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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총피정<22> 왜 때려 4부 - 강길웅 요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01 조회수977 추천수12 반대(0) 신고
 
 
           
 
 

                    왜 때려 < 제 4 부 >

                                                             

   아시다시피,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조개 안에 단단한 어떤 이물질이 들어가게 되면 조개는 그것을 몸 밖으로 내보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내보내지 못할 때 조개는 그 이물질을 내면의 액으로 감쌉니다. 움직일 때마다 거추장스럽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의 액으로 그이물질을 감쌉니다. 그러다 보면 조개가 자라면서 그 혹도 커지게 됩니다.


   이 혹은 사람의 암과 같습니다. 보통 성가신 게 아닙니다. 서서히 굉장한 고통울 주며 평생을 괴롭힙니다. 그러나 힘들 때마다 사랑으로 감싸고 인내로써 참고 견딜 때 조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 사람에게 선사하게 됩니다.


   조개는 자기가 그 찬란한 진주를 만드는 줄을 평생 모릅니다. 그저 팔자 사나운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외롭게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와 같은 길에서 조개는 자기보다 수천 배의 가치가 있는 진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고통을 참고 견디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아름다운 보물을 하느님 대전에 바치게 됩니다. 억울하게 흘렸던 눈물은 보석이요, 참았던 아픈 가슴은 장미나 백합이 됩니다.


   고생을 많아 한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분명히 다릅니다. 남보다 더 빨리 늙는 설움은 있을지 모르나 착하게 살았던 삶의 아름다운 세상의 어떤 치장  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빛나게 됩니다. 깊히 패인 주름살과 굵은 손마디까지도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보석이 됩니다.


   언젠가 한 할머니가 찾아와서 당신의 인생을 고백했습니다. 이분이 본래 재산도 좀 있는 분이라 그저 괜찮은 집의 할머닌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고생을 많이 한 분이며, 세속 말로 팔자 사나운 길을 외롭게 걸어온 분이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분이 구교 집안에서 태어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한 남자에게 당한 것이 임신이 되어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아기를 낳게 됩니다. 물론 병원에 가서 아기를 뗄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하느님이 두려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평생 시집도 안 갑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커 가면서 계속 말썽을 피웁니다. 사기도 치고 교도소에도 들어가서 엄마의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그래도 이 자매는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의 십자가로 알고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이아들이 또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아들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그 모양입니다.


   이 할머니가 자기 삶의 서러웠던 사연들을 말하면서 슬프게 우시는데 저는 그런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때 할머니가, 하느님이 아니라면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당신은 남편 복도 없고 자식 목도 없으며, 있다면 천주대전에 받을 복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그리고 그분이 흘리는 눈물 속에서 진주보다 아름다운 보석을 보았습니다. 하느님이 두렵기 때문에 낙태수술을 할 수가 없었고 못난 아들일망정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이라는 주님의 목소리가 그 눈물 속에서 들려 왔습니다.


   요한 묵시록 7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9-14절)


   어떤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어린양 앞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 자랑스럽게 서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너무나 자랑스럽고 너무도 부럽게 보였습니다.


   그 때 한 원로가 묻습니다.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그리고 그 원로가 스스로 대답합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그렇습니다. 누구도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걷지 못했던 자들은 어린양 앞에 나설 수 없습니다. 오라고 해도 나갈 수 없습니다. 오직 그분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면서 눈물 흘렸던 사람과 고생했던 자들이야말로 자신 있게 나서게  됩니다.


   마태오 복음 11장 28절에 보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그분 대전에 떳떳하고 자신 있게 나갈 수 있겠습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열심히 살았던 자들입니다.


   이런걸 보면,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았던 일들은 허무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절대로 불행이 아닙니다. 벌이 아닙니다.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8장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진정한 가치가 십자가위에 있었듯이 우리의 가치도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 위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조개의 놀라운 가치가 진주에 숨겨져 있듯이 사람의 참된 가치도 십자가에 감춰져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 인숙이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너무도 큰 환자였습니다. 돌도 되기 전에 병을 얻은 것이 평생 환자가 되어서는 가정에 많은 아픔을 줬습니다. 그때도 제가 동생을 업고 있었는데 등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느낌이 아주 불길하여 얼른 아이를 내려놓고 보니 동생이 경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경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동생의 발작하는 모습이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나중엔 어머니도 보시고 얼마나 놀라셨는지 혼이 다 나간 듯이 보였습니다. 그날부터 저의 집은 어둡고 긴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제 5 부 에 계속 >

                         

 ♥은총피정- 사랑하는 만큼 기다리는 만큼♥ 中에서 / 강길웅 신부(소록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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