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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올 9월에는 잠시 23년 전으로 돌아가 볼 생각입니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10 조회수583 추천수3 반대(0) 신고
                올 9월에는 잠시 23년 전으로 돌아가 볼 생각입니다
                 올해의 '순교자 성월'에는…




우선 사사로운 얘기부터 한마디 해야겠군요. 나는 일 년 중 4월과 9월을 가장 좋아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가져온 생각입니다.

4월을 좋아하는 것은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꽃으로부터 느끼는 어떤 애잔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달래꽃에서 왜 애처로움 같은 것을 느끼는지, 아직도 조금은 모호한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9월을 좋아하는 것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인생무상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서늘한 저녁 무렵의 소슬한 가을바람을 맞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질감'을 맛보곤 합니다.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무상 따위를 나는 만추의 계절인 11월보다 가을의 초반인 9월에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나는 그런 느낌들이 때로는 눈물 나게 좋습니다.

5월도 꼽지 않을 수 없지만, 5월은 내게 '사랑의 달'이고, '존경의 달'입니다. 5월이 왜 내게는 사랑의 달이고 존경의 달인지, 그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지 싶습니다. 좋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 싶은, 5월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 이유도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죠.

또 한 해의 9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벌써 초순이 지나고 중순에 접어들었군요. 9월은 천주교(한국교회) 신자들에게는 남다른 달입니다.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순교자들을 특별히 기리고 공경하는 '순교자 성월'이기 때문이지요.
 

▲ 유해참배실 / 천주교 대전교구 '해미무명순교자 성지' 안에 있는 '유해참배실' 전경  
ⓒ 지요하  순교성월

가톨릭교회 2천 년의 역사 속에는 전 세계적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순교자들이 있는 가운데, 우리 한국교회에도 1만 명이 넘는 순교자들이 있지요. 1만 명이 넘는 한국 순교자들 가운데서 신앙생활 기록과 순교사실 기록(프랑스 선교사에 의한 라틴어 기록)이 확실한 1839년 기해박해 순교자 70명, 1846년 병오박해 순교자 9명, 1866년부터 수년 동안 계속된 병인 대박해 순교자 24명, 합 103명의 순교자들이 훗날 '성인품(聖人品)'에 올랐지요.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거행된 시성식 광경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군요. 나도 그 날 그 거룩한 역사의 현장 안에 몸을 놓고 있었으니까요.

우리 한국교회에는 이렇게 순교자들이 많은 만큼 순교성지도 많답니다. 전국적으로 40곳이 넘는데, 내가 속한 대전교구는 가장 많은 16곳의 성지를 가지고 있지요.

천주교 신자들은 9월 순교자 성월에는 신앙생활이 좀 더 충실해진답니다. 성지 순례를 하기도 하고, 순교자들의 유해가 모셔진 성당을 찾아 미사를 지내기도 하고, 각 교구별로, 또 본당별로 거행되는 순교자 현양 행사에 참례하여 순교 선열들의 신심을 기리며 그 모범을 본받으려는 마음을 되새기기도 하지요.

나도 해마다 9월을 그렇게 살아왔지만, 올해는 좀 더 겸허한 마음을 배우려고 합니다. 순교 선열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좀 더 겸손하고 겸허해져야 함을 느끼곤 하는데, 올해는 순교 선열들의 삶을 다시 한번 자세히 읽고 접하면서, 인생무상을 체감케 하는 9월의 가을바람 속에서 신앙의 궁극적 가치를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스스로 그것을 다짐하기 위해 오늘 굳이 이 글을 썼는데, 이 글과 함께 우리 태안천주교회(대전교구) 9일(연중 제23주일)치 주보에 게재된 글도 소개를 합니다. 여기에서 제 글을 즐겨 읽어주시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신 분들께도 참고가 되기를 바라며….
  

▲ 순교자현양대회 미사 / 지난해 9월 20일 충남 '솔뫼성지'에서 있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60주년 기념 순교자 현양대회' 미사 장면  
ⓒ 지요하  순교자 성월


올해의 '순교자 성월'에는…

우리 가톨릭 교회에는 오랜 옛날부터 특별한 지향으로 세계교회가 함께 지내는 '성월(聖月-거룩한 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월은 일 년 중 어느 달을 예수님이나 성모님, 또는 성인께 봉헌하여 특별한 은혜와 전구(轉求)를 청하고 그 모범을 따르도록 교회가 지정한 달이지요. 성월은 처음부터 교회의 축일과 연관하여 설정되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일 년 열두 달이 다 성월이라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지으시고 베푸신 이 세상시간 속의 열두 달이니, 그 열두 달을 다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각 지역교회들에 그 지역의 특성과 사정에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성월을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는 성요셉 성월(3월), 성모 성월(5월), 예수성심 성월(6월), 순교자 성월(9월), 로사리오 성월(10월), 위령 성월(11월)을 지내고 있지요.

우리 한국교회에서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는 것은 103위 순교 성인들 중에서 9월에 순교한 성인이 가장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 교황이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79명의 한국 순교자들을 '복자' 반열에 올린 이후부터 9월을 '한국순교복자 성월'로 정하여 순교자들을 공경하여 왔는데, 1984년 5월 6일 요한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103위 복자 전원이 시성(諡聖)됨에 따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그 해 6월 28일 '순교복자 성월' 명칭을 '순교자 성월'로 바꾸었습니다.

'순교복자 성월'을 '순교성인 성월'로 하지 않고, '순교자 성월'로 한 것은, 103위 순교성인들을 공경하는 동시에 아직 시복 시성되지 못한 많은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해 기도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지요. 비교적 기록이 확실한 1801년 신유박해 순교자들을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諡福) 청원'이 현재 진행되고 있고요.

또 한 해의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았습니다. 올 한 해도 어느덧 3분의 2가 꺾어져 버리고 3분의 1이 남았습니다. 또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의 9월은 가을의 서늘한 바람결 속에서 인생무상도 체감하게 되는 시기이므로, 순교자 성월에 대한 질감이 좀 더 선명할 듯싶습니다.

한국인 최초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1846년 9월 16일/음력 7월 26일 순교)을 비롯하여 9월에 순교하신 분들이 유난히 많은 사실도 계절과 연관하여 깊은 생각을 갖게 해줍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순교사화를 많이 듣고 자란 사람입니다. 우리 본당의 공소 시절, 지금은 '창고'로 남아 있는 강당 방의 남폿불 아래에서 성백석 루까 노인 복사님으로부터 순교사화를 자주 들었지요. 끔찍하고도 처절한 순교사화를 들으며, '나도 과연 순교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그때부터 갖게 되었고….

일찍이 소년 시절에 내 가슴에 마련된 그런 '바탕'이 있었기에 그때로부터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한눈판 적 없이 올곧게 신앙생활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소년 시절부터 절절하게 접할 수 있었던 순교사화의 주인공들, 즉 순교 선열들 덕분이지 싶습니다.

또 그것이 바탕이 되어 일찍이 순교 성인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었습니다.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된 '103위 순교성인 시성식'을 기념하여 그 해 <성요셉출판사>에서 <103위 한국 순교성인들의 생애>(전 5권)를 출간하였지요.

집필진은 모두 8명이었는데, 하성래 서울대 교수와 구중서 수원대 교수, 아동문학가 박홍근 선생 등 쟁쟁한 학자 문인들 틈새에 풋내기 작가인 나도 끼어들어 현석문 성인과 현경련, 김효임, 김효주 성녀 등 17분 이야기를 맡아서 집필을 했지요. 전부 합해 원고지 800매 정도의 작업이었는데, 그 일을 하느라고 몇 달 동안 어지간히 고생을 했지요. (책임 감수: 오기선 신부, 류홍렬 박사)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3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군요. 다시 맞은 9월 순교자 성월, 소슬한 가을바람 속에서 세월의 덧없음을 다시 한번 체감하며, 올해는 통상적인 '9월 생활' 외로 23년 만에 <103위 한국 순교성인들의 생애>를 꺼내어 읽어볼 생각입니다.


▲ <103위 순교성인들의 생애> 표지 1984년에 출간된 <103위 순교성인들의 생애> (전 5권) 집필에는 모두 8명이 참여했고, 나도 집필자의 한 사람으로 17분의 이야기를 맡아 원고 작업을 했다.  
ⓒ 지요하  순교자 성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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