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우리의 영원한 집" - 2007.9.16 연중 제24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16 조회수453 추천수8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9.16 연중 제24주일                                      
탈출32,7-11.13-14 1티모1,12-17 루카15,1-32

                                                        
 
 
 
"우리의 영원한 집"
 
 

새벽 말씀 묵상 중 무심코 터져 나온 말입니다.

“갈 데가 없다.”

사실 요즘 세상
영적으로 ‘오갈 데 없는 정처 없는 사람들’ 참 많을 것입니다.

한 집에, 한 공동체에 몸담고 살아도 마음 허전하고 외롭기는 매일반입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해, 제자리에 뿌리 내리지 못해
두려움과 불안 속에 방황들입니다.

실제 바빠서라기보다는
마음 불안하고 여유 없어
하는 일 없이 바쁜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가만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것과 침묵할 줄 모르는 것,
현대인의 영혼의 큰 병이라 합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말하는 것,
바로 불안과 두려움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편리하고, 빠르고, 쉽게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과연 행복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누구나 바라는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행복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아 만날 때 참 행복입니다.
 
우리의 무한한 갈망을 채워주실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을 많이 만나도,
좋은 곳들 많이 찾아다니고,
맛있는 음식 잘 먹어도 잠시 일뿐
여전히 마음 허전한 것은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 했습니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기에
내 영원히 머물 집은 바로 지금 여기 계신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을 만날 때 참 나를 만나고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 행복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니 나도 모르고 제자리도 몰라
불안과 두려움 속에 영혼이 정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정 좋은 스승은 그 제자들을,
좋은 부모는 그 자녀들을,
좋은 친구는 자기 친구들을 하느님께 잘 안내 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만난 자만이 이웃을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1독서의 모세가 그렇고,
2독서의 바오로가,
복음의 예수님이 바로 그러합니다.

문제 있을 때마다 늘 하느님과 친숙하게 대화의 기도를 나누는 모세입니다.
 
목이 뻣뻣하고 배은망덕한 백성들을 하느님께 인도하고자
안간힘을 다 쓰는 모세,
하여 많은 이들은 모세를 참 크리스천 지도자상으로 꼽습니다.
 
모세의 애원의 기도에  
하느님은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는 재앙을 거두십니다.
 
이런 모세 같은 교회 지도자들이 참 그리운 시절입니다.
다음 바오로의 고백이 그의 주님 체험을 잘 입증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주님 만난 구원의 체험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죄인 바오로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다.’라는 고백이 거푸 두 번 나옵니다.
 
진정 주님을 만나고 싶으시다면
다음의 짧은 화살기도를 자주 진심으로 바치길 권합니다.
 
우리 마음의 가난과 겸손, 믿음이 그대로 응축되어 있는,
복음의 요약과도 같은 기도입니다.

“주님, 죄 많은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께서 자비의 은총 베풀어 주셔야
주님을 만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착한 목자 예수님은
‘되찾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은전의 비유’,
그리고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늘 들어도 감동적인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여러분은 큰 아들에 속합니까, 또는 작은 아들에 속합니까?

저는 여기서 세 유형의 인간으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겉으로야 늘 아버지 곁에서 산다는 모범생 같은 큰 아들 유형,  
 
둘째는
죄를 뉘우치고 방황에서 돌아 와 아버지 곁에 사는 작은 아들 유형,
 
셋째는
완전히 아버지 집을 떠난 냉담자 유형입니다.
 
물론 이 미사에 참석한 분들 중에는 셋째 냉담자 유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아들과 작은 아들, 고정 불변의 유형이 아닙니다.

타성에 젖어 교만하게 살다보면
아버지 곁에 살아도 아버지를 모르는 큰 아들 유형이 될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처럼
겉으로야 모범적으로 보이지만
아버지와의 진정한 친교가 없는 큰 아들 유형입니다.
 
사실 아버지 곁에 살아도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사무적으로 사는 이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이래서 끊임없는 회개의 삶이 필수입니다.
 
작은 아들처럼 죄를 뉘우치고 아버지 곁에 와,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을 절절히 체험했어도
타성에 젖어 안일하게 살다보면
졸지에 무자비한 큰 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머물 집은 하느님뿐입니다.
 
어디에 살든 하느님과의 깊은 친교의 일치 중에 살 때
두려움과 불안은 말끔히 사라지고 안
정과 평화, 기쁨이 그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계신 하느님과 만나는 지름길은 끊임없는 회개의 삶뿐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큰 아들들로 또는 작은 아들들로 지내던 우리들,
우리의 본향인 하느님께 돌아와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참 나를 만나는 은혜로운 친교의 시간입니다.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 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