 
무의식 안에 잠재해 있는 마성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닙니다. 

영성 빈약하면 누구나 짐승 같은 사람도, 마귀 같은 사람 될 수 있습니다.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때로 후에 ‘꼭 무엇에 씐 것 같았다.’ 하는 말 
마성이 발동된 것이지요.

겸손은 하나의 처세술이 아닌 하느님 앞에서의 내적 마음 자세를 뜻합니다.

하느님을 닮아갈 수록 겸손한 사람입니다. 
사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저절로 겸손을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들어나기 보다는 숨겨지길, 
높아지기보다는 낮아지길, 
채우기보다는 비우길, 
특별한 것보다는 평범한 것을 좋아합니다.

하여 이런 겸손한 마음은 자연스럽게 외적 섬김이나 온유한 행위로 표현됩니다.

“네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여라...네가 높아질수록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겸손한 이들, 이런 하느님의 말씀들 그대로 공감하여 
그대로 물을 흡수하듯 빨아들여 실천에 옮깁니다. 

하여 겸손한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이요 
교만한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삶의 축제에 초대 받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 은혜로운 미사가 삶은 축제임에 대한 압축적 상징입니다.

미사는 우리 일상의 삶으로 확산되어야 하고 
일상의 삶은 미사로 수렴되어야 비로소 우리의 삶은 축제의 삶으로 변합니다.

우리를 당신의 생명의 미사 잔치에 초대해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누가 너를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말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이 미사 잔치 자리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한결같이 겸손한 행위를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처럼 윗자리를 탐하는 허영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어 잔치를 베풀 때에는 친구나 형제,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이 아닌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 먼 이들을 초대하라 하시며, 
몸소 이 미사를 통해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모두를 초대하는 주님의 미사잔치가 아닙니까?

가난한 이들이나 부유한 자들, 건강한 자들이나 장애인들 할 것 없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생명의 축제 미사잔치입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한 빈손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순간은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지요! 

이보다 평등의 상징성 잘 드러내는 경우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성체를 모실 때 진정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아멘’ 고백하며 모실 때 
주님은 겸손의 덕을 선물로 주십니다.

겸손한 자들, 하느님을 만난 내적 풍요의 사람들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한 은총이기도 합니다. 

이런 겸손한 이들의 마음의 눈에 열리는 영적 비전입니다. 

바로 2독서 히브리서의 영적 비전을 우리는 이 미사를 통해 체험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와있는 여기가 
시온 산이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이 있고,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대로 미사를 통해 앞당겨 실현되고 있는 장면이 아닙니까?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 천상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성전 안에서 
하느님을 상징하는 제대와 미사 안에 현존하시는 새 계약의 중재자 예수님, 
그리고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찬미와 감사의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영적 비전의 체험이 우리를 내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겸손하게 합니다.

진정 하느님을 체험할수록 하느님을 닮게 되어 저절로 겸손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의 겸손은 순종과 섬김, 온유 등 
온갖 외적 행위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말씀과 성체로 우리를 섬기러 오시는 겸손하신 주님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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