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은총피정<25> 성체조배 - 강길웅 요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15 조회수1,326 추천수17 반대(0) 신고
                                                        


성체조배


   이제 성체조배 얘기 좀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오늘의 시대에 '꼭 필요한 한 가지' 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조배가 뮙니까?

 

   성체성사, 즉 빵의 형상 안에 계신 예수님께 나아가 특별한 존경과 애정을 드리는 신심 행위를 말합니다.


   제가 성체조배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생 때 교리 시간에서 였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한 어린이가 병든 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희생'이라는 강론을 듣고는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즉, 자기가 하기 싫은 것, 또는 자기가 하기 어려운 것을 하느님께 바치면 그것이 살아 있는 기도가 되어 무슨 소원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꼬마는 이 말씀을 듣고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 드리기 위해 매일 새벽마다 성당에 가서 성체조배를 했습니다. 조그만 것이 졸릴 텐데, 어머니를 위해 희생으로 참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입니다.  잠에서 깨어 보니 어머니가 죽어 있는 것입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이가 울면서 어머니를 흔들다가 안 되니까, 그 길로 성당에 달려가서 감실 앞에서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희생을 바치면 다 들어주신다고 했는데 왜 어머니를 죽게 했습니까? 살려 주십시오." 하고 떼를 썼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감실 문이 열리더니 예수님께서 나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 집에 다시 가 보아라."  "죽었어요!"  "아니다. 다시 가 보아라."  그래서 아이가 인사도 안 하고 집으로 달려갔더니 어머니가 정말 살아나서 부엌에서 밥을 짓고  계시더랍니다.  아이가 다시 성당에 달려가 예수님께 고맙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희생 얘기였는데, 그때 성체조배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제가 이걸 들은 것이 50년도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가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성체조배! 저도 그 꼬마처럼 어렸을 때부터 성체조배를 하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데, 그 수난에 대한 묵상이라는 것이 1분만 하면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분을, 그리고 잘 모르는 분을 묵상하고 말을 하려니까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말이 필요 없고, 그냥 보기만 해도 되며, 아니면 함께 있기만 해도 됩니다. 조배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언젠가 소록도에 한 자매가 찾아온 적이 있는데 산책을 다녀오더니 그런 말을 합니다. 자연이 아주 조용한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막상 산책을 해 보니 조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낙엽 한 장 떨어지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고,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정신이 번쩍 나게 했으며, 새소리, 바람소리 등도 모두 목소리를 가지고 자기에게 말을 걸더랍니다. "안녕하세요?" "왜 이제 왔나요?"


   그때 자매가 깜짝 놀랍니다.  나무에 걸린 거미줄도 말을 하고, 돌멩이, 나뭇가지들도 모두 한마디씩 합니다.  "정말 잘 오셨어요. 기다렸어요." '이젠 뭔가 다시 되어 보세요." 자기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자연이 자기에게 많은 말을 들려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자매가 본래 말 못할 여려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소록도에 와서 많은 위로와 힘을 얻고 돌아갑니다. 성체조배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뭔가를 보고 그리고 뭔가를 듣는 것입니다. 주님은 정말 뭔가를 보여 주시고 들려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을 많이 하려고 하니까 기도가 안 되듯이, 성체조배도 마찬가집니다.  사람들은 성체 앞에만 나가면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 입을 놀리며 기도하려고 하는데, 그러면 서로가 피곤합니다. 조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앞에 누가 계신지 그것만 분명하게 알면 됩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유치원 어린이들도 압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정말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 아닙니다. 불과 몇 사람만 압니다. 마찬가지로 성체성사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초등학생들도 압니다. 그러나 정말 계시다는 것은 몇 사람만 압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 몇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성체 앞에 가만히 앉아 보세요. 그리고 사랑해 보세요. 주님이 정말 사랑하고, 주님을 정말 믿는 사람은, 절대로 편하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편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벌 받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 고생하고 싶고, 더 봉사하고 싶습니다.


   교만이지만 그렇게 됩니다. 유치하게 "이거 해 주세요." " 저거 해 주세요." 하는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을 위해 뭔가 고생하며 도와주고 싶어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위해 뭔 수고를 하겠다는 의지 그 자체가 주님께 큰 영광이 되어 내게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저것 소망을 말하지 않아도 그분이 다 아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아이가 나중에 자기가 커서 부모에게 좋은 집을 지어 드리겠다고 하면, 부모는 말만 들어도 흐뭇하고 기뻐서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까지도 다 챙겨서 미리 해주는 것입니다. 이게 부모 마음이듯이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집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자기는 임금이라고 좋은 궁전에서 사는데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천막에 머무시는 것이 마음에 늘 걸렸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좋게 지어 드린다는 계획을 말씀드리니까, 하느님께서는 " 아니다. 성전은 네 아들 대에서 세울 것이다." 라고 하시며 대신 다윗 가문에 큰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어 드리지도 않았는데 그 정성이 갸륵해서 하느님께서는 다윗 가문에 큰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즉, 메시아가 그 가문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기도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주님의 뜻만 채워 드리면 다른 것은 거저 얻게 됩니다.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성체성사의 해를 제정하신 목적 중의하나가, 모든 신자들이 성체조배만이라도 열심히 했으면 하고 소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소망을 채워 드려야 합니다. 교황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그 한 가지를 찾기 위해 날마다 수고하며 기뻐합시다. 아멘

 

               ♣ 은총 피정 中에서 / 소록도 성당 강길웅 요한 신부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