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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20 조회수627 추천수3 반대(0) 신고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루가 12,8-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파울러'라는 에모리 대학 교수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신앙적으로 완전히 자라게 된다면 모두 6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이제 그 여섯 단계를 간략하게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첫 단계에 들어가기 전의 단계 아닌 단계로 '전단계'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갓난아기가 배가 고프면 울고, 엄마가 와서 먹을 것을 주거나 안아주면 그냥 좋아하는 것처럼, 아직 지적 능력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엄마나 다른 보호자에게 가지는 무조건적 신뢰의 단계로서 이 때 갖는 신앙을 무분별적 신앙이라고 한다.

제 1 단계는 "직관적 투사적 신앙"의 단계이다. 이 단계의 신앙은 2세에서 6,7세 사이에서 나타나는데, 이 때 아이들은 상상과 환상의 세계에 살면서 이에 걸맞는 믿음을 키워간다. 이 때 처음으로 자의식을 갖게 되고, 죽음과 성(性)과 금기사항 등을 알기 시작한다.
제 2 단계는"신화적, 문자적 신앙"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것으로서,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이야기, 설화, 신화나 신앙내용이나 의식을 받아들이되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아직 이런 것들의 상징적 뜻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이 이런 이야기가 말하는 것과 같이 문자적으로 이렇게 생기고 굴러간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자기는 착한 아이이기 때문에 싼타 할아버지가 와서 선물을 많이 주고 갈 것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제 3 단계는 "종합적, 인습적 신앙"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사춘기 때 형성되는 것으로서, 자기가 지금껏 문자적으로 믿어오던 자기 공동체의 이야기나 신앙내용, 의식이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여질 때의 모순을 의식하는 단계이다. 이런 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모순을 종합해주고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종합적, 인습적 신앙형태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아직도 독립적인 사고에 의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외적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맞추려는 획일적 사고가 강하게 나타나고, 또 주어진 이데올로기에 따라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 그것을 객관적으로 성찰해보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제 4 단계는 "개성화와 성찰의 신앙" 단계이다. 이 단계는 20대 중반의 청년기, 경우에 따라서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에서도 형성되는데, 자기 자신의 신앙 내용이나 가치관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고 통찰하는 단계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이 단계에조차 이르지 못하고 한 평생을 마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제 5 단계는 "접속적 신앙"이다. 이 단계는 주로 중년기 이후에 생기는 것으로서, 이분법적 양자택일이나 이항대립적 사고 방식을 넘어서서 '양극의 일치'를 받아들이게 되는 단계이다. 우리가 계속 말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냐나주의'에서 '이것도 저것도'의 '도도주의'를 깨닫는 단계, 변증법적 사고, 대화적 태도, 역설적 논리를 이해할 수 있는 단계이다. 빛이 파장되고 입자도 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한 가지 사물의 양면을 동시에 볼 줄 아는 마음이다.  자기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선입관으로 사물을 보는 대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마음이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 내가 어디에 속했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진리 자체가 주는 것에 따라 소신을 가지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제 6 단계는 "보편화하는 신앙"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극소수의 사람만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자아를 완성한 이른바 성인의 경지이다. 어떤 외적 걸림이나 거침이나 울타리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와 무애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랑과 자비와 껴안음의 사람, 그러면서도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정의와 공평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이 자라고 발전하는 것이라고 할 때 과연 지금 나의 신앙이 어느 단계에까지 와 있나 하는 것을 점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파울러의 주장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모든 사람이 이 여섯 단계를 다 거치는 것은 아니라고 한 사실이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어느 단계에서든지 더 이상 발달하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 수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 3 단계 정도에 이르러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제 4 단계는 독립적 사고를 가지고 사물을 보는 단계요, 제 5단계는 사물의 양면을 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단계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증언하는 것은 꼭 강론대에 서서 말할 때만이 아니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증언이 되어야 한다. 즉 내가 사람들 앞에 있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관계없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저 사람은 참 거룩하다" 라고 말 할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을 보고는 "저 사람은 신자이면서 왜 저 모양이야"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꼭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 자체에서 풍겨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전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신앙생활을 얼마나  오래 했느냐 아니면 어떤 위치에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있느냐가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모른다고 하는 사람인가를 말해 준다.

 

"사람들 앞에서"라는 말에 주의하자. 어느 사람이라고 지목해서 말하지 않고 그냥 "사람들 앞에서"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증언해야 하는 사람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이다. 어떤 일로 사람을 만나든 아니면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살고 있든 모든 사람은 바로 내가 예수님을 증언해야할 사람이다.

 

과연 평상시에 사람들은 나를 보고 무엇이라고 하는가? 저 사람은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아니면 "저 사람은 말은 신자라고 하면서 전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 같다" 라는 말을 듣는가? 멀리서 예수님을 증언하려고 하지 말자. 나와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부터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 행동, 생각, 인품으로 생활하자. 

 

 

  -유 광수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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