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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93) 하느님은 나이스한 분? / 김연준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17 조회수791 추천수13 반대(0) 신고
 
 
 
 
 
9월 셋째주 연중 제24주일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루카 15,1-22)
 
 
            하느님은 나이스한 분?
 
 
 
                                                        글 : 김연준 신부(미국 어학연수)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더 기쁜 이유는 뭘까?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는 죄인이 받아야 할 몫을 체험을 통해 들려준다.
 
"오늘 한 천사의 안내를 받아 지옥으로 내려갔다.
 얼마나 무섭도록 광활하고 넓은지!
 
 지옥을 이루는
 첫째 고문은 하느님의 상실,
 둘째는 영원한 양심의 가책,
 셋째는 조건의 불변이다.
 
 넷째는 영혼은 파괴시키지 않은 채 파고드는 영신적 불길인데 무서운 고통이다.
 다섯째는 암흑과 질식할 듯한 냄새,
 더구나 악마와 저주받은 영혼들이 서로 마주보아야 한다.
 
 여섯째는 사탄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시달림,
 일곱째는 절망감, 증오, 천한 말, 저주와 모독이 난무하는 현장이다.
 
 
 지옥의 영혼들이 겪는 고통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 영혼마다 지은 죄에 따라 무섭고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
 만일 전능하신 하느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광경을 보고 까무러쳤을 것이다.
 
 아무도 '지옥이 어디 있느냐, 본 사람이라도 있느냐?' 는 말을 못하도록 하느님의
 명에 의해 기록한다. 이것은 내가 본 단편에 지나지 않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옥에 있는 영혼들은 대부분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 첫 마디가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였다.
이 말씀은 회개가 우리를 지옥에서 구출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희생 없는 신앙생활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에는 항상 하느님을 나이스한 분으로만 해석하려는 유혹에 빠져든다.
현재의 삶이 괴로우면 지금이 지옥이라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
그것이 지옥의 시작은 될 수 있으나 지옥이 그렇게 시시한 곳은 아니다.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하늘나라는 더 기뻐한다."
 
영원한 벌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에로 돌아선 아들을 보는 아버지가 외치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이기에 회개한 죄인은 의인보다 더 큰 기쁨이 되는 것이다
 
회개는 보통 다섯 가지 길로 표현한다.
 
첫째 죄에 대한 저주,
둘째 내가 당한 모욕과 억울함에 대한 용서,
셋째 인내심을 가지고 바치는 기도,
넷째 자선,
다섯째 겸손이다.
 
이 길에 있어야 천국에 이른다.
이것이 성사생활이다.
 
나는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 부각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지만 죄를 묵인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반드시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다.
 
사랑에 정의가 빠지면 무분별이 되고 정의에 사랑이 빠지면 폭군이 된다.
하느님 사랑은 내가 또 다른 예수그리스도가 되게 하는 그런 사랑이다.
회개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회개는 한 번 했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내가 모든 것을 얻게 할 것이다.
 
           ㅡ 가톨릭 다이제스트 중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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