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06 조회수848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7년 10월 6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I give you praise,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for although you have hidden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the learned
you have revealed them to the childlike.

(Lk.10.21)

 
제1독서 바룩서 4,5-12.27-29
복음 루카 1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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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느 피정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피정 지도 신부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자신이 행복한 이유 100가지를 적어 보시오.”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100가지나 적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그 신부님께서는 무조건 100가지를 적으라고 하십니다. 만약 100가지의 행복한 이유를 적지 않으면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고 하시네요. 화장실도 갈 수 없다고 하면서, 만약 정말로 급한 사람 역시 100가지의 행복한 이유를 다 적은 뒤에야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남보다 잘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별로 잘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이것 역시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남보다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재벌 아들로 태어나서 많은 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하나도 쓰지 못했는데…….

저는 급한 마음에 다른 사람은 어떤지를 둘러보았습니다. 다들 저와 비슷한 것 같더군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의 친구가 정신없이 쓰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어떻게 쓰고 있는지 살짝 컨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보고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1. 나는 팔이 두 개라서 행복하다.

2. 나는 눈이 두 개라서 행복하다.

3.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가 있어 행복하다.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저는 이 친구가 장난하나 싶었습니다. 남들도 가지고 있는 뻔한 것들이 무슨 행복의 이유가 되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 역시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도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내가 볼 수 없고, 만질 수가 없으며, 냄새도 맡을 수 없다면 어떨까요? 분명히 팔과 눈과 코는 내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행복한 이유 100가지. 제가 과연 이 100가지를 쓰기가 쉬었을까요? 어려웠을까요? 너무나 쉬었습니다.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은 행복한 이유는 100개가 아니라 수천 개라도 쓸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그런데 사실 좀 어이가 없습니다. 똑똑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제자들, 그것도 당신께서 잡히시는 순간에는 모두 도망가는 철부지 같은 제자들인데 이들을 보면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다니요? 오히려 하느님께 원망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것을 가지고도 크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바치실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도 행복한 이유가 그렇게 많기 때문에,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한 이유를 생각해보시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칩시다.




사람마다 역할이 다르다('좋은생각' 중에서)
 
공자가 타고 다니던 말이 어느 날 한 농부의 밭으로 들어가 농작물을 망쳐 버렸다. 화가 난 농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말을 끌고 가 버렸다. 공자가 제자들을 부러 누가 말을 찾아오겠느냐고 묻자 말재주가 좋다고 소문난 자공이 제일 먼저 나섰다. 그러자 마부도 나서서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말을 잘 지키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그래도 자공이 가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자공이 아무리 설득해도 농부는 말을 돌려주지 않았다. 자공의 선비 옷차림과 공손한 말투는 농부에게 오히려 거부감만 주었다. 결국 자공은 빈손으로 되돌아왔다.

공자가 이번에는 마부를 보냈다. 마부는 농부에게 다가가 말했다.

"당신이나 나나 다 같은 농부가 아니오. 내가 깜빡 조는 사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이 밭에 들어가 저지른 일이니 한 번만 용서하시구려."

마부의 처지를 이해한 밭주인은 허허 웃으며 말을 되돌려 주었다.

공자는 왜 처음부터 마부를 보내지 않고 자공을 보냈을까? 공자가 마부를 먼저 보내면 자공은 속으로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 일쯤은 자기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서운한 감정을 가질게 분명했다. 공자는 자공이 실패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상대에 따라 사람마다 역할이 따로 있다는 점도 일깨웠다.
 
 
Yes, Father, such has been your gracious will.
(Lk.10.21)
 
 
John Adorney - Flow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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