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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총피정<24> 순명 - 강길웅 요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08 조회수1,117 추천수12 반대(0) 신고

 

순명


 

   전에 소록도 사제관에 있던 주방 자매는 연세가 일흔이었지만 얼굴도 곱고 음식 솜씨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반찬을 많이 놓고 먹는 것을 싫어해서, 식탁에 꼭 세 가지만 놓으라고 해도 아줌마가 말을 안 듣습니다. 다섯 가지, 여섯 가지, 당신이 놓고 싶은 대로 놓습니다.


   반찬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깻잎 하나가 맛있으면 밥 한 사발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찬이 여러 가지가 되면 뭘 먹어야 할지를 몰라서 맛이 없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 먹은 것도 없이 배만 부르게 됩니다.


   사람들이 잔치에 초대를 받아 배부르게 먹고 나서는 흔히 그런 농담들을

합니다.  "먹은 것도 없이 배만 부르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맞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갈비도 먹고 생선회도 먹고 육회도 먹고 산낙지도 먹었지만. 좋은 반찬들이 너무 많아서 도대체 뭘 잘 먹어서 배가 부른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먹은 것도 없이 배만 부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때 주인은 또 그럽니다.  "차린 것도 없이 돈만 들었습니다."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자기 딴에는 잘 차린다고, 비싼 돈 들여가며 이것저것 장만했는데 사람들이 뭘 잘 먹었는지를 모르니까 차린 것도 없이 돈만 많이 든 것처럼 생각되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아줌마에게 몇 번 말했습니다. 음식 잘하는 것은 소용없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라. 그래도 안 합니다.  화를 내도 안 합니다. 손님만 오면 기어이 네 가지, 다섯 가지가 올라옵니다. 그러면 손님들이 와서 흉을 봅니다. "신부님은 반찬을 세 가지만 놓고 잡수신다고 하더니 실제로는 안 그러네요."


   이럴 땐 자존심이 무척 상합니다. 저는 우리 아줌마 덕분에 순명이 왜 중요 한지를 알았습니다.  지금은 그 아줌마하고 살지 않습니다.


   아담은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후손에게 크나큰 재앙을 안겨 줍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말아야 하는데, 먹을 것이 잔뜩 있는데도 굳이 그것을 따 먹음으로써 하느님 말씀을 어깁니다. 그래서 그는 불행의 아버지가 됩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의 얘깁니다.


   사람의 나이 일흔다섯이라면, 누구라도 고향에서 말년을 편안하게 지낼 시기 입니다. 결코 고향을 떠날 나이가 아닙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떠나라" 하시니까 고향을 떠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받쳐라" 하시니까 하나 있는 아들마저 제물로 바칩니다. 그는 그래서 믿음의 아버지,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이처럼 순명은 하느님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서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불행합니다. 주님께서 내 마음을 사로잡아 주셨듯이 우리도 그분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분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이 무엇이냐?


   첫째는 그분의 뜻을 알아야 하고, 둘째는 그분의 뜻에 순명해야 합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얘기가 나옵니다.  왜 이런 끔찍한일이 벌어졌는가?


   카인은 밭을 가는 농부였고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때가 되어 카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하느님께 예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동생 아벨이 바친 예물만 반기시고 형 카인이 바친 예물을 받지 않고 버리십니다.


   이를테면, 아벨은 하느님의 마음에 쏙 들었는데 카인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한 사람은 왜 마음에 들고, 다른 사람은 왜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요? 이게 무슨 차이고, 무엇이 그 두 사람을 하느님 앞에서 갈라놓았을까요?  무엇이죠?


   성경에 보면, 아벨은 양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키우는 양들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골라서 그것도 제일 좋은 부분만 바친 것입니다. 그런데 카인이 바친 예물에 대해서는 그런 설명이 없습니다. 옛날 설명에 보면, 카인이 쭉정이를 바쳤다고 했습니다.


   이런 정성의 차이가 하느님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고, 아니면 하느님의

눈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카인은 시기 질투에 때문에 동생을 죽였는데, 이게 우리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똑같이 미사를 드렸는데 누구의 제물은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겠지만 다른 누구의 재물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하느님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다른 사람은 오히려 하느님을 부담스럽게 합니다. 미사뿐만 아니라 기도도 마찬가지요 봉사나 삶 자체도 마찬가집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사람은 시지 질투도 많습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전장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진지에 도착하고 보니, 적장 골리앗이 나와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싸움을 걸어오지만, 이쪽에서는 아무도 그에 맞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골리앗이 워낙 키가 큰 거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골리앗이 다른 사람보다 덩치가 더 크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덩치가 더 크기 때문에 그놈을 돌멩이로 때려 맞히기가 훨씬 더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에게 간청하여 막대기하나와 돌맹이를 들고 싸우러 나갑니다. 이때 다윗이 골리앗에게 외칩니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리고 한 걸음에 달려가 돌멩이로 적장의 이마를 맞추어 쓰러뜨립니다. 이스라엘은 그날 다윗 때문에 대승을 거둡니다. 다윗이 이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 (1사무 17,45,47)


   멋진 사람은 말도 멋지게 합니다. 이 조그만 소년이 순전히 믿음 하나로, 엄청난 힘을 가진 거인을 쓰러뜨리는데, 금이나 은으로 장식한 좋은 칼이나 창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요, 또는 보석으로 장식된 비싼 갑옷을 입어서 이긴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이겼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안 되는 일이 없고 무서운 일이 없습니다.

 

           ♣ 은총 피정 中에서 / 소록도 성당 강길웅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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