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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내산을 올라가며.../ 옮겨온 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04 조회수713 추천수4 반대(0) 신고

시내산을 올라가며...


 

 


시내산을 올라가며

시내산은 성지순례 일정(日程) 중에

가장 긴장되었던 곳이다.

시내산 밑 가까운 호텔에서

새벽 한 시 반에 모닝콜로 집합하여

산 입구에 모여 간단히 짐 검사를 한 후,

오전 2시에 현지가이드와 함께 출발하여

약 3시간 만에 도착해보니,

이미 정상엔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었다.


도대체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은

왜 한라산보다 더 높은 2,285m의 시내산에 올라왔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바이블에는 많은 산들이 등장하지만,

이곳만큼 역사적(歷史的) 의미가 깊은 곳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먼저 모세는 시내산에서

신을 만나 소명(召命)을 받았고,

출애굽 후에는 십계명을 받던 곳이요,

나중에는 성막(聖幕)을

처음 친 곳이 바로 그 곳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의 수(數)를 조사했고,

아비후는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그 곳에서 멸망 받았고,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 숨어 있던 곳이

바로 시내산이 아니었던가.


이렇듯 그들의 지도자요 민족의 영웅인 모세를 통해

시내산은 이스라엘에게 삶의 근원과도 같은

성산(聖山)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내산은 이렇게 의미 깊은 사건들이 많지만

설령 그런 종교적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오직 시내산 일출(日出)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그 곳은 또 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새벽에 올라갈 때 하늘을 쳐다보면

태고적 모습의 달과 별은

어느 전위미술가가 작품을 전시하듯이,

무질서 속에 한없는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


드디어 새벽 5시가 조금 넘으니

서서히 어둠을 걷어내며

하늘빛이 천하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장엄한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에

사람들은 넋을 잃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어쩜 내 생애에 그런 아름다운 장면을

또 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장관(壯觀) 그 자체였다.



일출의 감동을 가슴에 새기고

하산할 때는 조금 험하지만

사천 개 계단 길로 갔다.


그 길은 오직 돌과 바위로 이루어졌는데,

길이 아니라 거대한 전시품처럼

바위마다 얼굴이 새겨있는 듯 했다.


그 길이 끝날 즈음에

또 한 번의 감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성 카타린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4C초 박해(迫害)가 심할 때,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캐서린은

용모와 학식이 뛰어난 여자로

황제 숭배를 우상으로 여겨

결국 순교를 당하였는데,

그 때 천사들이 그녀의 시신을

이 산 제일 높은 곳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이 수도원은 아침 9시부터

작은 한 개의 문(門)을 통해 들어가는데,

이드로의 우물,

모세의 떨기나무,

희귀한 성경이 바티칸 다음으로 많다는

도서관도 있고 기념 교회까지 있다.


믿음을 위해 캐서린은 순교(殉敎) 당했지만,

우리는 그녀의 피와 눈물로 닦아놓은 길을

너무나 편하게 구경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시내산은 겉으로 볼 때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이렇듯 많은 의미와 외적인 감동이 있었기에

다시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나는 시내산을 내려오면서

왜 신은 수많은 산 중에 그 곳에서

계명을 주셨을까하는 질문을 해 보았다.

감사하게도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유태인들의 전승인 미드라쉬에 보면

이미 그 이유(理由)가 나와 있다.


신이 계명을 주시는데

아무래도 산에서 주실 것이라는 소문이 나자

, 이름 있는 산들은 자기가 선택되어야 한다고

주장(主張)하기 시작했다.

아라랏산이 노아 홍수를 운운하며 말하자,

갈멜산은 엘리야 사건을 말했다.

헐몬산도 질세라 자기가 적당하다고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시내산만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신(神)은 ‘가장 작고 별 볼일 없지만,

가장 겸손한 너에게 내 선물(膳物)을 주겠다.’고 말하면서

시내산을 선택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학교 다닐 때 들었지만,

시내산이라는 이름의 뜻을 알면

그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음을

금방 이해할 것이다.

시내산이란 히브리어로

‘가시덤불’, ‘쓰레기’란 뜻이 있고,

시내산의 또 다른 이름인 호렙산이란

‘건조한 곳’, ‘척박한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시내산’이란 이름대로

정말로 한 톨의 흙도 없이

온통 돌과 바위로 된 붉은 산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삭막하고

쓸모없는 무가치한 산이기에

전승(傳承)대로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곳이지만

신은 그 산을 택하여 영광을 받으셨던 것이다.



흔히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조사해보니,

오늘의 그들을 만들었던 요소로

I.Q나 기술 그리고 환경적인 요인들은

16%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았고,

나머지 84%는 그 사람의 자세

곧 태도(態度)가 그러한 성공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인생에서 외적인 요소인 이름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의 내용인 자세에 있다.

비록 시내산처럼 무가치하고

황무지(荒蕪地) 같은 곳이라도

그 곳에 떨기나무가 꺼지지 않았듯이,

내 인생의 사명(使命)의 불이

꺼지지만 않는다면,

붉은 바위들은 붉은 심장으로 요동치므로

가장 가치 있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므로,

시내산같은 내 인생은 오히려 자랑해야할

내 능력(能力)의 성산이다.



두 번째로 시내산은

인간사회에서 법(法)이 왜 필요한지를

교훈하고 있는 산이다.

시내산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역시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규례(規例)와 법도를 받았다는데 있다.


그들이 산 밑에서 1년간 있을 때에

모세는 40주야를 산꼭대기에 머물면서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오는데,

백성들은 그 사이를 못 참아

‘주인’이라는 의미의 바알을 섬기며

금송아지를 만들어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모세가 받아 온 계명과

거의 다 대치된 행동이었기에

화가 난 그는 십계명(十誡命)을

그 자리에서 깨뜨려 버렸다.


대부분 사람들은 법(法)보다

눈앞의 바알을 더 좋아하여

법 없는 유토피아 세상을 꿈 꿔보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이 검증된 명제라고 하는 것은,

사람은 선한 마음만 갖고

살아 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몰라서 실수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피해 줄 때가 더 많은데,

그 때마다 최소한의 규약(規約)도 없다면

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겠는가.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와의 관계든 책임이 수반되는데

만약 그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관계(關係)도 깨어지고

사회도 붕괴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法)이 없다면

사회의 붕괴는 나중 일이라 해도,

당장에 스스로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존엄성은

어떻게 유지하며 살아 갈 수 있겠는가.



인간은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을 따지기 전에

단 하나의 법도 지키지 못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

실낙원 이후로 양심(良心)이 법이 되었지만

그것도 부패하므로,

족장들을 통해 계시(啓示)의 법을 주다가

출애굽 이후로 율법(律法)을 통해

정식으로 언약을 맺으면서

그것이 인간의 모법이 되었던 것이다.

법학자들도 성문법의 기초인

함므라비 법전이

바로 십계명에서 유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법이 그

곳에서 기초(基礎)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어느 학자는 ‘계명이란

열정(熱情)을 배제한 이성’이라고 했다.

풍요롭게 살수록 계명이란 껄끄러운 제도지만,

세상 지혜만 갖고는

자신의 인생을 가름할 수 없기에

그것은 가장 좋은 친구처럼

꼭 필요한 최소기준이다.


인생의 성공이란 얼마나 모았느냐하는

소유(所有)의 개념이 아니라,

얼마나 지켰느냐하는

실천(實踐)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의 계명은 무엇인가.

무엇을 나는 기준으로 여기고 살아가는가.

그것이 진실한 지금의 내 모습이다.



셋째는 시내산을 올라가면서

우리는 인생의 등정(登頂)을 배워본다.

시내산은 성지순례 중

가장 힘들어 하는 코스임에 틀림이 없다.

보통 시내산을 올라가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먼저 원만한 능선으로 된 길로

세 시간 걸리는 길이 있고,

다른 길은 수도원 수사들이 만들었다는

가파른 사천 개 계단(階段)으로 된 길이 있다.


어느 코스로 가든 부담스러운 길이다.

나는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계단으로 된 길로 내려오면서

왜 새벽에 출발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저절로 풀리게 되었다.

올라 갈 때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내려올 때보니 산이 왜 이리도 험한지,

벌건 대낮엔 더위도 문제였겠지만

눈 뜨고 그 삭막한 시내산을 올라가기란

몇 배 더 힘들었을 것 같았다.



인생도 시내산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 때가 얼마나 많던가.

캄캄한 밤에는 자신이 얼마나 높은 곳에

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동이 터 오면서 발아래 산들이

어슴푸레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제 서야 자신이 올라 온

인생의 산 높이를 알게 된다.


무식이 용감하다고 멋모르고 가다보니

험한 꼴을 이기며 갔던 것이지,

목적이 없는 삶이었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포기하고 싶었던

인생의 여정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오래 전에 인도에서

빈민들을 위해 일하는

여자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한국 옷을 입지 않고

그 곳에 입었다는 인도고유 의상만을 입고 다니기에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은 적이 있었다. ‘

인도에 있을 땐 그런 생각 안 드는데,

한국에만 오면 이상하게도

인도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요

. 이 옷을 벗으면 다시 못 갈 것 같아

제 마음을 붙잡고자 입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 때 소명(召命)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들고 그녀를 볼 수가 없었던 것은,

그녀를 통해 나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가야할 인생의 산(山),

맨 정신으론 못 올라갈까봐

그는 어둠 속에서 나를 인도하시지만

, 해가 올라오면서 하늘의 빛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정상(頂上)에 올라 간 모세를

그가 반겨주셨듯이,

이 모든 힘든 여정들을 이겨나가

그 곳으로 나아갈 때

맨 발로 쫓아 나와

나를 반기실 것을 알기에

오늘도 소망 있는 발걸음으로

소명의 시내산을 향해 나아간다.



주여, 풀 한포기 없는 황량한 돌산이요,

끝없이 펼쳐진 험악(險惡)한 산이지만,

당신의 임재로 모세는 신을 벗었습니다.

더더욱 내 인생에서 가장 초라하고

어두웠던 시간들이 이제 보니,

계명을 받는 곳임을 알았기에,

그 영광 앞에 고개를 가립니다.

또한 가장 초라한 그 곳에

성막(聖幕)이 지어졌사오니,

그 은혜(恩惠) 무엇으로 감사하리요 ..

 

 - 피러한 드립니다.<성지순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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