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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도자의 중요성과 책임의 막중함-판관기23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10 조회수449 추천수7 반대(0) 신고

지도자의 중요성과 책임의 막중함-판관기23

 <생명의 말씀>
 아낫의 아들 삼갈의 시대에도 야엘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큰길을 버리고 오솔길로 다녔네. 오, 드보라, 당신이 일어서기까지 이스라엘의 어머니 당신이 일어서기까지, 이스라엘의 촌읍들은 죽어 있었네. 새 신들을 저희의 신으로 삼았다가 전쟁이 성문에 들이닥쳤는데 도시 다섯에 방패 하나 없었고 사만 명 이스라엘 군인 가운데 창하나 없었네. 이스라엘의 사령관들을 생각하니 자원해서 나선 백성을 생각하니 나의 심장이 뛰는구나. 너희는 야훼를 찬양하여라. 흰 암나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아, 비싼 양탄자를 깔고 사는 사람들아, 대로를 활보하는 사람들아, 노래하여라. 우물 가에 모여 기뻐하는 사람들아, 야훼의 승리를 노래하여라. 이스라엘을 거느리시고 거두신 승리를 노래하여라. 그 때 야훼의 백성은 성문께로 내려 갔다. 드보라야, 떨쳐 일어나라, 일어나라. 떨쳐 일어나라, 일어나 노래를 불러라. 바락아, 일어나라. 아비노암의 아들아, 그대의 포로들을 끌고 가거라. 그 때에 이스라엘은 성문께까지 내려 갔다. 야훼의 백성은 영웅처럼 야훼를 편들어 싸우러 내려 갔다. (판관기 5:6-13)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이스라엘 사람들은 힘 있는 주변 민족들이 두려워서 대로를 버리고 좁은 길로 다녀야만 했고 강한 군대 또한 키우지 못해서 주변 민족들의 위세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불과 몇 세대전에 정복민으로 그 땅을 지배했던 민족이 초라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전반부에 나타나 있듯이 가나안 땅의 우상들을 자기들의 신으로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농경 사회의 풍요의 신으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재물과 섹스와 폭력의 욕망을 강화해주는 그들의 신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섬겼던 것입니다. 아니, 신을 섬겼다기보다는 자기 욕망을 섬기고 욕망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 마음 안에 자신의 욕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을 충족시켜 보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그 사람은 하느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기도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고, 피상적인 언어의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해도 최대 출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발동 걸기 어렵고 가속기를 힘껏 밟아도 속도가 쉽게 오르지 않는 고물 자동차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들어서 허탈해집니다. 당연히 하느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영적 에너지는 고갈되는 반면 나의 육적 욕망은 더 커지고 동시에 그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게 됩니다.

이런 시간이 지속되다보면 내 안에 하느님이 주신 힘과 무기가 바닥을 드러내게 됩니다.  '전쟁이 성문에 들이닥쳤는데 도시 다섯에 방패 하나 없었고 사만 명 이스라엘 군인 가운데 창하나 없었네'의 상황이 되어 버리는 건 시간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사실 하느님은 이런 상태의 이스라엘을 드보라와 바락을 통해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능력을 직접 체험한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실체를 명확히 알고 하느님께 고백하면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하느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철병거 900대의 시스라 군대를 깬 것이 이스라엘 사람이 전부 회개하고 하느님께 마음을 돌린 것에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그 승리는 하느님께 약속을 받은 드보라와 바락의 깨우침과 이 두 사람의 백성을 향한 하느님 뜻의 선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이루신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드보라와 바락은 하느님의 일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하느님은 늘 모든 사람에게 공개 방송의 형태로 당신의 말씀을 주셔서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당신께서 선택하신 사람-판관이든 예언자든-에게 당신 뜻을 알려 주시고 그것을 온 백성에게 전하게 하시는 방식으로 당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여기에 바로 공동체 리더의 중요성과 책임의 막중함이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의 리더는 세상 공동체의 리더와는 그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세상의 리더는 구성원들의 필요와 요청에 잘 응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단기적인 인기영합책일지라도 구성원의 필요를 잘 채워줬을 경우에는 상당한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의 리더는 공동체를 향한 하느님의 뜻을 명확히 깨닫고 구성원들의 호오(好惡)에 상관없이 선포하고 추진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드보라와 바락은 지난 백 여년간 이스라엘의 리더십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이것-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선포하여 백성들을 집결시키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내일의 묵상에서 살펴볼 내용이지만 반대와 빈정거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두 사람은 하느님을 신뢰했고 믿고 따르는 백성들을 결집시켰으며 위대한 일을 이루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회의 회장이거나 소그룹 성서 공부의 장이거나 찬양 봉사자 등의 직분을 가진 리더라면 한 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나는 과연 어떤 리더인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만족시켜 주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흐뭇함을 느끼는 것에 더 무게를 두는 리더인가? 아니면 내가 섬기는 이 공동체를 향한 하느님의 뜻과 그 뜻에 맞게 내가 어떤 준비와 일을 해야 할지 깨닫고 실천해 보려는 리더인가?

공동체는 지도자의 영적 수준 이상으로는 결코 커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인도해 나가는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수십 년만에 좋은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를 가졌고 그 덕분에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면서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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