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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총피정<23> 왜 때려5부 - 강길웅 요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05 조회수957 추천수14 반대(0) 신고
 
 
 

                            왜 때려 < 제 5 부 >


   부모님은 딸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셨습니다. 병원마다 찾아다니셨고, 용하다는 약방마다 찾아다니셨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생은 발작을 했습니다. 말이 발작이지, 한 번 발작하는 것을 보면 차마 눈 뜨고는 못 봅니다.


   눈과 입이 옆으로 돌아가고 손발이 뒤틀려서 심하게 떨면서 괴성을 지르는데 그 발작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대개 5분이나10분정도 하는데 굉장히 힘들게 보입니다. 발작을 한 번하고 나면 아이가 한숨을 쉰 뒤 깊은 잠에 떨어집니다. 그런데 그런 발작을 매일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한약방에서 몸이 허하다 해서 보약을 많이 지어 먹이셨는데 보약 탓인지, 그 무서운 발작을 하루에도 서너 번씩 할 때가 있었습니다. 힘이 좋으니까 오히려 발작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발작을 많이 한 다음날에는 하루를 쉽니다. 힘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세월이었습니다. 그때는 이자가 1할5부였는데 빚도 많이 졌습니다. 치료의 효과는 전혀 없고 돈만 몽땅 들어갔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선생을 하셨는데 아홉 식구가 살기에는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매일 빚쟁이에 시달려야했고, 먹고 학교 다니는 일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기도도 많이 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54일 기도를 식구마다 돌아가며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성모님은 응답이 없으셨습니다. 그때 저희는 십자가가 뭔지도 모르면서 외롭고 서러운 길을 오랫동안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은총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처음엔 낫게 해 달라고 하다가 나중엔 희망이 없게 되자, 그러면 얼른 천당으로 데려가 달라고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 어느 것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희망이 절벽이었으며 붙잡고 매달릴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열 살 때부터 신학교에 간다고 했는데 그것도 다 포기하고 빚 갚기 위해 사범학교에 들어가서 선생이 되었습니다.


   빚 갚는데도 오래 걸렸습니다. 아버지와 형과 저와 셋이서 버는데도 십  여년이 걸렸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세월이었습니다. 가난과 우환 속에서 우리는 삶의 아름다운 부분들을 몽땅 뺏기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실로 큰 십자가였으며 또 십자가를 분노와 불평으로만 받아들이니 모든 불행이 그 십자가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못 먹고 못 사는 것도 동생 때문이었으며, 부모님이 자주 싸우고 또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는 일도 동생에게서 나왔습니다. 동생은 참으로 무거운 짐이었으며 하느님의 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하느님께서는 공연히 우리를 찌르거나 때리시지 않는다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을 은혜로 받아들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동생의 병에는 분명히 하느님의 크신 뜻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를 은혜로 받아들이자 그날부터 동생은 하느님이 우리 집에 보내신 천사였으며, 동생의 무서운 아픔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죄에 대한 보석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이젠 모든 은혜가 동생의 병에서 나왔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나이 마흔에 신부가 된 것도 사람들은 동생의 병에서 온 은총이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제 나이에 신학교에 갔다면 신부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쫓겨났어도 아마 수십 번은 더 쫓겨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선 동생을 통해 제가 인생의 여러 길을 걸어서 당신께로 오도록 안배하셨습니다. 여러 경험을 통해서 더 다듬어지고 사람 꼴이 채워진 뒤에 저를 부르셨습니다.


   동생은 우리의 추측보다는 오래 살았습니다. 스무 살부터는 완전히 식물인간이 되어 말도 못하고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했으며 평생 누워서 지냈습니다. 동생이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먹여 주면 먹고 배설하고 또 발작하는 이 세 가지뿐이었습니다.


   동생은 1993년 시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른아홉이었습니다. 뼈만 앙상했고 너무도 외로운 세상을 살다가 갔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생애였습니다. 우리에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값진 생애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동생이 남겨 준 교훈을 간직하며 삽니다. 삶에서 무엇이 소중하고 또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우리에게 필요 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밤이 아무리 길어도 새벽은 꼭 찾아옵니다. 따라서 괴롭다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며 힘들다 해서 실망해서도 안 됩니다. 모든 고통에는 다 소중한 뜻이 있습니다. 공연히 하느님이 때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묘한 것은, 십자가가 아무리 무거워도 일단 짊어지면 가볍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봇대처럼 보여도 짊어지면 나무젓가락처럼 가볍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십자가를 지면 이상하게 십자가가 우리를 짊어져 줍니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선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매를 드시고 또 당신이 사랑하시는 지를 시험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선 당신이 믿으시고 특별하게 사랑하시는 자에게 당신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가기를 원하십니다. 십자가는 절대로 수치가 아니요 또 벌이나 저주도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인생을 병들게 합니까? 그것을 은혜로 받아들이고 짊어지십시오. 무거운 짐을 벗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놀라운 은총이 바로 거기에서 오며 새로운 광명의 세계가 바로 거기에서 열릴 것입니다.


   십자가의 저주를 은혜로 바꿔주신 하느님, 저희들이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아 용기 있게 짊어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를 바라보며 늘 감사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제 5 부 끝 >

 


 ♥사랑하는 만큼 기다리는 만큼♥ 中에서 『왜 때려』/ 강길웅 신부(소록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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