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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력적인 사람들" - 2007.10.28 연중 제30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10-28 조회수513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10.28 연중 제30주일 
                                                      
집회35,15ㄴ-17.20-22ㄴ 티모4,6-8.16-18 루카18,9-14

                                                            
 
 
 
"매력적인 사람들"
 

                                                          
몸은 떠나도 향기로 남아있는 겸손한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만날 때 마다 늘 새롭고 좋은 사람이,
떨어지면 곧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사람이 매력적인 겸손한 사람입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의 윤 은기 총장은 ‘21세기 매력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다국적 기업 CEO들 대부분이 매력지수가 높다고 진단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인 매력은
권력, 금력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이 있으며
이런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될수록 선진화된 공동체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앞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이 얼마냐가 아닌
매력지수가 얼마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우리의 매력지수를 쑥쑥 높여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나의 매력지수는, 우리 공동체의 매력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매력지수의 관건은 전적으로 겸손에 달려있습니다.
매력적인 사람들,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모든 덕의 어머니 덕이라는 겸손이 일반화되는
매력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일시적이 아닌 영원히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답은 겸손 하나뿐입니다.
 
지금부터 매력적인 겸손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겸손한 사람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과의 대화가 기도입니다.
하느님과 대면하여 대화의 기도를 바칠수록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애당초 하느님을 떠나선 겸손도 없습니다.
내 존재를 비춰줄 하느님의 거울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라고 다 기도가 아닙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의 기도,
이건 대화의 기도가 아니라 자기도취, 자기과시의 일방적 독백입니다.
기도하면서 이웃과 비교하며 판단의 죄를 짓습니다.
전혀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침묵도, 귀 기울여 들음도 없습니다.
 
반면 세리는 하느님과 직면합니다.
일체의 자기과시나 자기도취의 독백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가난한 자의 탄원입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진정 자기를 아는 겸손한 이라면 이 기도 하나뿐입니다.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합니다.
세리의 겸손한 기도만이 주님께 도달했습니다.
사실 진실하고 간절할수록 기도든, 말이든, 글이든 짧고 순수합니다.
 

둘째, 겸손한 사람은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연스럽고 자유롭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고 너를 알게 되니
저절로 진실하고 정직해 질 수 뿐이 없습니다.
도대체 위장하거나 꾸밀 필요를 못 느낍니다.
누가 칭찬하든 비난하든 하느님 앞에서 더도 덜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누구와도 비교함이 없는 하느님 앞에서의 삶이니,
또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한 삶이니
세상 욕심으로부터의 자연스런 이탈에 자연스럽고 자유로울 수뿐이 없습니다.
 
하느님과의 항구한 대화의 기도를 통해
무지의 어둠이나 환상의 안개가 말끔히 걷혔으니
그 마음 자연스럽고 자유롭기가 푸른 하늘 떠가는 흰 구름 같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랬고, 사도들의 삶이 그랬습니다.
 
오늘 바리사이를 보십시오.
완전히 이기적 자기 감옥에 갇힌, 이기적 허영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부자연스럽고 부자유한 모습입니다.
 
반면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온전히 개방한 세리,
진정 자연스럽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셋째 겸손한 사람은 초지일관 항구한 사람입니다.
 
강하고 똑똑하다 보면 얼마 못가 부러지거나 잘려져 나갑니다.
불가(佛家)에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똑똑하여 교만한 것보다는 좀 부족하고 약해도 겸손한 사람이 항구할 수 있습니다.
 
사실 머리 똑똑한 게 지혜가 아니라 마음 겸손한 게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진정 겸손한 이들 물처럼 자기의 본질은 잃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그 상황에 자기를 순응해 가며 아래로 흐르기에
그들의 삶은 참으로 자연스럽고 자유롭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덕은 물과 같다는 노자의 말씀은 바로 이런 겸손의 덕을 지칭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
평생 주님을 섬김에 항구했던 겸손한 자의 죽음을 앞둔 마지막 승리의 고백 같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매력적인 사람들,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겸손의 향기는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삶의 여정은 겸손으로 익어가는 여정이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겸손해질수록 높아지는 매력지수입니다.
 
이런 매력적인 겸손한 이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이라
환상 없이 지금 여기의 현실을 물처럼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진정 자기를 아는 겸손한 이들의 기도는 세리의 기도 하나뿐임을 깨닫습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새삼 미사전례가 겸손의 수행에 얼마나 좋은지, 크나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세리의 자비송으로 겸손히 통회하며 미사가 시작 되었고,
역시 영성체전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겸손히 자비송을 바친 후 영성체를 모시는 우리들입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기도한 후 성체를 모실 때의
가난하고, 진실하고, 겸손한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성체를 모실 때의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우리 모두 매력 만점의 하느님의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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