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0월 28일 연중 제30주일 - 베광하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28 조회수775 추천수10 반대(0) 신고
 

10월 28일 일요일  연중 제30주일 - 루카 18,9-14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겸손한 기도만이 주님께 이릅니다.>


   주님께 다다를 기도


   겸손의 기도


   프랑스의 매화마을이라는 명상센터를 운영하시는 베트남 승려 틱 낫 한 스님은 기도에 대하여 이런 글을 쓰셨습니다.


   “기도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도는 우주가 인간에게 선사하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선물이다. 행복은 이미 궁극의 차원에 존재하고 있으며, 기도는 궁극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기도하길 바란다. 그래서 당신 자신이 우주 안의 모든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험하길 바란다.”


   가끔 교우 분들과의 면담 중에 자주 상담 받게 되는 것이 기도 중에 분심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집중이 안 되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저 자신은 속으로 “저도 안 되요”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누릅니다. 불교 격언에 “찰라의 순간에 정신을 한 곳으로 집중하면 부처가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찰라’란 ‘눈 깜짝할 사이’라는 뜻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정신이 한 곳으로 집중이 안 돼 많은 스님들이 평생을 깊은 산중에서 수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같이 세속에서 온갖 일상의 번잡함 속에서 온전히 한 정신으로 기도에 전념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집중된 기도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분심과 잡념이 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더욱 그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는 겸손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에 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을 겸손되이 낮추며 기도할 때 분심 잡념의 기도를 뛰어 넘어 주님께서 다 들어 주신다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때문에 오늘 집회서의 저자는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집회 35, 21).


   기도의 분심 여부를 떠나 진정 내 자신의 기도는 가난한 이의 기도, 낮추는 이의 기도였는지를 먼저 반성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실망감에 포기하지 않는 끈기의 항구한 기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성인들도 기도의 완성과 끝이 없었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어 항구히 주님께 매달린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그런 뒤에 오늘 바오로 사도와 같은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2티모 4, 7~8).


   타는 떨기나무에서


   광야의 타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모세는 존엄하신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가 처음으로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신을 벗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신고 있는 세속의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속의 시련과 고통을, 자갈과 가시, 오염된 물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 주었던 신을 벗는 것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 대신 온전히 주님께 의탁할 때, 그분께서 신이 되어 주시고 지켜 주실 것입니다.


   세속과 천상의 것에 양다리를 걸치고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에는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가장 작은 자세로, 주님께서 당신의 것으로 신겨 주시고 입혀 주신다는 사실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자기가 이제껏 아무리 훌륭한 신앙의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감추고 겸손히 서야 합니다. 열심히 쌓아올린 세상의 공로들이 때로는 진실한 기도에 다가갈 수 없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겸손을 가로막는 교만과 우월의식의 유혹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는 자신이 훌륭히 지켜온 종교적 선행과 율법이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신고 있던 세속의 신을 벗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인이었던 세리는 자신의 허물로 인한 잘못으로 세속 교만의 신을 벗고 겸손히 주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치며 뉘우칩니다. 이때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 14).


   결국 기도의 가장 중요한 자세는, “주님 앞에 저는 죄인입니다”라는 죄의 인정과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입니다. 그리고 세속의 것을 버리고 주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입니다............◆


- 배광하 신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