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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30일 야곱의 우물- 루카 16, 19-31 /렉시도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29 조회수532 추천수8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루카 16,19-­31)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3대가 한집에 살면서 한방에서 밥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식사 때 할아버지 자리는 유리가 달린 문 곁인데, 밖을 내다보시다가 밥을 얻으러 온 사람이 있으면 “얘, 어멈아. 손님 오셨다.”라고 하셨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바로 숟가락을 놓고 동냥 그릇을 들고 온 이한테는 밥과 찬을 담아주었고, 빈손으로 온 이한테는 윗방에 따로 상을 차려 대접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무위당이었기에 나중에 이웃들이 그한테서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고 할 만한 사람이 되었다고 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와는 아주 대조를 이루는, 한창 더운 대낮에 자기 앞을 지나가는 세 나그네를 달려가 맞이한 아브라함에 비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이 극진히 대접한 세 나그네는 하느님의 천사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에서 하느님 대신 아브라함이 등장한다고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말합니다. 부자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난한 이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는 뜻의 라자로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가난한 이들을 개개인의 이름으로 부르실 만큼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의도가 보입니다.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3)라고 한 마리아의 노래가 이 이야기에서도 드러납니다.

 
어떤 부자, 도대체 그의 잘못이 무엇인가요? 그가 부당하게 부를 축적했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로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는데 즐겁게 사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그는 라자로를 미워하거나 학대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부자의 잘못은 형제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라자로는 죽어 아브라함 품에 안기지만 부자는 죽어 저승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내가 좋은 것들을 소유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노력 때문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것이 기본을 이룹니다. 물질적인 것 이외에도 내면의 자질이나 건강 등 타고난 것들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마태 24,`45) 하듯, 가진 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제때에 모든 이에게 고루 분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부자는 이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내 배가 부르면 종의 배도 부르다.’는 옛말 그대로였습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의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부자의 가족한테서 부자 같은 사람이 나오고, 장일순 선생의 가족한테서 장일순 같은 사람이 나옵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을 조상, 곧 할아버지로 부르고 있지만 진정 아브라함의 후손은 장일순 선생 같은 가족입니다. 율법과 예언서는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이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성치 못한 몸(종기투성이)이었고,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란 굶주린 사람 라자로는 게을러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어떠하였든 부자의 집 앞에 있는 라자로는 일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 사회의 구조와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는 주도권을 쥔 쪽은 부자와 권력자입니다. 단지 부자라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청렴하지 못한 부자, 나누지 않는 부자가 잘못된 것입니다.

 
“단지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사람이 7초에 한 명, 60억 세계 인구 중 30억이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목숨도 환율처럼 1달러 대 1천 원, 1달러 대 3만 리라 하듯 그 값이 각각 다른 걸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3명만 죽는다고 해도 전세계가 들썩거리지만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천문학적 숫자가 아사 직전인데도 세계 언론은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뭐가 제일 필요하세요?’ ‘씨앗이죠.’ 어쩌면! 아프가니스탄 농부들과 입을 맞춘 듯이 똑같은 말을 한다. 굶주림 끝에 종자까지 다 먹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 씨앗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에요.’ 이야기인즉 작년에 한정된 구호 자금으로 한 마을은 씨를 배분하고 그 옆 마을은 주지 못했단다. 안타깝게 비가 오지 않아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으나 씨를 나누어 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 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전세계는 남한 인구만큼인 4천2백만 명의 에이즈 환자가 있고, 매일 1만5천 명씩 늘어난다고 합니다. 임산부가 에이즈에 감염되었을 경우 태아도 감염되는데 이런 모자 감염은 임신 7개월에 한 번 억제 약을 복용하고 출산 후 3일 내에 아이에게 한 번만 보조제를 흘려주면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약값은 단돈 4유로(6천원)인데 그것이 없어서 죄 없는 아기의 목숨이 무참히 꺼져간다고 합니다.”(「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중에서)

 
그렇습니다. 늘상 내 코가 석 자이기 때문에 이런 일에 눈 돌릴 겨를이 없다며 무관심하게 살고 있습니다. 한비야 씨는 이 책에서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 아닌 무관심이지만 생명의 반대 역시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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