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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긍정적인 생각만으로는-판관기25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13 조회수537 추천수4 반대(0) 신고

긍정적인 생각만으로는-판관기25

 <생명의 말씀>  
 켄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이여, 어느 여인보다 복을 받아라. 방구석에 묻혀 사는 어느 여인보다 복을 받아라. 시스라가 물을 달라고 하였을 때 우유를 주고는, 귀한 그릇에 엉긴 우유를 떠 주고는, 왼손을 내밀어 말뚝을 잡고 오른손을 내밀어 대장장이의 망치를 쥐고 시스라를 쳐서 머리를 부수고 관자놀이를 뚫어 쪼개 버렸다. 시스라는 그의 발 앞에서 꿈틀하고 죽었다. 그의 발 앞에서 꿈틀하고 죽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꿈틀하고 죽어 망하고 말았다. 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내다보며 창살틈으로 소리쳤네. "왜 그의 병거가 이렇게 늦느냐? 천리마가 왜 이처럼 더디냐?" 시녀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의 대답을 따라 그도 혼잣말로 지껄였네. "틀림없이 약탈한 것을 모아 나누겠지. 용사 하나하나에 여자 하나씩 또는 둘씩, 시스라 몫으로 채색한 옷 한 벌, 또는 두 벌, 그리고 내 몫으로는 수놓은 목도리 하나 또는 둘. 야훼여, 임의 원수들은 모두 이처럼 망하고 임을 사랑하는 이들은 해처럼 힘차게 떠오르게 하소서." 세상은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다 (판관기 5:24-31)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시스라는 연약한 여인에 의해 처첨하고 정말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죽기 바로 직전까지 절대 권력을 누리던 자였지만 이렇게 죽었다는 기록이 남는 것조차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런 시스라의 죽음과 관련하여 오늘의 말씀에서는 두 여인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스라를 죽인 야엘이라는 여인이고 또 하나는 승전하고 돌아올 때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시스라의 어머니입니다.

성서 저자는 야엘이라는 여인에게 큰 축복을 해 줍니다. '방구석에 묻혀 사는 어느 여인'보다 큰 복을 받으라고 축복을 아끼지 않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많이 달라졌지만 과거 사회에서 여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여자 스스로도 자신의 능력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야엘은 '방구석에 들어 앉는다'는 이 말의 한계와 제약을 스스로 벗어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이스라엘 백성을 도왔기 때문에 판관기 저자는 야엘이라는 여인에게 큰 복을 빌어 주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성경 저자의 공개적인 축복을 받는 여자가 결코 많지 않은데 야엘도 그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에 속하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여인의 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룻, 에스델, 성모 마리아) 

이어서 성서 저자는 철병거 군대의 장군 시스라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백전백승의 아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지 않자 그 어머니는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돌아와서 여느때처럼 적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어머니인 나에게 가져올 때가 되었는데 아들이 오지 않으니 마음이 불안해진 것입니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직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불안을 시스라의 어머니는 시녀들의 인간적인 위로와 낙관적인 예측으로 씻어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서 저자는 그 불안이 해소되거나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밝혀 줍니다.

하느님을 거스르기 때문에 마음 속 영혼 속 깊은 곳에서 생기는 불안과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근심은 인간의 격려나 낙관적인 생각 사고방식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이 방식으로 불안을 떨쳐보려 했지만 결국엔 비극적 사실을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까요?

이런 종류의 불안과 근심이 생길 때 어떤 방법으로 그 극복을 꾀하시나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시스라의 어머니처럼 내 안의 긍정적인 생각을 반복 강화하면서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계속 불러일으키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일종의 마인트 컨트롤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단기적인 효과는 보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닙니다. 그리고 마인드 컨트롤은 내가 지향하는 그 확신이 하느님의 뜻과 맞는지는 성찰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영 다른 방향으로 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술을 진탕 마시면서 오락과 소음 속에서 스트레스를 풀면서 그런 근심과 걱정을 털어버리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술기운에 기분도 좋아지고, 초자아가 느슨해진 상태에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면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을 취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술을 마셔야 할 것입니다. 심하면 알콜 중독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일상을 떠나 상쾌한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오는 것이지요. 웰빙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제일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떠나서 하느님을 깊이 만나고 오면 좋습니다. 그러나 여행 자체에 중독되면 마음의 안정과 평화가 없어서 쉴 곳을 찾아 광야를 헤매는 사탄처럼 이곳저곳을 헤매고만 돌아다니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미봉책을 떠난 근원적인 해결은 나의 내면에서 불안이 일어나는 것을 잘 관찰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 내 내면의 상처와 아픔 그리고 불안 그리고 내가 숨기고 싶어하는 나의 죄를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나를 이끌어 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해결 방식을 버리고 하느님을 만나는 용기 있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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