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봉헌과 자선
작성자강석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08 조회수542 추천수3 반대(0) 신고
 
 
 봉헌과 자선
 
 
헌금과 관련지어 천주교하면 우리는 보통 우리 자신을 스스로 비하하며 ‘미사때 어른이든 아이든 원을 하느님께 는(헌금하는) 회’라고 말합니다.
지난 주일 성당의 앞쪽에 앉아 미사를 드리는데 미사가 시작한 후 뒤늦게 아주 잘 차려입으신 중년의 부부가 들어와 제 왼편 옆에 앉으셨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이 끝나고 나서 헌금봉헌 때가 되어 헌금을 드리러 제대 쪽으로 나아가 헌금을 봉헌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그 분들이 그냥 자리에 앉아 계셔서 놀랐습니다. 그 분들을 지나 제자리에 앉으며 ‘미사를 드리고 또 드리시는 건가?’ 했습니다. 하지만 영성체를 모실 때 그 분들도 영성체를 받아 모시러 나오는 것을 보고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아무런 물질적인 봉헌도 하지 않은 채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만을 바라며 성체를 받아 모신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셨다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너희는 이 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마르11,17)고 엄하게 꾸짖으셨던 말씀을 다시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 회개하지도, 신앙 안에서 변하지도 않고, 하느님께 온전한 제물을 바치지도 않은 채, 오직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만을 받으려는 사람들을 꾸짖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성전정화 사건을 일으키시며 자신은 하느님께 온전히 돌아서려는 의지를 갖지도 않고 아무런 노력도 않은 채 헛되이 물질적인 봉헌만을 하는 사람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와 달리 신약성경에서는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에 대한 언급은 매우 적은데 예수님께서 헌금에 대해 직접 말씀하신 내용은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를 모두 봉헌하는 것을 보시고“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13, 43-44)라는 말씀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라고 한다면 아마 거의 아무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봉헌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생활하는데 아주 기본적으로 필요한 제물들을 모두 바치면서까지 신앙생활을 할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봉헌은 일주일 동안의 모든 생활비가 아닌 일반적으로 ‘하루 동안의 생활비’ 를 바치는 것 이라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공생활 중 당신이 치유의 기적을 행하셨던 일들이나 성전정화 사건 등의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사건들을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헌은 얼마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있느냐가 더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봉헌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그러다가 제 나름대로의 봉헌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지갑의 한쪽을 봉헌금을 준비하는 곳으로 마련하고 일주일 동안 깨끗한 새 돈이 모일 때마다 그 곳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모인 돈 중 만 원짜리는 주로 교무금을 내는데 사용하고 천 원짜리와 오천 원짜리는 한데 모아 주일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저는 하느님께 봉헌을 위해 준비하는 마음을 일주일 내내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해보신다면 헌금을 준비하는 마음이 예전과 많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말씀드린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거 같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 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 보다 낫습니다.”(마르12,33)라고 율법학자가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라고 이르십니다.
번죄물과 희생제물이 지금에 와서는 모두 헌금으로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이 일년에 한번 바치던 성전세는 현재는 교무금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진정 원하시고 우리가 천상의 세계에 갈 수 있는 길은 물질적인 봉헌이 아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계명의 실천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계명은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헛된 것이 돼버릴 것입니다.(갈라 6,6) 그럼 그 사랑의 실천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이 머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니다.”(1요한3,17-18)
이 말씀을 통해 나보다 못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베푸는 자선의 중요성이 사랑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라는 말씀을 하시며 참된 봉헌의 의미를 완성하고 계십니다.
 
 
‘나 보다 작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영역에서만 얘기 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심, 지식, 건강, 용서, 너그러운 마음씨, 개인적인 재능 등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나보다 못한 이웃들과 진정으로 나눌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 드리는 진정한 봉헌을 하는 것이고 또한 그것이 사랑의 실천이며 우리가 세상의 마지막 때에 천국의 문을 밝혀 주는 밝은 등불이 될 것입니다.
 
 
 
가져온 곳 : 
블로그 >파파스머프의 오두막
|
글쓴이 : 레오나르도| 원글보기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