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05 조회수997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7년 9월 5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I must proclaim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because for this purpose I have been sent."
(Lk.4.43)
 
제1독서 콜로새 1,1-8
복음 루카 4,38-44
 
 
며칠 전, 인터넷에서 ‘전국 맛 집 주소록’이라는 자료를 하나 얻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중계되는 음식관련 프로그램에 소개된 맛 집 만을 정리한 자료였지요. 그리고 텔레비전에 나올 정도면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어제 동창 신부와 함께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맛 집 하나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자그마치 3군데의 프로그램에서 소개가 된 음식점이었지요. 얼마나 맛이 있으면 3군데에서나 소개가 되었겠어요?

하지만 동창 신부와 저는 그 음식점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찾을 수가 없었지요. 그 음식점에 전화를 하면 이러한 안내 문구가 나옵니다.

“고객님,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하신 후 다시 걸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는 영어로 어쩌고저쩌고 말하네요(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데 맞나요? “The dial is wrong number, please call again.”). 그렇습니다. 가게 자체가 없어진 것입니다. 허무했습니다. 잔득 기대를 하고서 왔는데, 약도에 적혀 있는 곳에는 다른 식당이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실 맛이 있는 집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들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게를 확장하는 경우가 있으면 모를까, 잘 되는 가게가 없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특별한 이유 때문에 없어지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지만, 세 군데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방송되었던 맛 집이 이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점이 듭니다. 바로 이렇게 의문을 품는 제 자신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해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많은 기대를 가집니다. 그런데 그 기대에 딱 맞게 이 세상은 돌아가지 않더군요. 전혀 뜻하지 않은 정 반대로 흘러갈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판단과 생각이 늘 정확한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우리들은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지요. 음식점이 없다고 의심을 품고 있는 저처럼 말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군중이 예수님께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군중들의 기대는 자기들하고만 함께 하는 예수님을 원했던 것이지요. 예수님만 계신다면 병에 걸릴 염려도 없고, 굶어 죽을 일도 없을테니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중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로 하느님의 기대에 순종하는 인간의 모습 때문이 아닌,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 기대를 주님께 가지고 있었습니까? 혹시 나의 이기심과 욕심을 드러내는 헛된 기대를 가지고 주님을 또다시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주님의 기대를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간절한 기대입니다.


하느님의 기대에 맞게 생활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스티븐 코비 외, ‘오늘 내 인생 최고의 날’ 중에서)


 
뉴햄프셔 주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 그곳에 아담한 별장이 하나 있다. 농어잡기 대회가 시작되는 날, 11살 난 어느 소년이 별장 선착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낚시찌가 크게 움직였다.

마침내 소년은 조심스럽게 힘이 빠진 물고기를 들어올렸다. 지금까지 잡은 물고기 중에서 가장 큰 농어였다. 소년과 아버지는 멋진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아가미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는 성냥을 켜서 시계에 비춰 보았다. 밤 10시였다. 대회 시작까지는 아직 2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물고기를 보더니 아들에게 말했다.

"그 고기를 놓아줘야겠다."

"아빠! 이렇게 큰 고기는 다시 잡을 수 없을 거예요."

소년이 놀라 소리치며 호수를 살펴보았다. 어디에도 다른 낚시꾼이나 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원망하듯 다시 아버지를 쳐다보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단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농어의 입에서 바늘을 빼고 놓아주었다. 농어는 힘차게 헤엄치며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34년 전의 일로, 소년은 지금 뉴욕에서 성공한 건축가가 되었다. 그는 아직도 그 별장으로 낚시를 하러 갔다. 소년은 그날 밤 대회에서 처음 잡았던 물고기만큼 큰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그때 놓아준 농어가 눈앞에 떠오르곤 했다. '보는 사람이 없을 때도 옳은 일을 하는가? 제때 설계도를 제출하려고 눈속임을 하지는 않았는가? 내부 정부를 이용한 주식 거래를 거부했는가?'

만약 여러분이 어렸을 때, 물고기를 놓아주라고 배웠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진리를 배웠기 때문이다. 옳은 결정은 기억 속에 오래도록 생생하게 남는다. 윤리를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러한 기억은 앞으로의 삶에서 '옳은 일'을 하도록 안내하는 등대가 되어준다.

소년과 아버지가 물고기를 잡은 시각을 속였다고 해도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밤 소년과 아버지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에 충실해야 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배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면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그 선택으로 그들은 마음의 안정과 자신감을 얻었다.
 
 
 

Free As A Bird - O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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