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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사하던 날 - 이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29 조회수664 추천수8 반대(0) 신고
 
 
 이사하던 날
 
저는 1999년 1월에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보좌신부를 5년, 성전건축공부를 3년, 그리고 지금 사거리 성당 주임신부로 1년이 되어갑니다.

뭐 특별한 사목체험 같은 것이 없습니다. 어떤 선배신부님의 말씀처럼 ‘제가 믿는 하느님 신앙이 다른 분들의 신앙에 걸림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똑같은 신앙인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호남 고속도로 백양사 IC에 있는 ‘사거리’라는 곳입니다. 성당 명칭도 ‘사거리성당’입니다. 예전에 광주와 전주, 서울을 오가는 중요한 관문이었던지라 ‘사거리’라는 명칭이 그대로 지역명이 된 곳이죠. 지금은 우회도로의 발달로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시골 본당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박해 시대 때부터 신앙의 선조들이 괴나리봇짐과 지팡이 하나만을 가지고 전주에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진리의 등불을 들고 박해를 피해 왔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성당 앞에는 정체모를 ‘피난자 상’이라 불리는 상이 서 있습니다. 박해를 피해 신앙 초석을 쌓았던 조상들을 생각하며 세운 상이랍니다.

주일에는 100명 정도의 신자가 미사에 참석하십니다. 2구역 6반으로 편성된 반모임도 있습니다. 한 달에 6번 반모임에서 구역 공동체 미사를 하다 보니 1년이 못되어 거의 모든 가정에서 미사를 한 번씩 다 했고 가정방문도 함께 했습니다. 공소도 두 군데 있습니다. 10명 정도 나오시는 ‘성진공소’와 비공식으로는 125년 이상이 되었다는 20여 명 정도 나오시는 ‘매남공소’라는 곳이 있습니다.

제가 사거리 성당에 처음 온 날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신자분들이 많이 나오셨더군요. 건축공부를 했던지라 건축 책들 조금 가져오고, 그전 책들은 친정집에 있어서 대충 챙겨 왔는데도 책 상자가 열 개도 더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당은 조그맣고 아담했고, 예전의 높은 종탑 위에 너무 크신 예수님이 올라가 계셨습니다. 성당문은 가정집 현관문처럼 생겼고, 너무나 넓고 조용한 시골 성당 모습 그대로입니다.

사제관에 들어서 보니 20년 쯤 된 단정한 슬래이브 주택이었습니다. 가구도 그 때 것이었고요. 책상은 나무책상에 곰팡이 냄새도 살살나고 무게도 상당했습니다. 그 때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두 분께서 오셨습니다.

“신부님 짐이 이것 밖에 안되나요?” “네 왜요?” “저희가 정리해 드릴려구요” “아, 놔두세요. 이따가 청년들 오면 할게요” “신부님 여기는 우리가 청년입니다. 일도 잘하구요. 기운도 셉니다. 뭘 나를까요?” 이러시더군요.

사실 젊은 저보다 훨씬 힘도 쎄시고 책 상자도 간단히 번쩍 번쩍. 나중에 교적에서 연세를 봤더니 한 분은 여든, 한 분은 칠순 이었습니다. 여기 사거리본당에는 학생들 몇을 제외하고는 저보다 나이 적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호 신부 (광주대교구 사거리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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