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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받지 맙시다......9월 5일 묵상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04 조회수792 추천수8 반대(0) 신고

시몬베드로의 장모 치유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루카복음 4:38-44)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신 오늘 복음은(마르 1,29-39) 예수께서 단순히 치유의 능력을 보여 주셨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마르코 복음과 같은 내용을 전해 주는 마태오 복음(8,14-15)의 구성을 보면 그 점이 명확합니다.
   마태오 복음은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시는 사건 전에 나병환자(8,1-4)와 백부장의 종(8,5-13)을 낫게 하시는 기적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병환자는 유다인을, 백부장의 종은 이방인을, 시몬의 장모는 신앙인을 대표하므로, 그들을 치유해 주신 예수님은 모든 이의 구원자이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마르코 복음은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믿는 이들의 구원자이심을 보여 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을 보도함으로써(마르 1,34) 마태오 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은 또한 모든 이의 구원자이신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열’을 하나의 증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 인식했습니다. 레위기(26,16)에서는 야훼께서 불충한 백성에게 내리시는 처벌 가운데 하나를 열병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열병의 근원에는 다른 질병들과 마찬가지로 악령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고, 그런 흔적이 오늘 복음에서도 나타납니다(마르 1,31; 루가 4,39; 마태 8,15). 열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기도(사도 28,8)와 기적(요한 4,52)뿐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이의 구원자로서 구원 역사(役事)를 펼치시는 가운데, 기도라는 특권 받은 시공간 안에서(마르 1,35) 당신의 사명을 재인식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흔들림 없이 그리고 항구하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기도는 필수적입니다. 기도란 선교사명을 수행케 하는 원천입니다. 예수께서 펼쳐 보이신 놀라운 기적의 행위는 지상에서 선교 사명을 수행하시는 그분의 구원 행위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기도를 통해, 기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시며 당신께 맡겨진 구원 활동을 수행해 가십니다.
   우리들은 기도의 삶을 극히 피상적이고 수동적이며 비효율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분주한 일정 가운데서도 외딴 곳으로 물러가시어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기도야말로 삶의 원동력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기도란 매일 매순간 하느님과 일치하는 신앙의 행위이며 동시에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올바로 인식함으로써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할 태세를 갖추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의 모습이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안병철 베드로 신부>·

 예수님은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일어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마르 1,35). 예수님은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십니다. 그분은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며 사셨지만, 늘 조용한 곳으로 피해 가시어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하루 일과 중에 제일 먼저 하느님 아버지와의 만날 약속 시간을 잡아놓으셨습니다. 복음서 곳곳에서 보게 되는 예수님의 기도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와의 깊은 일치와 통교 안에서 당신이 이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사명을 재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의미와 목적,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창조 의미와 구원의 계획을 깨닫습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서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 특별히 기도 안에서 예수님은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 병자들의 고통을 대하시는 하느님과 똑같은 마음과 시선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환자들을 치유하시고 마귀들을 추방하십니다.
   의학적 인간학에서는 “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병은 결국 풀릴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을 뿐이며, 과학적으로는 결코 남김없이 규정할 수 없는 문제”(지그문드 프로이드)라고 합니다. 심지어 “병 그 자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우리가 앓고 있는 인간에 대하여 알 뿐이다”(L. 크렐)라고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과 환자들의 고통은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숙명처럼 짊어져야 할 이 모든 것이 다 하느님께로 가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 구요비 욥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달리다 쿰(일어나라)

묵방님들 열받지 말고 삽시다...

그저 열심히 기도하며 낮추고 포기하고 버리면 열받을일들 별로 없을 겁니다.

모두 모두 주님의 성령안에서 행복을 누리세요. 로마노가 두손모아 기도 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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