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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을 모르는 새로운 세대의 시작-판관기7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22 조회수450 추천수4 반대(0) 신고

하느님을 모르는 새로운 세대의 시작-판관기7

 <생명의 말씀>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흩어져 갔다. 유산으로 돌아 온 자기 땅으로 가서 저마다 그 땅을 차지하였다. 여호수아 생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줄곧 야훼를 섬겼다.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도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해 주신 큰 일을 목격한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은 줄곧 야훼를 섬겼다. 눈의 아들, 야훼의 종 여호수아는 백 십 세에 죽었다. 사람들은 그의 상속지인 에브라임 산악지대 가스산 북편 딤낫헤레스에 그를 묻었다. 그의 세대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그가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 간 마지막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야훼를 모른 새 세대,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을 해 주셨는지 모르는 새 세대가 비롯되었다. (판관기 2:6-10)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이스라엘 역사에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합니다. 출애굽과 광야에서의 체험, 정복전쟁의 기적 등을 체험했던 세대들이 모두 죽고 그 자손들의 세대 - 그러니까 하느님의 권능과 인도하심을 실천적으로 체험해 보지 못한 세대가 등장한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판관기라는 시대를 살아갔던 이스라엘의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10절에서 그들을 야훼를 모르는 새 세대,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을 해 주셨는지 모르는 새 세대라고 요약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이지만 이 두 세대는 다분히 이질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서 그것을 실천하며 하느님의 능력과 그분이 주님이심을 체험적으로 아는 세대와 이미 정복된 땅에서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하느님에 대해 지식적으로만 아는 세대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세대도 100% 순종을 못하긴 했지만 자신들을 인도해 가시는 하느님을 체험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그래서 믿음의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세대였다면 자식의 세대는 하느님마저 손쉽게 부인해 버리는 세대였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택하신 백성이지만 하느님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는 세대간의 깊은 단절이 발생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수하고 가르치는 데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40년 광야 생활의 모든 교훈을 담고 있는 책이 신명기인데 그 신명기에서 하느님께서 당부하신 말씀을 소홀히 하였던 것입니다.

"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 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 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신명기 6:4-9>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면서 정복전쟁을 했던 당시에도 세대의 교체가 있었지만 모세 세대에게 주신 하느님의 뜻을 그 후세대가 충실히 계승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복전쟁이 끝난 후 하느님께 의지해야 할 급박한 필요가 사라지고 물질의 풍요에 익숙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 안에서 하느님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 역사중 가장 혼탁한 시대인 판관기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전에도 불순종과 타락은 있었지만 그것이 온 백성을 휩쓸 정도는 아니었고 또 온 백성을 휩쓸었다고 해도 그것을 준엄히 꾸짖고 바로 잡아 줄 깨어 있는 지도자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하는 시대가 왔고 이것이 판관기 내용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이 비단 이스라엘 역사의 한 부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권능을 체험한 선배들이 첫 세대가 받은 뜻과 체험한 하느님을 꾸준히 전해 주지 않을 때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명시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뜻을 받아 복음을 선포하며 사람을 양성하고 공동체를 건설했던 선배들이 안정된 공동체를 물려주고 뒤로 빠졌을 때 후배들에게 지속적으로 하느님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공동체라는 안정된 토대 위에서 하느님을 잘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할 일은 순종과 도전보다는 지속적인 안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공동체에서 하느님의 살아 있는 정신이 사라질 때에 들불처럼 번지는 것은 친교라는 이름의 사교(社交)와 하느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된 연애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 안에 하느님의 정신이 되살아나지 않고 몇 세대만 더 하느님을 잘 알지 못하는 세대가 등장하게 되면 처음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였던 하느님의 공동체지만 결국엔 인간적인 친교모임으로 전락했다가 결국엔 없어지고 마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들끼리는 친하지만 공동체를 향한 성령의 외침에는 점점 더 무감각해져가는 사람들이 되기 쉽습니다.

판관기의 시대가 이런 성격을 갖습니다. 백성들 사이에 하느님에 대한 인식이 사라져 버려서 온갖 우상을 숭배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하느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시대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다가 어느 정도 백성들을 하느님께 올바로 인도하고 나서 죽으면 백성들은 다시 하느님 없는 삶을 살게 되는 삶을 반복하는 것이 판관기의 반복되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삶 또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삶이 이런 판관기의 삶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각 공동체의 리더들은 우리 공동체의 새 세대를 하느님의 정신에 입각해서 잘 가르치고 있는지 스스로 잘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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