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은총피정 <14> 보물 단지 세 개 - 강길웅 요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07 조회수1,110 추천수17 반대(0) 신고
                                            

보물 단지 세 개


    세상에는 소중한 보화가 많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 보화를 잘 모릅니다. 모르니까 보화가 주는 참 기쁨을 모르며 행복도 모릅니다.


   뉴욕에서 아흔이 된 어떤 할머니가 추위에 굶주려 돌아가셨는데 그분이사는 방에 가 보니 돈이 30만 달러나 있었답니다. 30만 달러라면 우리 돈으로 3억 원이 넘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돈이 많이 있는데도 있는 줄을 모르고 추위에 굶주려 죽었다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입니까? 그런데 믿는 우리가 사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도처에 하느님의 보화가 많이 있는데도 보화가 주는 은혜를 모르며 불행하게 삽니다.


   미국 시키고에 톰 케인이라는 사람이 일간지에 이색적인 광고를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십일조 봉헌을 정직하게 한 사람으로서 하느님께서 십일조를 통하여 축복을 내리시지 않는다는 증거를 대는 사람에게는 1만 달러의 보상금을 주겠습니다."


   광고가 나가자 만여 통의 편지가 왔는데, 모두가 축복받은 내용이었으며 조금이라도 손해 입었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천주교에서는 십일 조 봉헌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믿어도 은혜를 모릅니다. 이 시간에는 그래서 보화가 담긴 그릇 세 개, 즉 보물 단지 세 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십자가 안에 보물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보통 다른 것이 아니라 180도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중의 대표적인 것이 십자가입니다.


   신명기 21장 23절에 보면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럼, 왜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스스로 저주받은 자가 되었는가? 이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집니다.


   오래 전 불교 조계종 종정이셨던 청담 스님이 설법을 하시다가 스님들에 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가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지 아느냐?" 스님들이 대답을 못하자 스스로 대답하십니다.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랬느니라." 이것이 그분들의 한계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십자가 때문에 오해를 많이 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율법으로 봤을 때 분명히 저주받은 잔데 이런 자를 메시아라고 믿고 있으니 그가 보기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역겨웠던 것입니다. 이건 사이비 집단이며 유다교를 근본부터 흔드는 불순한 악의 세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는데, 이것은 하느님이 자기에게 준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는 다마스쿠스에도 예수를 믿는 무리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는 달려가다가 바오로가 뜻밖에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바오로가 그날 만난 예수님은 자기가 생각했던, 저주받은 자가 아니라 높은 영광에 휩싸여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바오로가 까무러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놀랐으면 사흘 동안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본 영광이 얼마나 컸던지 사흘 동안 눈이 멀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바오로는 그때 알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저주가 아니고 하느님 사랑의 최고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걸 좀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호랑이가 아이를 물어 갔다면,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합니다. 또 배를 타고 가다가 아이가 물에 빠졌다면, 물속으로 들어가야 아이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집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류가 십자가와 죽음이라는 저주에 빠졌다면, 그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직접 십자가와 죽음이라는 저주 안으로 들어가셔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음 속으로 들어가시자 십자가의 저주가 다 빠져나가며 죽음의 저주도 다 부서지게 됩니다. 이젠 십자가나 죽음에는 저주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십자가는 분명히 저주였습니다. 죽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뒤로는 십자가나 죽음은 이제 더 이상 저주가 아니고 오히려 축복과 은혜가 됩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그렇게 바꿔 주셨습니다. 믿는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짊어진 십자가도 마찬가집니다. 그것이 우리 눈으로 보기에 는 굉장히 혐오감을 줍니다. 팔자가 사납게 보이고 전생에 죄가 많은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십자가에도 이제는 저주가 아니고 놀라운 선물이 있습니다. 믿으면서도 이걸 모른다면 그는 믿음의 축복을 아직 모르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에게 정신 지체 장애인 아들이 있는데 그 때문에 자매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 수가 없어서 신앙으로 이겨 보려 하지만, 그러나 쉽지가 않았습니다.


   한번은 아이를 데리고 주일 미사에 참례했는데 아이가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이 여자도 쳐다보고 저 남자도 쳐다볼 때 많은 사람들이 분심을 갖게 됩니다. "누가 이런 아이를 데리고 왔나?" 사람들이 모두 화를 내면서 뒤를 돌아다봅니다. "누군가?"


   그때 뒷자리에서 불안해하던 아이 엄마는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믿는 자들도 다 마찬가지다. 다시는 아이를 데리고 성당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주일 낮 미사에는 나가지 않습니다. 밤 미사나 새벽미사에 늦게 갔다가 일찍 도망을 옵니다. 잘못한 것도 없이 도망을 다닙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십자가의 은혜' 라는 강론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하느님께선 누군가를 크게 사랑하셔서 아무도 모르게 큰 보물을 그에게 담아 주셨는데, 그 보물의 포장지가 바로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포장지만 보고 불평하지 말고 소중하게 받아들여서 조심스럽게 개봉해 보면 거기에는 특별한 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이 자매는, '하느님은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 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 은총 피정 中에서 / 소록도 성당 강길웅 요한 신부 ♣

  

                                        
                                                         바람 속의 주 (에덴합창단)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