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14 조회수915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7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desert,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Jn.3.14-15)
 
제1독서 민수기 21,4ㄴ-9
복음 요한 3,13-17
 
지금 현재 우리 성당에서는 한창 공사 중이랍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크게 하는 공사는 아니고, 성당의 옥상과 벽면에 생긴 금을 메우고 그 위에 방수액을 바르는 어떻게 보면 간단한 공사라고 할 수 있지요. 더군다나 우리 성당의 교우 한 분이 자기 집의 일처럼 성심성의껏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하고 계셔서 제가 굳이 신경 쓰고 볼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본당을 책임지고 있는 주임신부인데 어떻게 나 몰라라 하겠습니까?

따라서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전혀 살펴보지 않은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을 안고서, 어제 밤에 공사를 했던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옥상에 올라서자마자 큰 문제만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그만 아직 굳지 않은 방수액을 제가 밟은 것이지요.

이제 두 개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선은 방수액 바른 부분을 밟았으니, 두 개의 발자국 자리를 다시 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더 큰 하나는 얼른 구두 하나를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록색 방수액이 구두 전체에 묻었거든요. 더군다나 저는 여분의 구두가 없습니다. 내일 당장 봉성체와 미사가 있으니, 신을 구두가 있어야 하는데 초록색 방수액이 묻은 구두를 신고서 자랑스럽게 다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구두를 사러 갈 시간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제 우리 본당에 순교자 현양 연극이 있어서 오시는 교우들을 맞이해야 했거든요.

저와 제일 친한 신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 제 신발 사이즈를 불러 준 뒤에 구두 하나만 사다 달라고 말이지요.

연극이 끝난 뒤에 구두를 받았습니다.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사실 구두를 사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뭐 하긴 했습니다. ‘아직도 쓸 만한 신발인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새 신발을 받아서 신는 순간, ‘그래, 그 신발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어. 5년 가까이 신었으면 됐지 뭐.’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지요. 어쩌면 어제 저에게도 해당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구두 하나 버렸다고 아쉬워했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가 우리 삶 안에서는 참으로 많습니다. 내게 고통과 시련으로 다가오는 것들 그래서 왜 내게 이러한 고통과 시련이 오냐고 원망도 하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고통과 시련이 나를 더욱 더 발전하게 해주고, 나를 더욱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서야 고통과 시련에 대한 원망을 버리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어쩌면 주님의 십자가도 이러한 전화위복이지요. 분명히 당시의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이 이제 끝났다면서 절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때요? 이 십자가 때문에 우리들의 구원이 오게 되었다면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우리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지고 가신 십자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매년 하는 하나의 축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사랑에 진정으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뜻 깊은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 없이 우리의 구원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구리 뱀을 봐야지만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를 봐야지만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잠깐 동안이라도 주님의 사랑을 묵상합시다.




조연으로 빛나는 연주자('좋은 생각' 중에서)


 
1967년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피아노 연주회가 열렸다. 4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오로지 다른 연주가와 성악가를 돋보이게 해 준 한 반주자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한 헌정 은악회였다. 노신사가 천천히 무대로 걸어 나왔다. 관중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홀로 무대에 선 그를 지켜보며 숨죽였다. 곧이어 슈베르트 '음악에'가 연주되었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그의 연주는 연주회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 그가 바로 이 연주회의 주인공이다. 1899년 7월,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스무살 때 반주자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당시 반주자의 위상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실력을 갖춘 반주자로서 무대에 서기위해 피나는 연습을 했다. 그 결과 제럴드 무어라는 이름은 그 어떤 독주자에 못지않은 당당함을 얻게 됐고 예후디 메뉴인, 파블로 카잘스, 자클린느 뒤 프레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은 그의 반주로 연주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가 자신들의 연주를 그 누구보다 빛내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1987년 3월 13일, 88세로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제럴드 무어는 수많은 독주자 뒤에서 그들의 연주가 빛을 발하도록 뒷바침했다. 그 누구보다 훌륭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묵묵히 다른 사람들을 빛내는 조연에 만족하는 삶을 산 것이다. 그의 삶은 진정한 예술이란 '겸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깨닫게 해 주었다.
 


 For 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that the world might be saved through him.
(Jn.3.17)
 
Your Beautiful Love - Back To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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