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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91) 신부님도 배상해야지요 / 장영일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10 조회수867 추천수13 반대(0) 신고
 
 
 
 
9월 둘째주 연중 제 23주일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5-33)
 
 
 
 
          신부님도 배상해야지요
 
 
                                                   글 : 장영일(대구 효목성당 주임신부)
 
 
얼마 전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신부님,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했지만
어찌 그 일을 잊을 수 있겠는가!
순식간에 20년 전으로 돌아갔다.
 
 
어느 주일 저녁,  저녁미사를 본 한 청년이
비가 너무 많이 와 성당 마당 흙탕물이 콸콸 흘러내려가는 어두운 길을
혼자 걸어 내려갔다.
 
사제관에서 막 잠이 들었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집에 가던 그 청년이 도로 맞은편에서 오던 봉고차에 치였다는 거였다.
 
중환자라 종합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한밤중에 병원에 근무하는 수녀누님께 부탁해 구급차를 보냈다.
 
월요일 새벽미사를 마치고 병원으로 문병을 갔는데 청년은 머리를 심하게 다쳐
깨어나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며칠 후 청년은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 간에 배상액 문제로 조금 시끄러운 것 같았다.
 
가해자가 나를 찾아와 보험금 외에 자신에게 요구한 배상액이 과다하여
재산 전부를 팔아도 부족하다며 중재를 부탁했다.
며칠 후 합의가 이루어졌고 장례 날이 정해졌다.
 
 
장례미사 날 고인의 친인척들과 인사를 하는데 청년의 삼촌이 다가와
"저 아이가 신부님 심부름 가다 사고가 났다는데 사실입니까?" 라고 물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혈기를 참고
"왜 그걸 물어보시는데요?"  하자
"그렇다면 신부님께서도 책임이 있으니 배상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했다.
 
몇날 며칠 잠도 못 잔 수고에 감사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가족들 모두 나의 책임을
묻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미사는커녕 쫓아내고 싶었지만 감정을 겨우 억누르고 장례미사를 집전하면서
죽음을 놓고 돈 때문에 다른 이들을 힘들게 하지 말라고 형제들에게 호소했다.
 
미사 후 답답함을 억누르려고 성당 마당에 서있는데 그 청년의 누나가 너무나
결연한 표정으로  "신부님, 동생 관을 들고 가해자 집으로 갈렵니다." 라고 말했다.
겨우 누나를 달래 장의차를 성당 묘지로 출발시켰다.
 
얼마 후, 배상받은 돈 때문에 가족들 간에 큰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한참 동안 그 형제들은 성당엘 나오지 않았고 끝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해자는 나를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갔다.
어려운 살림에 그 큰 배상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차마 미안해서 묻지도 못했다.
 
20년이 지나서야 그가 내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한 것이었다.
 
 
'과연 그 일이 가난함 때문이었을까?'
 
가난이 그 모든 일의 원인이려니 이해해보려 하다가도 사람의 마음씀이 그것밖에
안되는 것인가 또다시 고민하게 된다.
 
 
                          ㅡ 가톨릭 다이제스트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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