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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 7일 야곱의 우물- 루카 17, 5-10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07 조회수458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카 17,5-­10)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루카복음 17장, 오늘 복음의 앞뒤에는 악한 표양을 보이지 않는 것, 형제적 상호교정, 용서, 믿음의 힘, 겸손하게 하느님을 섬김 등 제자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한 말씀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믿음의 위력입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사도들이 자신들한테 믿음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자 예수께서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한테 믿음이 전혀 없는 듯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말 그들에게 믿음이 전혀 없었을까요?
 
복음서를 통해 볼 때,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군중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요한 7,40-­43)

 
공관복음의 제자들 정보에 의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두고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요한복음은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12,44)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죄라고 합니다. 또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6,29)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경우를 두고 생각해 봅니다. 복음서에 가끔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 2,11)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빵이라는 말에 많은 제자들이 떠나갔으나, 베드로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9) 하며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고 꾸중 들은 적도 많습니다.
 
군중도 제자들도 ‘도대체 이분이 누구신가?’ 하며 반신반의합니다. 사실 그들의 믿음은 어떤 표징을 보고 난 뒤에 믿는 수준이요, 예수님이 자신들의 기대에 상응할 때만 믿는 상대적이며 오락가락하는 믿음입니다. 티 섞인 믿음이 순수해지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2코린 5,7) 하기까지 걸러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완전한 나무로 성장해야 하는 믿음, 그래서 예수님은 겨자씨를 예로 드셨나 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티 없이 믿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은 가나안 여인, 예리코의 소경, 돌아와 감사를 드린 치유받은 나병환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나을 것이라고 믿은 하혈하는 부인, 중풍병자를 지붕을 뚫고 내려 보낸 친구들, 그저 한 말씀만 해도 낫게 하실 수 있다는 백인대장`….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은 “네 믿음이 크구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며 감탄하셨습니다. 믿음의 위력입니다.
 
열매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다음날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마르 11,23)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모범이신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였습니다.

 
믿는 이는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종은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주인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합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주인에 대한 충실함입니다. 우리는 피에타 조각상을 알고 있습니다. ‘피에타’의 의미는 ‘충실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았으나, 그 믿음은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은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안기까지 계속된 충실한 믿음이었다는 말입니다. 비록 시메온의 예언대로 영혼이 예리한 칼날에 꿰뚫리는 아픔을 당하시지만 마리아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라고 말한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종들에게 비로소 하느님은 일하십니다. 손수 허리띠를 두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서 시중을 들어주시며 당신 아들딸의 대열에 불러올리십니다. 예수께서도 더 이상 우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요한 15,15 참조)라고 부르십니다.
 
주님을 맥 빠지게 하는 일은 그분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주어야 한다는 말이냐?”(마르 9,19)라고 한탄하셨고,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마르 9,22)라는 말을 탓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지 않는 나자렛 고향에서는 아무 일도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장자」 제10편(거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천하는 언제나 혼란스러운 것인데 그 죄는 지혜를 좋아한 데 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은 모두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그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추구할 줄 모른다. 모두가 자신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난할 줄 알아도, 그가 이미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난할 줄 모른다. 그래서 큰 혼란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위로는 해와 달의 밝음을 흐리게 하고, 아래로는 산천의 정기를 녹이며, 가운데로는 사계절의 운행을 파괴하여, 꿈틀거리는 벌레로부터 날아다니는 새에 이르기까지 그 본성을 잃지 않은 것이 없다. 심하도다! 지혜를 좋아함으로 해서 천하가 이토록 어지러워지다니. 삼대 이후로 이러했으니, 순박한 백성들을 버리고 교활한 자들을 좋아하며, 담백 무욕한 생활을 버리고 수다스러운 말을 좋아하는데, 그렇듯 번다한 말들로 인해 세상이 이렇듯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이런 얄팍한 지혜와 생각들이 우직하게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근심 걱정을 초래하게 하지 않는지? 토끼와 경주한 거북이 이야기에서 승리한 자는 얄팍한 꾀를 부린 토끼가 아니라 처음부터 토끼와 시합한 것이 아닌(자기 자신과의 경주) 거북이의 우직함입니다. 신영복 교수는 ‘우직한 노인이 산을 옮긴다.’고 했지요.
‘주님, 저희의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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