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은총피정<27> 믿음 - 강길웅 요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22 조회수1,080 추천수13 반대(0) 신고

 


믿음 


   마태오 복음 15장에 보면 '가난한 여자의 믿음'이 나옵니다. 그 여자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 나아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딸이 마귀가 들려 고생하고 있으니 고쳐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이에 제자들도 나서서 저 여자를 고쳐 주시는 것이 좋겠다고 부인을 응원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라고 자르듯이 말씀하십니다. 심하게 말하면 '개 같은' 여자의 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에게는 심한 모독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부인은 굽히지 않습니다. 자기가 개나 짐승으로 천대받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유다인의 정서로는 당연합니다. 다만 개 같은 인생이라 해도 주님의 은혜 한 조각만이라도 붙들고 딸만은 고쳐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간청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여자를 극찬하셨습니다. "아, 여인아! 내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하고 칭찬하시며 그 여자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만일에 이 여자가 자기 자존심 때문에 기분 나쁘다고 돌아섰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여자는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은혜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고달프고 짜증나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강아지' 얘기가 나오니까 다윗 임금 생각도 납니다. 『공동번역 성서 』에 보면 다윗이 하느님의 크신 은혜에 감복하여 자신은 '개만도 못한 종' 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하는데, 다윗은 그렇게 겸손한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자신을 낮추면 밑에 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마태오 복음 8장에 보면 '백인대장의 이야기' 가 나옵니다. 로마군의 백인대장이라 하면 백 명의 부하를 둔, 오늘날로 치자면 중대장의 위치이지만 지금의 중대장과는 달리 식민 사회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진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들의 처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낮은 유다 인에게 간청합니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백인대장이 말렸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상관도 있지만 밑으로 부하도 있어서 그들에게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간다면서, 예수님이 명령한 하시면 마귀가 다 떨어져 나간다는 겁니다. 백인대장은 자신을 주님 앞에 최대한으로 낮춥니다.


   예수님이 이 말을 들으시고 감탄하시며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위의 두 경우를 보면 가나안 여자나 로마의 백인대장이나 두 사람 모두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민 (選民)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혜를 만나지 못하는데 그들은 큰 칭찬을 들으면서 만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낮췄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아들,딸들은 은혜를 못 받고 남의 아들딸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루카 복음 18장에 보면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가 나옵니다. 바리사이는 아주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강도짓이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가 아니며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도 않고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십일조를 꼬박꼬박 바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꼿꼿이 서서 자랑스럽게 기도하는데 이를테면 혼자서 높이 올라간 것입니다.


   반면에 세리는 칼만 안 들었지 도둑이나 강도였습니다.  그는 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외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는 벌 받아 마땅한 자라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에 저 밑으로 기어들어 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두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용서받아 의롭게 된 자는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였다고 하셨습니다. 왜 경건한 자가 의롭게 되지 못하고 공인된 도둑이 의롭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세리가 밑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라고 바리사이는 위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또 십계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해도 우리가 내려가지 않으면 결코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아무리 들어오라고 해도 자기 발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불평과 불만 때문에 뭇 들어갑니다.


   가정이나 사회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사람이 내려가면 만난다는 것이 편합니다. 남편이 내려가면 아내와 자식들이 편하고, 아내가 내려가면 남편과 식구들이 편합니다. 부모가 내려가면 자녀가 편하고, 자녀가 내려가면 또 부모가 편안합니다.  내려가면 편한 것뿐만 아니라 따뜻하고 또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때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시골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한번은 어떤 부인의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수녀님과 반장님과 함께 셋이서 찾아갔는데 저는 그때까지 그 부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집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 한순간에 판명이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괜찮은 여자였습니다.


   부인이 커피를 타고 있을 때 마침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2학년인가 3학년이었습니다. 이놈이 우리를 보면서 인사를 하더니 자기 어머니에게 갑자기 "엄마, 나 시험 봤어!"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쳐다보지도 않고 "몇 점 맞았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65점!" 하며 시험지를 꺼내어 흔들었습니다.


   저는 "65점!" 이라는 말에 갑자기 긴장이 되었습니다. 순간 '너는 이제 중상 아니면 사망이다. 우리가 돌아가면 너는 반송장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젊은 부인이 얼마나 난처할까. 우리 세 사람은 정말 불안한 마음 때문에 그 부인을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입장이 아주 난처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아이 보고 그랬습니다. "엄마는 어렸을 때 60점밖에 못 맞았는데 우리 아들은 엄마보다 5점이나 더 맞았네." 하면서 자기 아들을 칭찬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대답에 모두 큰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멋진 부인이었습니다. 세상에 저렇게 부처님 같은 엄마가 있을까? 참으로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아들보다 5점을 더 내려가니까 부인이 그렇게 예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의 예쁜 모습을 저는 거기서 봤습니다. 화장을 잘했다고 해서 예쁜 것이 아닙니다. 아마 다른 부인들 같으면 80점을 받았다 해도 겨우 그것밖에 못 맞았느냐고 하면서 자기 아들을 혼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집은 편할 때가 없습니다. 올라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려가는 집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벽이 있을 수 없으며 남편과 아 내 사이에 강이 흐를 수 없습니다. 묘한 것이 여자 한 사람이 내려가면 집안전체가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아무리 내려가도 여자가 위에 있으면 그 집은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여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남자 편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여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드릴 뿐입니다.


   전에 제가 살던 옆집에 어떤 부부가 살았는데, 그 집 남편이 술만 마시면 아주 개차반이었습니다. 자기 집까지는 어떻게 옵니다. 그런데 자기 집 대문에서 자기 방까지를 들어가지 못합니다. 부인이 나와서 부축해 가는데 방까지 가는 그동안에도 별의별 욕을 다 하면서 주정을 합니다. 그래도 여자가 조용하니까 그 집은 조용합니다. 시끄러워도 하루에 20분이나 30분만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편으로 두 집 건너편에 어떤 말 많은 부인이 있었는데 그 집의 남자는 아주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호인도 그런 호인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하루 종일 시끄럽습니다. 여자가 시끄러우니까 24시간 시끄럽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가정에서 여자가 저렇게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은총 피정 中에서 / 소록도 성당 강길웅 요한 신부 ♣

 

        

♬ 주님여 이손을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