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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사람들" - 2007.10.7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07 조회수571 추천수9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10.7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하바1,2-3;2,2-4 2티모1,6-8.13-14 루카17,5-10

                                                          
 
 
 
"믿음의 사람들"


주님께 비옵는 누구에게나,
진정으로 비는 누구에게나,
주님은 가까이 계십니다.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밤과 낮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빛과 어두움아 주님을 찬미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구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운명을 바꿉니다.
 
밤과 낮, 빛과 어두움 속에 있는 모든 죄악의 세력을 잠잠케 합니다.
 
어둠을 빛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먹고 크는 영혼이요,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기도 부족으로 영양 실조된 영혼들,
마음 거칠어지고 냉담으로 굳어진 이들 얼마나 많은지요.
 
며칠 전 어느 열심한 분으로부터 화장품 선물을 받았습니다.
사랑이 담긴 선물이라 흔쾌히 받았지만 수도자의 정서상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평생 한 번도 화장품을 바르지 않은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문득 ‘마음의 화장품은 없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얼굴 자주 거울에 보며 정성을 기울이듯,
  마음 자주 하느님 거울에 보며 정성을 기울일 수는 없겠는가,
  얼굴에 그렇게도 좋은 화장품 쓰며 곱고 부드러운 피부 유지에 정성을 다하듯
  마음도 기도의 화장품 사용으로 온유하고 겸손하게 가꿀 수는 없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육신 관리에 기울이는 정성에 비하면 영혼 관리에는 너무나 인색합니다.

영혼이 아름다우면 내면의 아름다움은 저절로 몸으로 배어 나와
사실 화장품 사용도 거의 필요 없을 것이니,
육신의 피부 관리에 앞서 영혼 관리가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여기 수도자들 매일 일곱 번의 공동기도에 한 번의 공동미사,
합하여 여덟 번 영혼의 영양 섭취와 더불어 영혼의 화장을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 우선적으로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자발적 표현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본능입니다.
기도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저절로 고백의 기도를 하게 마련이요,
사랑을, 희망을 , 믿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매일 평생 바치는 성무일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 희망, 찬미와 감사의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깊어지고
믿음, 희망, 사랑의 힘도 증대됩니다.
 
우리의 영육은 정화되고 치유되어 건강한 영육으로 살 수 있습니다.
 
도대체 이 세상 하느님 아니곤 찾아 갈 데가 어디 있으며,
만나 뵐 분이 어디 있으며, 스트레스를 풀 분이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 모세,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호세아,....
그리고 오늘 1독서의 하박쿡 예언자 모두가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친밀한 기도 중에 스트레스를 풀었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다음 하바쿡의 주님 향한 한탄의 기도를 들어보셔요.
찬미와 감사의 고상한 기도만이 아니라 이런 솔직한 심경의 토로 역시 기도입니다.

“...어찌하여 제가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재난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제 앞에는 억압과 폭력뿐, 이느니 시비요 생기느니 싸움뿐입니다.”

곧 이어 하바쿡은 주님으로부터 자상한 위로와 격려의 응답을 받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팔자 좋은 예언자들 하나도 없었습니다.
절망의 현실 속에서도 기도를 통해
하느님 희망의 빛으로 살아 간 믿음의 사람들,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사도들 또한 겸손히 주님께 믿음을 청하지 않습니까?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하느님은 우리 방식대로가 아닌,
당신의 가장 좋은 방식으로, 때로는 무응답으로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믿음의 사람들, 섬김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자발적 표현 겸손한 섬김입니다.
누차 말씀드렸다 시피 우리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단하나
섬김(service)과 종(servant)의 영성 하나뿐입니다.
 
섬김과 종, 영어 단어도 같은 어원입니다.
교회와 수도원, 업종으로 친다면 하느님의 서비스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주님이 아니라
우리 한가운데 섬기는 자로 현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성 베네딕도는 그의 규칙에서
그리스도교 중심의 영성을 살아가는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주님을 섬기는 학원’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렇습니다.
 
비단 성 베네딕도 수도 공동체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 ‘주님을 섬기는 학원’입니다.
 
이젠
‘섬김의 권위’,
‘섬김의 리더쉽’,
‘섬김의 학문(service science)’ 이란 용어가 널리 회자 되고 있는
오늘날 사회 현실입니다.
 
복음적 덕목인 ‘섬김’의 영성이 전 사회에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믿음에 대해 설명을 주신 후,
뜬금없이 섬김의 진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바로 믿음과 섬김이 깊은 관계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비단 사도들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에게 부여된 직무가 있다면
단 하나 겸손한 섬김의 직무뿐입니다.
 
사실 이런 겸손한 섬김의 자세라면 불평, 불만은 추호도 있을 수 없습니다.
끝없는 섬김의 직무로 다른 데 한눈 팔 시간도 여력도 없기 때문이요,
주님을 위해 겸손히 섬김의 직무를 다하는 자체가 바로 행복이요 보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겸손한 섬김의 자세, 역시 그대로 깊은 믿음의 자발적 표현입니다.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믿을 때 자연스레 뒤따르는 겸손한 섬김의 삶입니다.

믿음의 사람들, 항구한 인내와 기다림의 사람들입니다.

역시 하느님 믿음의 자발적 표현이 인내와 기다림입니다.
 
인간의 때와 하느님의 때는 다르기에
끝없이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입니다.
 
너무 성급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것, 바로 믿음 부족의 반영입니다.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오늘 지금 여기 주어진 섬김의 직무에 충실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 바로 믿음의 뿌리가 약함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안달한다고 하느님의 때를 앞당길 수는 없습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마지막 승리자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답답할 때 마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내 삶의 전 역사를, 공동체를 조망해 보는 것도
하느님의 때를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1독서의 하바쿡을 보세요.
조급해 안달해 하는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 참으로 엄중합니다.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하느님의 때를 인내 로이 기다리는 게 믿음입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믿음의 의인들, 성실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우리 믿음을 점검할 절호의 기회가 오늘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돌 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주님은 고맙게도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더해 주시며 또 믿음을 위한 세 처방을 주십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여라.
겸손히 섬김의 직무에 충실하여라.
끝까지 인내하며 하느님의 때를 기다려라.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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