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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는 구호의 산물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05 조회수606 추천수6 반대(0) 신고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는 구호의 산물  



  
몇 해 전 도올 김용옥이 MBC TV에서 '논어' 강의를 할 때의 일이다. 한번은 김수환 추기경이 그 프로에 초청된 적이 있었다. 도올의 질문에 김 추기경이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잠시 대담이 진행되었는데, 도올은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럼,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천주교 밖에도, 즉 기독교(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 방송이 나간 직후부터 그 방송사의 거의 모든 전화기들은 불이 났다고 한다. 전국의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친 탓이었다. "어떻게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느냐?" "천주교도 예수님을 믿는 종교인데, 천주교의 최고 지도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공영방송이 기독교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방송을 그렇게 함부로 내보낼 수 있느냐?" 등등.

1993년 한국 불교의 최고 지도자였던 성철 스님이 열반했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개신교의 유명한 목사님 한 분이 '기독교방송(라디오)'에서 설교를 하면서 놀라운 말을 했다. "성철이 불교계에서는 아무리 추앙을 받는 인물이라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저 지옥의 맨 밑바닥에 가 있을 겁니다."

자기 교회도 아닌 공중파 방송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유명하신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그럼,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목사님의 조상님들은 모두 지옥에 가 있겠네요?"

2004년 11월 14일 저녁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태안천주교회 본당설정 40주년 기념 '경축의 밤'> 행사는 우리 지역사회에 '종교 화합'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행사이기도 했다. 우리 지역 개신교 중의 으뜸교회인 태안장로교회의 찬양대와 으뜸사찰인 공덕사의 찬불대가 와서 축하 공연을 했다.

태안천주교회 40주년을 경축하는 자리에 개신교의 찬양대와 불교 사찰의 찬불대가 함께 한 일을 널리 알리고자 나는 그해 11월 18일치 <태안신문> 칼럼 난에 <종교 화합은 아름다운 사회의 표징이다>라는 글을 썼고, 그 글을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독자들의 많은 찬사들 가운데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비난도 적지 않았다. 격앙된 어조로 "어떻게 천주교 행사에, 더구나 불교도 함께 하는 그 자리에 개신교 찬양대가 함께 할 수 있느냐"며, 그것을 일러 '작태'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언젠가 <네이버>와 <다음> 등 대형 포털사이트의 '통합검색' 창에 내 이름을 적어놓고 '검색'을 눌러보니 인터넷 상의 내 글들이 개인 블로그나 카페에 꽤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접받는 그 글들 중에는 종교 화합의 아름다운 모습을 알리는 글들도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그 글들을 개인 블로그에 올려놓은 어떤 사람은 그 글들 위에 이런 말을 달아놓고 있었다. "적(敵) 그리스도 무리들의 '작태'를 보여 드립니다."

나는 혈당 관리를 위해 거의 매일 걷기 운동을 하며, 종종 백화산도 오른다. 백화산 태을암의 대웅전 앞을 지날 때는, 손에 천주교의 묵주를 쥔 채로 꼭꼭 허리 굽혀 부처님께 예를 올린다. 천주교 신자인 내가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것을 하느님께서도 어여쁘게 보실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 내 모습과 확신을 글로 써서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다. 그 글은 인터넷 상에서 극심한 '종교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내게 비난을 퍼부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목사님 한 분은 "타종교를 인정하며,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굳이 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이유도 없었다"며 내 '무지'를 개탄했다.

얼마 전 인터넷 상에서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격분을 불러일으키는 사진 한 장이 널리 유포되었다.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고 쓴 팻말을 든 중년신사 한 분이 불우한 사람들에게 식사제공을 하기 위해 지하도에 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받는 스님의 머리를 만지며 조롱을 하는 사진이었다.

때를 같이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 23명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을 통해 우리는 '공격적 선교'라는 용어를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상대방의 문화와 전통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해외선교가 얼마나 무모하고도 위험한 것인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사건을 처음 접하는 순간 내게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는 말이 냉큼 떠올랐다. 그 사건은 그 무서운 구호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이상한 공포감 속에서 위에 소개한 사례들이 한꺼번에 떠오르기도 했다.

언젠가 서울의 전철 안에서 '믿음천국/불신지옥'이라는 팻말을 들고 열심히 선교하는 50대 남성분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의 아버님도 신자이십니까?"하니, "우리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지옥에 갔을 게 뻔해요. 그래서 내가 안타깝고 슬픈 마음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는 거예요"라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지옥에 갔을 거라고 믿는 그의 스스럼없는 말에 나는 놀라움을 느끼며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의 아버님은 극악무도한 분이 아니셨다면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며 선교하는 시간에 선생님 아버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4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2007.10.05 08:4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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