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수녀(마리아구호소)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단순 소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모든 면에서 작아진다는 의미다. 작아진다는 것은 소화 데레사 성인의 영성이기도 하다.
오래전 수녀원에 입회하기 전 이야기다. 초아라는 소녀와 함께 동해 바다가 보이는 야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아침에는 청명했던 날씨가 갑자기 소나기라도 쏟아질 듯 검은 구름이 오락가락하더니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동해 바다에는 성난 파도가 날뛰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정말 무서웠다. “가자, 우리 빨리 뛰어가는 거야.” 그러나 몰아치는 폭풍은 우리를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덜덜 떨면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폭풍에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한 걸음씩 떼어놓았다. 갑작스러운 폭풍에 산새들도 울부짖었다.
그때 초아가 “저기 작은 꽃 좀 봐.” 하며 작은 풀꽃들이 피어 있는 동산으로 달려가더니 거기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아, 너무너무 포근해.”라고 말하는 초아를 따라 나도 눈을 감고 풀꽃의 향기를 맡았다. 순간 우리는 작은 꽃이 되었다. 작은 꽃잎이 되어 나비처럼 훨훨 나는 것 같았다.
사납게 불어대는 바람도 느껴지지 않고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난 그때 알았다, 작은 이들의 행복을. 그 꽃은 너무 작아서 무서운 태풍도 사나운 비바람도 덮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도 풀꽃처럼 작아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품에 안고 가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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