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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총피정<26> 만남의 은혜 - 강길웅 요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17 조회수1,118 추천수14 반대(0) 신고
                            

만남의 은혜


 

   인생은 만남이라고 합니다. 독일의작가요 의사였던 한스 카로사라는 사람의 명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이 만남의 연속입니다.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는 것도 만남이며,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는 것도 만남입니다.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는 것도 만남이며, 부부가 되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생의 의미가 달라 지게 됩니다. 잘 만나면 한평생 순탄한 길을  걸으며 행복하게 되지만, 잘못 만나면 평생 고달픈 길을 외롭게 걸어갑니다.


   어떤 기업인의 자서전을 보니까 그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날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늦게까지 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돈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잘 만나고 있는 지혜로움 때문에 행복합니다.


   실제로 세상이 살 맛 나는 사람은 늦게까지 잘 수 없습니다.  눈뜨면 바로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만남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일찍 일어 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어나 봐야 세상이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만남이 잘 되면 삶에 의욕이 생기고 사랑의 기운이 충만해서 가난해도 행복하고 병들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매사에 자신이 있으며 떳떳하고 당당합니다.   만남의 은혜가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절단된 고등학생이 있는데 공부도 잘하지만 아주 명랑하여 기타도 잘 칩니다.   하루는 우연히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다리 때문에 불편한 것이 많겠구나." 그러자 그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제 다리가 안보여요." "안., 왜 안 보이니?" 저는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학생이 대답합니다.   "세상에 다리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어요."

 

   저는 그 말 한마디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없는 것'을 바라보며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처지에서도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고달프다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며 힘들다 해서 외로운 것도 아닙니다.  만남의 지혜만 있으면 언제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높은 벽이 있으며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깊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있어도 외로운 여자들이 많고 아내가 있어도 외로운 남자들도 많습니다.   본래는 잘 만났는데 많은 이들이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다.


   왜 이와 같은 모순 속에서 살게 되느냐? 한마디로 만남의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고집, 자기 판단대로만 세상을 살려 하기 때문에 올바르게 바라보지를 못하고 또 제대로 만나지를 못합니다.   현대의 비극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만남의 방법을 개선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는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또 아름답고 멋지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만남의 방법을 개선할 수 있는가?  만남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만나셨는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만남의 최고의 방법은 하느님을 닮는 것이며 거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하느님을 만날 자격이 없었습니다.   자기 죄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영원히 구제불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을 건지러 하느님이 직접 세상에 내려오시는데 그것도 죄 많은 인간으로 내려오십니다. 내려오신 것만도 황송한데 그분이 저 밑바닥의 죄인으로까지 내려오십니다.


   이것은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놀라운 방법이었습니다. 지존하신 하느님이 죄인으로까지 내려오시니까 사람들이 못 알아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밑에 있던 천한 인생들을 용케도 그분을 알아봤습니다. 그때 밑바닥에 누가 있었느냐?   창녀와 세리가 있었고 문둥병 환자가 있었으며  귀머거리와 소경 등 인간 대접을 못 받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밑바닥 인생들이 놀랍게도 밑에 내려오신 주님을 만납니다.   만나니까 치유의 은혜를 받고 구원받습니다.   묘한 일입니다.  그러나 잘나서 똑똑했던 사람들은 못 만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밑에 계신 예수님을 깔보고 무시합니다.  쫓아다니며 방해하고 시비를 겁니다.


   소위 종교 지도자라는 자들이 더 그랬습니다.   아주 악랄한 방법으로 그분을 괴롭혔습니다.   이게 바로 신앙의 아이러니입니다.   따라서 올라가면 위험합니다.   인생이 위험하고 삶이 위험하며 구원이 위험합니다.   내려가야 합니다.   정말 하느님처럼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만남의 첫째 방법 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만나는 최고의 방법은 내려가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내려가야 하며 체면이 손상된다 해도 내려갈 때 세상을 잘 만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내려간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 쳐다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존경받습니다.   내려가면 본인 자신도 편하며 또 옆에 있는 사람들도 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위로 올라간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들을 아래로 내려다봅니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스스로 무시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올라가면 세상을 올바르게 만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꾸 올라가려 합니다.  그러나 올라가면 속된 말로 멀미납니다.   그는 또 혼자만 멀미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어지럽게 합니다.

 

               ♣ 은총 피정 中에서 / 소록도 성당 강길웅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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