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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모를까?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29 조회수512 추천수7 반대(0) 신고
 

- 왜 모를까 ?-

요한복음 18장 36-37: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거대 무변의 우주에서
미소한 소립자까지 하나의 뜻이 있고,

그 뜻에 의하여
탄생되었고, 지배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창조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말씀은 전혀 달리 들린다.

현대물리학을
깊게 알면 알수록,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이
진리를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예수의 말을 들은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오?’라고 되묻지만,

예수의 말씀은
이 세상에 처음 있었고,

지금도 있고
영원히 있는 진리로서
시공을 초월한 것이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는 죽음을 전후로
생애를 통해 무엇인가 말씀하고 계신다.

즉, 예수의 생애를
평소의 예수, 죽음으로 넘어가는 예수,
부활하신 예수, 이렇게 3단계로 나누어 보면
각 단계에서 그 가르침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평소에 하느님 나라를 가르친 것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그렇게 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둘째, 죽음을 예고하고 죽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시점에서,
      예수는 인간의 생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셋째, 부활한 예수는 그때까지
      모든 가르침을 증거로 보여주시고,
      이 세상에서 우리 인류 모두가
      당신을 따라 살 수 있도록 거대한 틀을 잡아주셨다.

예수는 살아계실 때
무수하게 많은 진리를 가르치셨고,

그 가르침 모두는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즉, 죽음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신앙과 과학의 만남-
생활묵상:                           국 일 현 박사.

왜 모를까?
죽은 다음에 자기가 산대로
삶을 이어 받는 다은 것을?

루카 16장 19-3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라자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주십시오.”하며 애원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형제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어 고통을 받지 않게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다. 살아있는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서 이 사실을 일러주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날 일도 없겠지만
죽었다가 살아나서 그 사실을 일러 준다해도
우리들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감동을 받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 곧 하느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 ‘있을 때 잘해!’를 뇌까리면서도
막상 착한 일을 하려면,

내가 손해보는 느낌이 들고,
또 내 자존심을 상하는 일 같기도 하고,
뿌리깊은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란 더더욱 힘드니 말입니다.

그러니 왜 모를까?
죽음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삶에서
우리가 누릴 영원한 삶에 대한 보속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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