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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주변에 남겨진 고난거리-판관기9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24 조회수454 추천수4 반대(0) 신고

내 주변에 남겨진 고난거리-판관기9

 <생명의 말씀>

 그들이 출정할 적마다 야훼께서 손수 그들을 치셨던 것이다. 야훼께서 경고하시며 맹세하신 대로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심한 곤경에 빠지면, 야훼께서는 판관들을 일으키시어 약탈자들의 손에서 그들은 건져 내시곤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을 이끄는 판관들의 말을 듣지 않고 다른 신들에게 몸을 팔아 그 신들을 예배하였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야훼의 계명에 순종하며 걸어 온 길을 그대로 살지 못하고 그렇게도 쉽사리 떠났던 것이다. 야훼께서는 그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판관들을 일으키시고는 언제나 그 판관들과 함께 해 주셨다. 그리하여 그 판관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들을 거듭거듭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주셨다. 야훼께서는 원수들에게 억눌려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가엾게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 판관이 죽으면, 그들은 다시 다른 신들을 따르고 그 앞에 절하며 섬겼는데, 그 하는 짓이 조상들보다도 더 나빴다. 굽힐 줄 모르고 못된 길로만 가는 버릇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야훼께서는 몹시 화가 나셔서 이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이 백성의 조상들과 계약을 맺을 때 명령한 대로 이 백성은 살지 않는다. 통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여호수아가 채 몰아내지 못하고 죽은 민족들을 이 백성 앞에서 결코 몰아내지 않으리라. 그들을 시켜 이스라엘을 시험해 보리라. 이 백성이 조상들처럼 내가 가르쳐 준 길을 명심하고 바로 가는지 시험해 보리라." 야훼께서 그 민족들을 여호수아의 손에 붙여 한꺼번에 몰아내지 아니하시고 남겨 두신 것은 이 까닭이었다. (판관기 2:15-23)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일반적으로 사람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지혜도 생기고 좀더 성숙해집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고난의 시절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명확히 깨달을 경우에만 사람이 고난을 통해서 성숙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잊은 사람들은 고난이 끝나고 나면 너무도 쉽게 타락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40년 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당시와 광야에서 야훼 하느님이 하신 일을 직접 보지 못한 세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 세대를 통해서 자신들을 구원해 내신 하느님에 대해 배웠고 또 판관들을 통해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똑똑히 본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 충성할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분의 가르침대로 명령대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그들 마음 안에 하느님보다 자기 쾌락과 욕망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이라는 풍요의 땅에 자리 잡고 있었던 쾌락과 음란의 문화가 그들을 강하게 잡아 끌었고 그들은 거기에 너무도 쉽게 끌려 갔습니다.

처음부터 하느님을 배반하고 싶고 하느님을 따르고 싶지 않아서 그리도 간 것이 아니라 자기 쾌락과 욕망을 추구하다보니까 하느님이라는 분의 존재 자체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우리 내면을 잡아 끄는 힘들이 있습니다. 그 힘에는 하느님, 재물, 이성에 대한 욕구, 명예욕, 과시욕, 성취욕, 부모님에 대한 마음, 친구에 대한 마음 등이 포함됩니다. 이 중 자기 마음이 어느쪽에 가장 기울어져 있느냐에 따라 그 끌리는 힘에 자석에 끌리는 쇠처럼 몸과 마음이 이동하게 됩니다.

마음 안에서 하느님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계셔서 다른 모든 욕망들이 맘 속에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나를 끌어가지 못하고 하느님이 나를 끌어가게 되면 나는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겠지만 하느님 아닌 것들이 내 맘에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내 몸과 마음은 늘 하느님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풍요의 땅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황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맘 속에 하느님보다 자기 욕망이 더 컸기 때문에 주변의 민족들이 보여주는 쾌락의 삶으로 빨려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변 민족과 전쟁을 벌일 때마다 당신 손으로 직접 당신 백성을 치셔서 전쟁에서 패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쾌락을 따라 자신들이 좇아갔던 민족들에게 핍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버리고 욕망을 따르면 오히려 그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는 역설을 보여 준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신에 대한 첫마음을 저버리고 이렇게 쉽게 딴 길로 새는 모습을 보시고 여호수아가 채 몰아내지 않은 주변 민족들을 그대로 두시기로 생각을 굳히셨습니다. 이것은 주변 민족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을 주면서 당신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마음을 되살리시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주변 민족의 풍속을 배워 쾌락을 따른 것인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주변 민족들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처지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상황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끊임없이 성가시게 하고 고민하게 하는 삶의 조건들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삶의 근심이 생기고 마음의 평화가 깨지며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로 갈리게 하는 그런 근심거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삶에서 그런 것들이 싹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쉽게 없어지지 않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왜 있을까요? 혹은 왜 있어야 할까요? 혹시 내가 깨끗이 포기하고 하느님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남아서 나를 근심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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