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님께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 배광하 신부님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16 조회수609 추천수3 반대(0) 신고

주님께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루카 15,11-32)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파님 - 얼굴


책을 읽다가 문득 히브리어로 ‘얼굴’이 ‘파님’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원이 죄 많은 인간을 향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용서와 자비, 사랑의 얼굴을 돌리신다는 뜻임을 알았을 때, 진정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옛 시인의 노래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 5)
인간이 얼마나 마음에 드셨으면 모든 창조가 끝나고 마지막 창조물인 인간을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 하셨을까?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비로소 “참 좋았다”(창세 1, 31) 하셨을까?

그렇게 좋으셨던 하느님께서 노아의 홍수 때에는 인간이 짓는 죄에 노여워하시며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창세 6, 6)고 하셨지만 이 또한 인간을 영영 내치지 않으시려는 하느님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같이 아름다운 단어인 ‘파님’을 생각 하다가 ‘파’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너무 너무 고맙고 감사한 것은, 우리 한국 음식에 파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쪽파든 실파든 대파든 양파든 말입니다. 그렇게 먹는 파 뒤에 존칭어 ‘님’을 붙이면 하느님의 얼굴이 된다? 참으로 신비로운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식사 중에 하느님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거듭 짓는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 ‘파님’의 얼굴을 보이시는데, 나는 나에게 상처를 끼쳤다고,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나에게 약간의 손해를 끼쳤다고 “그깟 놈 얼굴 다시는 보나 봐라” 하는 식으로 얼굴과 등을 돌리는 경우가 없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용서하지 않고 주님의 용서를 바란다면 그것은 억측에 불과합니다. 회개하는 나를 사랑과 용서의 얼굴로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얼굴을 생각한다면 나 또한 형제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복음의 가산을 탕진한 작은 아들의 회개를 기뻐하시며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리?이렇게까지 잘라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 15, 7)

때문에 이렇듯 용서를 받은 우리 역시 용서할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루카 17, 3)

돌아가야 할 곳


코헬렛의 저자는 말합니다.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코헬 12, 5; 7)

회개란 “되돌아간다”입니다. 이제껏 걸어 왔던 그릇된 길을 돌아 선의 길을 찾아 되돌아가는 것, 하느님을 떠나 왔던 길을 돌아 하느님 품을 찾아 되돌아가는 것, 세상에 미련을 두고 온갖 세상일에 파묻혀 살았다면 이제는 천상의 집을 목표로 되돌아가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목숨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분명 우리가 영원히 머무를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되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신앙인입니다. 때문에 죽은 망자를 일컬어 “돌아가셨다”라고 하는지 모릅니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같은 행복은 분명 회개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복음의 탕자 역시 자신의 죄를 뉘우쳐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갔기에 비로소 자신의 집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같은 회개가 있을 때,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과거의 어떤 것도 질책하시거나 묻지 않으시고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루카 15, 24)

그리고 잔치가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가장 좋으신 분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은 늘 팔을 벌려 우리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 같은 희망의 하느님께서 내 곁에 계시기에, 하루하루를 그분께 의탁하며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희망에 반대되는 낙담, 실망, 절망, 회의, 분노, 포기, 우울함 등에 하느님께서는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성령을 슬프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아빌라의 대 테레사 성녀께서는,“가장 위험한 병은 정신을 하느님께 집중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하는 바로 그 약한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언제든 우리가 회개하여 돌아서면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