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03 조회수1,362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07년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No one who sets a hand to the plow
and looks to what was left behind is fit for the Kingdom of God.”
(Lk.9.62)
 
제1독서 느헤미야기 2,1-8
복음 루카 9,57-62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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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대한 생각을 해봅니다. 용서의 조건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러한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아버지가 어떤 형제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아이가 관심을 끌고 싶었는지 아버지의 코를 잡고 넥타이를 입으로 뭅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아버지의 뺨을 힘차게 때립니다. 바로 이 순간 아버지는 어떻게 반응을 보였을까요?

“나는 내 아들을 용서할 수 없어.”라고 말하면서 이 어린아이를 집어 던질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어린아이이기에 무례한 행동을 할지라도 용서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행동을 다 큰 어른이 했다면 어떨까요? “나를 이렇게 모욕하다니…….”라고 말하면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용서란 상대의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요? 즉, 10살까지는 용서할 수 있지만, 그 이후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아니지요. 이렇게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어린이일 때에는 그 눈높이로 어린이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상대방이 어른이 될 때면 상대방의 눈높이가 아니라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합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눈높이를 맞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만약 주님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히 우리에게 눈높이를 맞추시는 주님이기에 우리들은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바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으신 분이기에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첫째 자리에 반드시 주님을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오늘 복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지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또 어떤 이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주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놀랍게도 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청을 거절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장례도 치루지 않는 불효막심한 자녀가 되는 것일까요? 또한 가족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몰인정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세상의 어떤 일보다도 주님을 따르는 일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사랑의 눈높이를 맞추시는 주님께, 우리 역시 눈높이를 맞추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내 자신의 눈높이에 모든 기준을 맞추기보다는 주님의 눈높이에 맞춰 나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역시 주님처럼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세운 눈높이가 아니라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는 오늘을 만드세요.




따뜻한 이웃('좋은 생각' 중에서)
 
수년 전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우편집배원, 조셉 룰랭 초상화' 전이 열렸다. 겨우 7점의 초상화들로 특별전을 연 것을 보면 고흐와 룰랭의 인연이 남달랐음을 짐작케 한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고흐는 1888년 아를로 내려갔다. 그떄 우편집배원이던 조셉 룰랭은 고흐에게 동생 테오의 편지와 세상의 소식을 전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또 호탕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했던 그는 가난해서 모델을 구하지 못하는 고흐를 위해 아내, 아이들과 함꼐 초상화 모델이 돼 주곤 했다. 고흐는 룰랭 가족을 만나면서 진정으로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나 부인의 초상화에는 고흐 특유의 소용돌이, 약동하는 붓 터치가 없고 녹색, 연두색, 노란색 등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색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무엇보다 룰랭 부부는 고흐가 고갱과의 다툼 끝에 귀를 잘랐을 때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가 진료받게 하고 입원한 동안 돌봐 주었다. 퇴원 이후엔 아침 식사를 들고 고흐의 작업실을 찾아가 함께 먹으며 고흐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격려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룰랭이 마르세이유로 전근가게 되면서 그들은 헤어져야 했다. 여전히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만약 룰랭 가족이 평생 고흐의 이웃에 살았다면 고흐가 자살하는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늘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는 소외감에 시달리던 그가 잠시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친구를 이 세상에서 만났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But you, go and proclaim the Kingdom of God.”
(Lk.9.60)
 
 
Pardonne Moi  - 남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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