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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 21일 야곱의 우물 -마태 28, 16-20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21 조회수591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16-­20)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우리의 신앙에 공통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준 성경의 인물 셋을 꼽으라면 아브라함과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시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약속하시고, 세상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되어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차별 없이 세상 모든 민족이 그분의 백성이 되도록 하셨으며, 바오로 사도로 인해 이방인들은 유다인들이 졌던 율법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단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기억하며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서 드디어 예수께서 이루신 사명을 제자들에게 인수인계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아직 미완성이기에 제자들이 이 사명을 이어받습니다.

 
“열한 제자들은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산으로 갔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5-­16) 갈릴래아는 예수께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제자들과 함께 공생활을 시작한 장소요 공생활 대부분을 보냈던 삶의 터전, 추억의 장소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인계하실 장소로 제자들에게 익숙한 갈릴래아를 선택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여인들에게 나타나신 예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만 보았던 예수님의 빛나는 모습을 이제 모든 제자가 함께 보게 되었지만 더러는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늘 하느님의 현존과 함께 있으면서도 인식하지도 믿지도 못하는 우리의 의심이기도 합니다.

 
이제 제자들은 권능을 가지신 분에게 사명을 인수합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황 베드로 수녀님의 <크는 달>이란 동시가 있습니다. ‘지구가/비켜주는 만큼/달이 크고//욕심/덜어낸 만큼/별빛이 맑다.’ 지구가 완전히 비켜주는 날, 달은 온전한 모습의 보름달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지요.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요한 13,16ㄴ) 그런데도 당신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듯이 제자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섬기는 권위로써 보름달이 되도록 이제 예수님은 자리를 비켜주십니다. 조금의 사심도 없는 인수인계인지라 그 빛이 맑고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때가 되면 사라지는 아름다움은 구약의 모세한테서도 빛났습니다.
 
 
그는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며 하느님과 고집 센 백성 사이에서 몸고생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하느님은 모세에게 “너의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선조들 곁으로 간 것처럼 너도 네가 올라간 땅에서 죽어 선조들 곁으로 가야 한다”(신명 32,50), “너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땅을 멀리 바라보기만 할 뿐 들어가지는 못한다.”(신명 32,52)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한마디 항의도 하지 않고 순순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사명을 맡기고 죽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요한 17,4)

 
착한 목자이신 예수께서는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요한 10,16)고 하셨는데,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예수께서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려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해야 힘 있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배반자 유다의 자리를 대신하여 사도를 뽑을 때 베드로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처음부터 마지막, 부활과 승천까지 함께했던 이를 루카는 ‘사도’라 했습니다.
 
열두 사도는 아니지만 특별하고 위대한 소명 때문에 사도라 불린 바오로는 파견되지 않으면 선포할 수 없고, 선포하는 이가 없으면 믿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외쳤습니다.(로마 10,14-­15 참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이천 년이 넘는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오늘의 우리도 탈레반에게 인질로 잡힌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 그분께서 심판관이 되시기를, 평화를 위장한 이라크 전쟁 때도 핵무기·살상 무기들이 보습이 되고 낫이 되길 바랐습니다.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서로 총칼을 겨눌 때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 않게 되기를 염원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데 세상은 왜 더 힘들어지는지…. 성찰하면 교세의 양적 확산보다 질적인 양성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됩니다. 민족들의 복음화 이전에 내가 얼마나 복음화되어 있는지 돌아보면서 낙담 중에도 “보라,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약속에 의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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