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산 위의 마을`)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후회하셨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새로운 인간상이다. 예수님을 만난 것은 새 인간상을 본 것이며 제자로 산다 함은 새로운 방식의 삶을 얻는 것이다. 이제까지 기어 다니며 구르는 재주와 잔꾀로 먹고사는 굼벵이가 아니라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창공의 삶을 얻는 것이다. 그것을 번신(飜身)이라 한다.
예수님과 합일되어 사는 자, 번신의 몸을 얻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ㄱ)
꿈 많은 젊은이들은 얻고 싶은 것이 많고 그래서 온종일 바쁘다. 그런데 대학의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잠 못 이루며 기를 쓰고 대학에 들어간 순간부터 토익과 연수와 씨름하며 또 과외를 해야 한다.
도서관 가는 길도 전투처럼 느껴진다. 정보시대에는 안테나를 바짝 세워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몸부림의 목적은 행복하게 살고자 함이라는데, 정말 그렇다면 왜 곧바로 행복한 삶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우리 ‘산 위의 마을’ 공동체는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오는 신문을 본다. 농업 노동은 힘들다. 그러나 그토록 열심하고 싶어도 어려웠던 신앙생활을 얻었고 건강하게 살다가 묻힐 땅도 넓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지 않는다. 정보와 경쟁에 밀린다고 안달할 이유가 없는 것은 행복한 생의 길은 한없이 넓고 많다는 발견 때문이다.
삶이란 자기 삶의 항아리에서 빚은 술이다. 삶의 선택은 자신이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만든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다. 더덕밭에 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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